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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함께 책을 읽는 유익_광주지역 "책읽기 모임"

[소리] 2018 첫번째 소리 - 020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1) - 삶에 가까운 공부하기(아볼로클럽 창원팀 독서모임)_박소영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2) - 말랑한 떡볶이와 책이 만나는 시간(주부학사 독서모임 "말랑, 책볶이")_한선미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3) - 영혼을 위한 한 끼 집밥(북클럽 "나를 위한 저녁")_이혜원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4) - 함께 책을 읽는 유익(광주지역 "책읽기 모임")_박시현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5) - 상상과 실험의 공간을 만들다(진주지역 학사 독서모임)_류재한










함께 책을 읽는 유익

- 광주지역 "책읽기 모임" -





◆ 박시현(외국어대06)

외대 글로벌 캠퍼스 아랍어 통번역학과로 IVF에서 고년차 리더까지 섬겼으며, 

현재는 광주에 있는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입니다. 조그마한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소리>에서 ‘광주지역 독서모임’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한동안 잊고 살았던 IVF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졸업하고 학사로 산 지 벌써 5년째가 되었습니다. 간혹 ‘캠퍼스와 세상 속의 하나님나라 운동’이라는 목표 아래, 공동체하우스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고 호흡했던 소중한 시간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삶과 사역에 치이며 바쁘게 살아가다보니 잊고 지냈는데, <소리>를 통해 다시 추억의 집에 들어갔다 온 느낌입니다. 그 시절은 추억 속에 남겨둔 과거형이 되어버렸지만, ‘하나님나라 운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겠지요.


 저는 사람들에게 제 신앙의 여정을 이야기 해줄 기회가 생길 때마다 대학시절 IVF를 통해 일종의 ‘제 2의 회심’을 했다고 말합니다. 특히 IVF에서 기독교 세계관적인 사유를 접하게 되면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자신의 세계관이나 삶의 철학, 라이프 스타일까지도 바꾸게 만드는 총체적인 변화를 수반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제 2의 회심이었습니다. 이후 리더로 섬길 때 1년간 휴학을 하며 많은 책을 탐독했고, 그 시절 기독청년 아카데미의 정기 강좌와 청어람 아카데미의 세속성자 수요모임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세계관적인 회심’과 독서, 아카데미에서의 경험 등이 어우러져, 훗날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단한 일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광주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이하 신대원)에 입학한 후에도 “기독청년 아카데미”나 “새물결 아카데미”같은 아카데미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본래 신학이 아닌 인문학을 전공하려다가 진학 실패 등을 겪으며 쉬게 되었고, 결국 신학을 공부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아카데미 사역이 활발하지 못한 호남지역에서 아카데미 사역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비전도 품게 되었습니다. 2년 전부터 그 비전을 품고 기도만 해왔지요. 그러다가 신대원 입학 후 우연히 동기로부터 광주에도 “아카데미 숨과 쉼”이라는 단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단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가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하게 됐고, 그룹을 운영하고 계시는 박근호 목사님과 연락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외대 서울캠퍼스에서 간사로 사역하셨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삶의 터전이자 사역의 현장인 “그루터기 공동체”에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아카데미 사역과 공동체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덤으로 지금의 “책읽기 모임”까지 소개 받았습니다. ‘책모임’이라는 단어, 그리고 새로운 분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모임에 발을 들여 놓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독서모임에 처음 참여하게 된 날은 정확하게 2017년 5월 22일입니다. 이 독서모임은 제가 들어오기 약 서너 달 전에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캠퍼스나 교회에서 사역하시는 젊은 사역자분들로 이루어진 모임입니다. 박근호 목사님과 위길복 간사님, 그리고 문병주 간사님은 IVF 분들입니다. 그리고 박재도 목사님(광주 기억하는 교회)과 김윤오 전도사님, 뒤늦게 합류한 제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모임 구성이 캠퍼스나 교회에서 발로 뛰는 젊은 사역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사역에 대한, 특히 청년 사역에 대한 실제적인 고민, 그리고 교회에 대한 고민이 책모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제기되고 이야기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일례로 강남순 교수님의 저서 「페미니스트 신학」을 텍스트로 모임을 진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일전에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캠퍼스에서나 SNS 상에서 페미니즘 담론이 핫한 이슈로 떠올랐던 시기였습니다. 청년 대상 사역자들이 페미니즘 사상의 물결로 인해 20대 청년들과 소통의 문제에서 실제적으로 겪었던 어려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책모임을 통해 시대가 참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것이 교회로도 밀려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책모임 후 「페미니스트 신학」의 저자 강남순 교수님이 광주에 오셔서 「용서에 대하여」라는 저서로 북 토크를 열기도 해서, 더 생생하게 다가왔던 책입니다.


