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하나님의 선물] '동료인간', 당신을 새롭게 알고 싶어요!

Posted by GCF IVF GCF
2018. 8. 3. 16:14 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소리] 2018 세번째 소리 - 0607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사춘기, 하나님의 선물]



▷ 사춘기, 하나님의 선물(1) - 사춘기 시절을 돌아보며_익명

▷ 사춘기, 하나님의 선물(2) - 사춘기 아이들 곁에서 보낸 7년_한민지

▷ 사춘기, 하나님의 선물(3) -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_서정명

▷ 사춘기, 하나님의 선물(4) - 사춘기 자녀와 나의 성장기(記)_김미혜

▶ 사춘기, 하나님의 선물(5) - '동료인간', 당신을 새롭게 알고 싶어요!_한영주









 '동료인간', 당신을 새롭게 알고 싶어요!








◆ 한영주(이화여대92)

현재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상담과 연구, 상담자교육을 하고 있다. 동대학부설 ‘15세상담연구소’ 초대소장으로 청소년과 부모들을 위한 상담 및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했다. 대학시절 주전공이었던 IVF에서 남편(최규창, 서강87)을 만나 꿈꾸던 가정을 이루었고, 무던한 사춘기를 지나 새내기 IVFer가 된 아들과 이제 막 격렬한 사춘기에 진입한 중1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동안 내가 알던 아이 같지가 않아요. 이게 사춘기구나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도무지 적응이 안돼요. 순수하고 해맑던 내 아이, 대체 어디로 간 거죠? 잃어버린 내 아이 좀 돌려주세요!” (2018, 사춘기 자녀를 둔 어느 부모의 절규)


 사춘기 자녀와 함께 지내는 일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한반도 전쟁을 막을 만큼 무서운 중2’라는 우스갯소리가 만들어졌을까요. “나-사춘기, 건들지 마시오”라고 이마에 써놓기라도 한듯, 이유 없는 짜증과 온갖 허세를 보고 있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이에게 한두 마디 훈계라도 던지면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과격(!)한 반응에 당황하기 일쑤지요. 친구에게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다정한 모습인데, 부모에게는 마치 애정이 식어버린 옛 애인 대하듯 합니다. 게다가 아침저녁이 다른 감정기복이란…. 조울증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되기도 합니다. 


 사춘기 부모가 무슨 죄인도 아니고, ‘예측불허 감정 기복에 얼마나 맞춰야하나’ 하는 억울함이 마음에 수시로 올라올 수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받아주기만 하면 끝도 없이 막나갈 것 같고, 그렇다고 순간순간 올라오는 부모의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면 역효과가 더 크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 것은 아닌지, 이러다가 아이와 점점 멀어지는 건 아닌지 두렵고 답답해지곤 하죠. ‘중2병’이라고들 하니 중2까지만 잘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을 잠시 갖지만 그것은 실질적 도움이 전혀 되지 않지요. 사춘기 아이들의 행동을 ‘병(炳)’이나 문제로 취급하는 병리적 관점은 결코 사춘기 아이를 바라보는 바람직한 관점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사춘기 변화는 치료의 대상인 ‘병(病)’이 아니라, 정상적인 발달의 한 과정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대처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삶을 발달적 관점으로 볼 때, 사춘기는 인생의 ‘첫 번째 전환기(transition period)’에 해당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연령에 따라 신체적 변화와 함께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지는 발달단계들을 거치게 됩니다. 그 중에서 전환기란 특별히 급격한 변화를 맞으면서, 질적으로 구분되는 인생의 다음 단계로 진입해가는 시기를 말합니다. 계절로 비유한다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와 같은 것이지요.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날씨, 어떤 옷차림을 준비해야할지 예측이 안돼서 잘못하면 감기에 걸리기 쉬운 고약한 때가 환절기죠.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 이 시기는 생명과 성장을 위해 온 세상이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는 시기입니다.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생명이 차가운 흙을 뚫고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두꺼운 나무껍질 속에서 새로운 잎이 비집고 나오면서 애쓰는 중이지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한 진통의 시기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강력하고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 새로운 탄생을 위한 진통을 겪고 있는 시기가 바로 사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겪는 진통이 무엇인지, 그 속에 어떤 숨은 의미가 있는 것인지 자세히 살펴볼까요? 





