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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사람] 소리이음

나그네의 삶, 그는 내가 택한 길을 알고 계시니

[일상에서의 만남] 각자의 소명을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학사들의 삶 이야기


나그네의 삶,

그는 내가 택한 길을 알고 계시니




이기형(인제대00), 조나영(경남대04) 학사 부부



졸업 전에는 진로에 대해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활동학사로 섬기던 중, 캠퍼스의 영혼들을 향해 쏟아내는 간사님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바라보며 나의 에너지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이후의 삶에 대해 제대로 된 고민을 시작했다. 


난 예전부터 새것보다는 흠이 있고 고장이 난 물건을 고쳐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주위엔 항상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고, 난 그들에게 더욱 집중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공을 살리고자 항상 함께였던 장애인, 공동체 두 가지 키워드에 맞는 지적장애인 시설에 취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충남의 낯선 시골마을에서 천사 같은 마음을 가진 장애인들과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이때부터 집을 떠난 나그네의 삶을 지향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를 위해 이 길을 선택한 직장 선배들이 비윤리적이고 소명이나 사명하고는 거리가 먼 일터의 삶을 오히려 자신의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불편한 마음이 생겨났고 딱딱하게 굳어진 그 마음을 바꾸려 애를 써봤지만 이상을 따라 살고자 했던 그곳에서 내 삶을 건강하게 지키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앞으로 꾸려갈 가정 또한 건강하게 지켜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일을 과감히 그만두었다.


실망스런 마음에 다른 일을 찾고 싶었지만, 서른에 어떤 준비 없이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없는 환경임을 직시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6개월간의 아일랜드 여행을 떠났다. 반년의 가난한 유학생활 동안 아일랜드 현지의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 어눌하고 경상도 억양이 섞인 투박한 영어로 소통하며 교제했고, 코치서핑 커뮤니티를 통해 다양한 문화, 연령,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가정을 방문하며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유쾌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2주간 머무르며 경험했던 영국의 브루더호프(다벨공동체) 역시 공동체로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주위 많은 이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던 아일랜드 행의 여정은 내 인생의 가치 있는 배움의 장을 열어주었고,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금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나로서는 새로운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계기 또한 마련해 주었다. 





그렇게 다시 찾은 직장은 UAE(아랍에미리트 연방)의 두바이에서 한인 유통업체의 재고들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두바이는 인구의 70%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곳이고 교육과 여러 문화가 발달되어 삶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임금 격차가 심해 인도와 파키스탄, 필리핀의 노동자들에게는 힘든 삶이다. 내가 출석했던 교회도 다양한 인종의 10개국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각 나라의 음식들을 나누며 함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는데, 복음으로 하나 되는 그 시간은 그 어떤 것보다 귀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해외에 취업한 덕분에 신혼생활을 두바이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찾아온 근심도 있었다. 싱글로 일을 할 때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빡빡한 근무패턴이 낯선 땅에서 홀로 집에 남겨진 아내에게는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시간이었다. 발전된 도시였지만 인공적인 것들과 사막이 주는 삭막함이 힘겹게 다가온 듯했다. 나 역시 여유가 없는 팍팍한 삶에 점차 지쳐갔고, 스트레스로 몸이 상했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으려 내 삶과 내 가정을 건강하게 꾸려가기 위한 직장을 다시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일이든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잘 안다. 그래서 다른 조건은 내려놓더라도 앞서 두 직장을 경험하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충분한가'와 '함께 예배드릴 건강한 공동체가 있는가', 이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직장을 찾았다. 그러다 지금의 아프리카 대륙까지 오게 되었다. 


  다양한 인종이 살아가던 화려한 두바이와는 달리, 가나는 아프리카에서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두바이에서 누리던 편리함과는 거리가 먼 낙후된 환경이었다. 거주자 대부분이 현지인이다 보니 처음에는 다른 피부색과 문화가 어색하기도 했다. 지금 이곳에선 흑인 여성에게는 필수가 된 가발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회사의 회계를 맡고 있다. 장애인 시설에서 회계 업무를 맡아보았지만 해외에서의 회계업무와 가발은 참 낯설었다. 그러나 점차 여성들이 미를 추구하는 그런 마음은 세상 어디나 다를 게 없다는 것과 이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서로가 서로의 머리를 만져주며 친밀함을 쌓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어색했던 현지인들과 함께 웃는 날이 많아졌고, 여유가 많은 업무 환경 덕분에 아내와 같이 보내는 시간도 늘어났다. 전혀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의 에너지를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쏟을 수 있어 감사하다.





"그는 내가 택한 길을 알고 계시니 그가 나를 연단하시면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발걸음을 따랐고 그의 길을 지켜 벗어나지 아니하였도다." (욥 23:10~11) 


가나에 와서 들었던 말씀이다. 나그네처럼 살아가더라도 내가 지금 어디로 걷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로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지 늘 돌아보며, 그의 길을 지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올해 끝자락이면 드림이(태명)가 세상에 나와 아프리카 가나에서 첫해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사야서 54:13절 말씀처럼 주 하나님의 교훈을 배우며 어느 곳에서든지 큰 평안이 함께하는 아이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이기형│인제대00

졸업 후 1년 동안 활동학사로 사역했다. 전공을 살려 충남의 지적장애인시설 생활교사로 3년 일했으나, 새로운 도전을 위한 아일랜드 여행을 계기로 두바이를 찍고 현재 서부아프리카의 가나에서 살고 있다. 결혼 2년차의 아내(조나영, 경남대04)와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의 출생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