 제가 합류한 뒤 함께 나눈 책은 「눈 뜬 자들의 영성(크리스토퍼 휴어츠, IVP)」, 「페미니스트 신학 ? 여성, 영성, 생명(강남순, 한국신학연구소)」, 「데칼로그(김용규, 포이에마)」, 「두 지평(앤서니 티슬턴, IVP)」입니다. 그 이전에는 「국가란 무엇인가」, 「복음이란 무엇인가」,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등으로 모임을 했다고 합니다. 이제 곧 다가오는 월요일에는 「생각의 시대(김용규, 살림)」로 책모임을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모임은 「두 지평」으로 책모임을 했을 때입니다. 성경 해석과 철학적 해석학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전문적인 책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책의 두께라니!  IVF 모 간사님께서 강력하게 추천하신 책이라는 소문에 대뜸 함께 읽어보기로 했지만, 만만치 않은 책이었습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건지 책이 나를 읽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읽던 곳을 또 읽고 또 읽으면서 겨우 겨우 해치우듯이 책을 읽었습니다. 하이데거, 불트만, 가다머, 비트켄슈타인 등등, 철학자들이 하는 말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알쏭달쏭한 말을 정신없이 해나갔습니다. 적어도 제가 맡은 부분이나마 잘 이해해 보려고 2차 자료까지 봐가며 공부했지만 2차 자료를 보니 더 헷갈리는 것을 느끼며 서로서로가 무지의 한계를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이 책을 함께 읽어나갔던 때는 한참 포항 지진과 모 교회의 세습 문제로 시끌시끌했던 시기입니다. 책모임 밴드에 “두 지평을 통한 씨름으로 시름시름 ‘무식앓이’의 여진을 앓고 있다”라고 올라온 글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달에 걸쳐 겨우 끝내고 나서 “왜 이 책이 강력 추천되었던 건지 모르겠다”며 우스갯소리가 오고가기도 했습니다. 책읽기를 끝내고 나니 왠지 다른 책이 쉽게 느껴질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한 가지 느낀 것은, 성경을 해석할 때 그냥 단순하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해있는 삶의 실존과 상황을 고려해서 그 안에서 해석될 때 성경의 진리가 자신에게 의미 있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 부분 하나는 제대로 건졌던 기억이 납니다.


 「데칼로그」도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 유익했던 책입니다. 십계명을 ‘철학의 존재론적 사유’를 가지고 풀어내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책인데, 십계명은 ‘인간에게 존재의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풀어주신 계명’임을 이야기합니다. 실제 이 책은 제가 교육전도사로 교회에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십계명을 위시로 하는 구약의 ‘율법’을 딱딱하고 율법주의적일 것 같은 느낌으로 대했던 편견을 깨뜨리는 데에 일조했습니다.  





 책모임은 보통 월요일 오전 10시에 격주 간격으로 그루터기 공동체에서 진행됩니다. 참석자들 사정에 따라 미뤄지는 경우도 있지요. 모두 다 책을 읽어오되 사회자가 진행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사회자가 맡은 책이나 챕터의 주된 내용을 이야기하고 텍스트를 읽으며 자신이 깨달은 점과 느낀 점 등을 자유롭게 나눈 후, 자연스럽게 질문을 제기하며 토론식으로 모임이 진행됩니다. 처음에는 사회자가 제기한 질문에서 토론이 이루어지지만 이내 질문이 질문을 낳고 그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낳게 되면서, 자연스레 혼자서 책을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사유와 통찰을 제공해주는 효과를 보게 됩니다. 이런 경험은 같이 책을 읽을 때 흔히 경험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텍스트가 또 다른 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힘’ 말입니다. ‘책’을 통해 ‘나’를 읽어내는 것, 이뿐만 아니라 ‘책모임’에서 같은 책을 통해 또 다른 나인 ‘타자’를 읽어내는 것, 이렇게 새롭게 읽어낸 텍스트가 모여서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힘, 이게 바로 책모임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텍스트’는 실제 자신의 ‘삶의 자리(context)’ 속에서 재생산되어 나온 따끈따끈한 한정판, 일명 ‘리미티드 에디션’이 되는 것이겠지요? 저는 책모임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서로의 삶이 반영된 새로운 텍스트만큼 주어진 현실에 큰 울림을 주는 텍스트가 어디 있을까요?


 저의 ‘삶의 자리(context)’에서도 책모임은 간접적으로나마 자극을 주었습니다. 특히나 위에서 말한 두 책, 「데칼로그」와 「두 지평」이 자극제였지요. 교회를 섬기고 있는 위치에서, 그리고 신학을 공부하는 신학도의 자리에서, 텍스트의 한 구절 한 구절은 귀중한 통찰을 제공해주곤 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들과 함께 매주 한 시간씩 교리문답을 공부합니다. 마침 십계명을 다루는 부분이었는데, 십계명의 전체를 꿰뚫는 주제와, 그 주제를 어떻게 하면 공동체의 상황에 맞도록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때 바로 「데칼로그」 책이 “하나님 안에서 존재의 자유를 누리며 자유롭게 살아라”는 메시지를 제시했습니다. 저에게는 ‘유레카’였습니다. 저는 이 말을 청장년이 섞여있는 교회 공동체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죄의 노예 상태에서 구원하셔서 하나님이 성도 여러분에게 주실 모든 축복들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그것을 온전히 이 땅에서 누리고 살려면, 즉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며 살려면 십계명이 말하는 메시지를 주의 깊게 되새겨야 합니다”라는 언어로 바꾸어 전달하고, 계명 하나하나의 의미를 풀어가며 함께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 공동체만의 언어로 바꿔서 해석할 수 있도록 자극을 준 책은 「두 지평」입니다. “성서 텍스트의 해석은 자신이 처한 삶의 실존이 고려될 때에 진짜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는 내용을 통해 얻은 원리였습니다. 이처럼 책모임은 큰 유익이 되는 모임입니다. 

  

  ‘함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함께 하나님나라를 꿈꾸고 욕망하면서 그 욕망을 그려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서는 그려나가기 벅차고 또 한계가 있습니다. 단순히 함께 모여서 내가 하지 못한 생각들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책모임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학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많은 IVFer 분들에게 제안합니다. 함께 하나님나라를 욕망할 수 있는 모임, 혹시나 그 욕망이 시들었더라도 다시 불을 붙여보기를 소망하는 분들과 생각을 모을 수 있는 ‘책모임’ 한번 해보는 것,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