 우선, 모두 아시는 것처럼 사춘기는 급격한 신체 변화로 시작합니다. 짧은 시간에 키와 몸무게가 크게 증가하고, 이차성징으로 불리는 성적인 변화가 현저하게 나타나죠. 한 연구에 따르면 사춘기 남자아이의 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성인남성의 40여 배나 된다고 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과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 컨트롤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학교에서 남자청소년들과 집단 상담을 진행하다보면, 활동 중에 동성친구와 살짝 스치기만 해도 발기가 돼서 난감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수업 중에도 종종 그런 일이 있고, 각자 나름의 대처법을 이야기하며 함께 웃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여자아이들 또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의 골격이 변하고 정기적으로 월경의 불편을 감수하게 되지요. 성호르몬은 정서적 기복을 동반하기 때문에 참으로 난감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1990년대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해온 뇌 발달 연구에 따르면, 사춘기의 뇌는 성호르몬의 영향 이상으로 중대한 변화를 주도합니다. 특히 감정 조절의 밸브 역할을 하는 뇌 부위가 격한 공사 중이라 조절능력이 일시적으로 상실되곤 하는 상태가 사춘기에 발생합니다. 감정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고 다양하게 느껴지는데,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고 조절할 밸브가 일시고장이기 때문에 감정이 그대로 행동화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뇌기능이 정상적이었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보고 행동했을 일인데, 사고치고 나서야 행동의 결과를 깨닫곤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이유지요. 한 아이가 한창 사춘기 표출(?)을 해놓고는 저에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선생님, 나도 내 마음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사춘기 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수많은 작업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사춘기 아이들은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피곤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잠을 많이 자는데도, 또 자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상태는 무기력이나 게으름이라기보다는 발달적 특징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현실은 한국에서 가장 잠을 적게 자는 나이가 중고등학교 시절이라는 점이지요. 게다가 학습과 입시의 부담까지 가중되어 있으니, 가만히 놔둬도 피곤하고 무거운 시기의 아이들에게 참으로 미안한 일입니다. 인생 계절의 첫 환절기인 사춘기, 자신의 변화를 이해하고 편안히 수용하며 필요한 쉼을 가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아이들에게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여유 공간이 있다면, 아이들은 보다 건강하게 인생의 다음 단계를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환절기 건강이 다음 계절의 건강을 좌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춘기 변화에는 숨은 심리적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롯한 나’의 심리적 탄생입니다. 청소년 심리학자라 불리는 에릭슨(Erik Erikson)은 이것을 청소년기의 고유한 발달과업, ‘자아정체성(self-identity)’의 형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쉽게 말해서 그동안은 누군가의 딸이나 아들이라는 ‘주어진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다면, 사춘기를 지나면서 한명의 독립된 인격체, 즉 새로운 ‘동료인간’으로 탄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모양, 주어진 색깔이 아니라 오롯이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나의 모습과 색깔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녀의 사춘기 변화가 시작되면 부모는 새로운 동료인간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잘해오던 행동을 갑자기 하고 싶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도 부모가 권하면 거부하는 이상(?)한 변화. 어른들의 의견이라면 무조건 거부권부터 표현하고 무언가에 꽂히면 앞뒤를 안 가리고 이를 고집하는 행동들. 이런 ‘청개구리 짓’들은 모두 ‘누군가의 영향으로 오염되지 않은 오롯한 나’를 찾아가는 심리적 탄생을 위한 몸부림입니다. 


