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가는 여정] 서로가 존중하며 함께 '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Posted by GCF IVF GCF
2018. 8. 22. 15:00 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소리] 2018 네번째 소리 - 0809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평화로 가는 여정]


▷ 평화로 가는 여정(1) - 함께 갈 오르막길_김종호

▶ 평화로 가는 여정(2) - 서로가 존중하며 함께 '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_한종무

▷ 평화로 가는 여정(3) -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평화_문아영

▷ 평화로 가는 여정(4) - 평화의 길로 부르심_변준희 

▷ 평화로 가는 여정(5) - 평화를 향한 남북관계 변천 훑어보기_박일수






서로가 존중하며 함께 '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 한종무(동의대90)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통일과 북한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왔다. 그러나 정작 사회에서 공인받은 스펙은 없다.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북한과 통일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고 있고, 계속 공부하고 있다. 나이는 좀 많지만 늦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작년에 자두 농사를 실패하여 공사 현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농산물을 판매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9년 6월, 나는 북한이탈주민이었던 아내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2017년 1월에 이혼을 했다. 결혼할 당시 나는 충남 서산에 있는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북한과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아 여러 가지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서울 강남 소재)에 매주 출석하고 있었고, 아는 사람의 소개로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2002년에 탈북하고 2003년에 입국한 후,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결혼 초기 아내와 나는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며 화목한 가정을 꾸려갔다. 물론 두 사람이 다른 점이 많아서 다소 갈등이 있었지만, 이것은 여느 부부에게나 있을 법한 일들이었고 내가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전혀 모르는 바도 아니어서 당시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서로를 알고 배우려고 노력했다. 나는 아내를 자랑스러워했고, 아내도 나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을 배우려 했다.


 그러나 아내는 2011년 3월에 아들을 낳은 후 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아내의 강권과 요양을 위해 귀농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귀농을 결정한 데다 아내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했으며 아들은 어렸다. 귀농 후 우리 가정은 몇 년 동안 경제적으로 매우 불안정하였고, 결국 아내는 결혼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나와 헤어지기를 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가정을 깰 생각이 전혀 없었고, 최선을 다해 가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내게는 가정을 유지할 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경제 활동을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이혼 소송에도 대응하지 못한 채 그냥 이혼을 당하게 된 것이다. 가정이 깨진 것은 가장인 내가 사회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많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내 능력이 거기까지였나 보다. 우리 가정을 격려하며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고 그분들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 가정을 지키지 못해 면목이 없다. 


 가정이 깨진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근무하던 ‘학교’다. 학교 측에서는 아내가 아프기 전부터 우리 가정이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학교’나 학교의 구성원인 어느 ‘개인’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는 나와 결혼한 후, 아프지 않았을 때부터 학교에서 생활하며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기도 했다. 존재를 부정당하면서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아내는 충격을 크게 받았다. 아내는 북한에서 평양에 있는 ‘김책공업대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수학에 재능이 있었고 전달력도 있었다.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센터에서도 아내에게 이러한 방향으로 진로를 권유한 바 있다. 그래서 당시 학교에서 모집하는 수학교사에 지원하였는데, “당신 같은 사람이 지원을 하면 응시하러 온 다른 사람들이 우리 학교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말하며 아내를 탈락시켰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도 충격을 받았다. 기숙형 학교라 같이 먹고 자며 생활했던 사람들로부터 당한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학교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들은 우리 가정을 차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학교에서 당한 부당한 대우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았다. 내가 능력 있고 똑똑했더라면 자신이 학교 사람들로부터 결코 그런 대우를 받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학교 측도 우리 가정이 학교를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나에게 암시를 줬다. 나는 중심을 잡고 아내를 격려하며 학교생활을 계속하려고 했다. 나는 아내의 입원 치료를 유도하기 위해 학교 측에게 형식적으로나마 사과를 요청했다. 가정의 평안과 아내의 건강이 먼저니까 아내를 달래 달라는 의미에서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심지어 “북한과 통일을 위해 당신만 일한다고 생각지 마라”는 어처구니없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결국 우리 가정은 학교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우외환으로 인해 가정이 깨진 경험을 한 나로서는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급박한 국제정세의 변화와 앞으로 닥쳐올 남북 관계가 남의 일 같지 않다. 나와 우리 가정의 경험이 일반화 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시사점을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오시(Ossi·게으르고 불평만 늘어놓는 동독놈)’와 ‘베시(Wessi·거드름 피우며 잘난 척하는 서독놈)’라는 말이 있다. 요즘은 많이 좋아졌지만, 독일이 통일을 하고 몇 년 동안 동·서독 출신 주민이 서로를 비아냥댈 때 쓰는 말이었다. 오시(Ossi)라는 경멸적 단어에는 “왜 우리가 동독 사람들을 먹여 살리느냐”는 서독인들의 불만이 담겨 있다. 베시(Wessi) 라는 말에서는 “우리를 2등 인간 취급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동독인들의 좌절을 느낄 수 있다.


 통일 이전 서독과 동독은 자유로운 TV시청, 서신 교환 등 꾸준한 교류가 이어졌다. 통일 후에도 독일 정부는 사회 통합의 우선 과제로 정치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92년부터 1만4000회가 넘는 정치교육 집회와 세미나를 열어 동·서독 주민의 이질감 해소에 노력해 왔다. 그러나 ‘오시’, ‘베시’ 사례를 보면서 분단 후 통일된 국민의 진정한 통합이 얼마나 힘든지 절감하게 된다.1)



 독일의 사례를 본다면, 남한에 온 북한이탈주민들이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북한의 교류가 독일보다 훨씬 미진한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남북한의 차이를 먼저 경험하게 해 준 ‘먼저 온 통일’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 대다수가 남한 사회에서 적응하기 힘들어 한다. 오죽했으면 한동안 북한이탈주민들 사이에서는 “북한에서는 배고파서 못 살겠고, 중국에서는 무서워서 못 살겠고, 남한에서는 서러워서 못 살겠다”2) 라는 말이 회자되었을까 싶다.


 이혼한 아내가 힘들어 했던 이유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팠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닥치면 북한이탈주민이 아니더라도 힘들다. 북한에서도 출신성분으로 불이익을 당했던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그 상처는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그 상처를 치유해주기는커녕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던 나도 아프다. 뉴스에서 한동안 과격한 도발을 일삼았던 북한 체제나 몸과 마음이 아파서 아내가 과격하고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면, 나는 옳고 그름을 떠나 왜 그런지 그 원인부터 이해하려 했다. 그러고 나면 그것은 항상 ‘생존’과 ‘존재감(혹은 존중)’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나도 학교를 그만두고 나온 후 ‘생존’의 위협을 여러 차례 겪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존중받지 못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북한과 북한사람들과 북한이탈주민들이 그냥 이해가 된다. 물론 그들이 옳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들의 사고와 행동이 남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점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앞서,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자세를 먼저 지녔으면 좋겠다. 이렇게 하면 그들이 살아왔던 북한 체제와 환경으로 인해 생긴 왜곡된 사고와 행동을 고치기가 더 쉬울 것 같다.


 아내가 살았던 북한은 1인 독재 체제를 위한 수단으로 사람을 대하고, 자본주의 체제인 우리 남한은 경제적인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사람을 대하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사람은 자신이 속해 있는 체제와 조직의 비인격성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이익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 또한 부정하지도 않는다. 북한처럼 극단적으로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는 명백한 왜곡과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국가와 조직이 있는가 하면, 유럽의 복지국가처럼 조직이 지닌 비인격적인 속성(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려는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내와 내가 경험한 한국 사회는 아직 전자에 치우친 경향성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혼할 당시에 아내는 북한이탈주민이었지만 바르고 건전한 신앙을 바탕으로 한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배우면서 잘 자라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근무하던 학교에서 노동의 신성함과, 하나님의 정의, 이익보다는 올바른 가치의 소중함을 아이들에게 가르쳤고 그것을 실천하였으며 아내에게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자신의 이익을 먼저 추구하는 세속적인 가치관이 더 능력 있고 좋아 보인다고 느꼈다. 그것에 따라 살지 않으려 하는 남편의 모습을 무능하게 생각했고, 결국 나와 함께 살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아내는 나의 존재와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인 기독교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 북한전경



 최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고, 북한과 통일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좋은 일이다. 앞으로 북미관계가 잘 풀려서 대북경제제재도 풀리게 되면 북한의 경제적 잠재력(지하자원과 노동력 등)이 남한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많다. 그러나 이점만이 강조되면 한편으로는 남한이 북한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이 싫어서 통일을 반대한다는 관점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본다. 


 경제적 이익이 사람들에게 통일의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어가는 우리들 마음가짐에 내려야 할 뿌리가 건강해야 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뿌리 내리고 북한을 바라보고 통일 준비를 했으면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경제적 이익을 떠나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한반도의 구성원들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는 말이다. 그리고 분단으로 인해 생긴 수많은 왜곡과 사회적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분단으로 인해 상처받은 하나님나라의 가치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렇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통일’이라면, 잘 해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이익과 탐욕과 배제가 아니라 존중과 나눔과 포용이 선행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궁극적이고 지속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작은 통일을 경험했고, 실패했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인격과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내 인격과 실력에 걸맞지 않은 삶의 목표와 배우자를 구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역량과는 별개로, ‘나’와 ‘나의 가정’이 추구하려는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누군가의 이익으로 인해 강제로 훼손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겪은 일들을 우리 사회가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과연 남한 사회의 성숙도과 실력은 북한을 받아들이고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로 바꾸어 질문해 볼 수도 있겠다.


 따라서 북한과 관계 맺고,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목적에 어떠한 이익부터 앞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이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살기 위한 한반도의 통일, 하나님나라를 이루어 가는 한반도의 통일이여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북한과 북한 사람들과 북한이탈주민들을 대했으면 한다. 그리고 ‘개인’과 ‘사회’ 모두가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역량을 기르는 일을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1) 국민일보, 2002년 3월 21일자 (http://www.kmib.co.kr/news)

2) 뉴스앤넷, 2016년 2월 20일자 (http://www.newsn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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