 사춘기 부모로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겉으로 보이는 행동 이면에 감춰져 있는 심리적 탄생이라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멈춰서는 것’입니다. “얘가 왜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우선 말과 행동을 멈추어야 합니다.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아이에 대한 지식은 선입견에 불과하다, 이제 새로운 동료인간을 만나는 것이다’라고 속으로 되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너무 답답할 때는 산책을 하거나 부모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등 아이와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한때는 나의 분신처럼 가까웠던 아이를 이제는 떠나보내고, 남은 인생을 함께 걸어가야 할 동료인간으로 탄생하는 아이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가 온 것입니다. “아, 드디어 오셨군요! 자신만의 오롯한 색깔을 찾아가는 새로운 동료인간, 당신을 새롭게 알고 싶어요”라는 겸허한 마음은 사춘기 아이와 대화할 수 있는 기본 토대입니다. 이 토대 위에서만 부모는 사춘기 아이와 소통할 수 있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갈 수 있습니다. 


 심리적 탄생과정은 자신만의 시간,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아이가 자기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는 게 답답하고 믿을 수 없다며 방문을 아예 떼버리는 부모들이 종종 있습니다. 심리발달의 관점에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대처라 할 수 있지요. 물론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아이를 마냥 내버려두라는 것은 아닙니다. 문을 잠그거나 ‘쾅’ 닫고 들어가는 행동이 부모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이에게 동료인간으로서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상호조약을 맺는 방식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는 당연히 감정이 식고 정상적 대화가 가능한 ‘평화모드’가 올 때를 기다려서 준비하고 시도해야 합니다. 사실 사춘기 아이들도 겉으로는 애정이 식은 것처럼 굴지만, 속으로는 부모님의 보호와 지도를 절실히 원합니다. 친구가 아무리 좋아도 한계가 있다는 걸 아이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변하고 있는 자신을 동료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어린아이 시기 그대로 대하는 방식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대놓고 누군가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사춘기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일이거든요. 


 사춘기에는 ‘부모-자녀의 우호적 관계’가 유지되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사춘기에는 적군과 아군의 ‘편 가르기’가 매우 중요해지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가 싸워서 이겨야할 적(敵)이 아니라 ‘내 편’에 속해 있어야 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사춘기 아이들은 마음껏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며 심리적으로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대신 해주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제 그것은 아이의 몫입니다.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춘기 자녀 문제로 상담을 찾는 부모님들 중에는 자녀의 진로나 학업 성취를 위해 이 한 몸 희생하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이의 인생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마음은 귀하지만, 안타깝게도 방향이 완전히 틀렸습니다. 마치 밤새워서 코피 터져가며 공부했는데 알고 보니 시험은 다른 과목인 것과 같습니다. 사춘기 아이에게 필요한 부모역할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지원군이지, 학습매니저나 지도사는 아니기 때문이죠. 사춘기에 가장 좋은 부모는 ‘아파서 집에 누워있는 부모’라는 말을 들고 무릎을 친 적이 있습니다. 늘 그 자리에 존재하면서 따뜻한 눈빛만 보내주는 부모, 필요한 기반은 마련해주되 뭔가를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부모가 사춘기 최고의 부모입니다. 





 사춘기라는 인생의 발달단계는 인간의 계획이 아니지요. 모든 인간을 만드신 그분께서 태초부터 미리 마련해놓으신, 전 인류가 겪게 만드신 과정입니다.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셨던 예수께서도 사춘기의 변화를 오롯이 겪으셨을 것이고, 솟구치는 성호르몬의 격동과 뇌의 변화, 심리적 탄생을 체험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십대 사춘기 예수는 부모 속을 꽤나 끓이기도 했더군요. 가족행사 중에 한마디 말도 없이 며칠이나 사라졌다가, 찾아 헤맸던 부모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왜 나를 찾았나요?”하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황당한, 사춘기다운 행동이죠. 하지만 ‘모친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면서(51절)’ 과정의 의미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의 변화, 황당해 보이는 행동들은 그저 지나가거나 치료해야할 문제들이 아니라, 분명 자기 자신만의 오롯한 길을 찾아가는 의미 있는 과정입니다. 내가 낳았고 키워온 ‘내 아이’이지만 동시에 하나님 앞에 선 개별자로 재탄생하는 과정이라는 시각, 아이의 행동이 갖는 의미를 마음에 담아 해석해주는 부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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