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하나님의 선물] 사춘기 시절을 돌아보며

Posted by GCF IVF GCF
2018. 7. 4. 09:50 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소리] 2018 세번째 소리 - 0607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사춘기, 하나님의 선물]


▶ 사춘기, 하나님의 선물(1) - 사춘기 시절을 돌아보며_익명

▷ 사춘기, 하나님의 선물(2) - 사춘기 아이들 곁에서 보낸 7년_한민지

▷ 사춘기, 하나님의 선물(3) -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_서정명

▷ 사춘기, 하나님의 선물(4) - 사춘기 자녀와 나의 성장기(記)_김미혜

▷ 사춘기, 하나님의 선물(5) - '동료인간', 당신을 새롭게 알고 싶어요!_한영주









사춘기 시절을 돌아보며









◆ 익명






 IVF에서 원투원을 하다보면 자신의 인생 전반을 대략적으로 이야기하곤 하지요. IVF를 4년째 하고 있고 그만큼 원투원도 많이 했지만, 제겐 여전히 입 밖으로 쉽게 꺼내지지 않는 시절이 있습니다. 바로 중학생 시절입니다.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일본 만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저는 소위 ‘오타쿠’라고 불리는 아이였습니다. 가방고리부터 필통까지 일본 만화 캐릭터 상품을 들고 다녔던 터라 제가 오타쿠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저는 “오타쿠 역겨워”라는 소리를 들으며 반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생긴 것도 딱 오타쿠다. 안여돼(안경 쓴 여드름 난 돼지의 준말). 오타쿠 새끼. 왜 사냐” 등 여러 욕설을 들었습니다. 너무 우울하고 힘들었지만 부모님도 제가 일본 만화 보는 것을 싫어하셨기에 이를 의논해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14살이 되면서 2차 성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당시 따돌림을 당해 혼자 다니던 저는 같은 반 남자아이들에게 손쉬운 성추행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거의 매일, 남자아이들이 가슴을 만지고 달아나는 등의 성추행을 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한 번은 남학생 두 명이 저를 화장실로 데려가 성추행 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다행히 지나가던 선생님의 도움으로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너무나 큰 충격과 상처로 남았고, 남자아이들의 성추행 시도는 교외 봉사활동이라는 가벼운 처벌에 그쳤습니다.


 그 즈음부터 등교하기가 너무나 싫었습니다. 계속된 따돌림으로 인한 상처와 성추행으로 인한 우울함만이 가득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부모님께 학교에 가기 싫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를 모범생 딸로만 생각하고 또 계속 그러하기를 기대해왔던 부모님은 걱정해주시다가도 갑자기 왜 이렇게 나약하냐며 화를 내시기도 하고 또 다시 걱정해주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 머릿속에는 “나약한 녀석 같으니”라는 말만이 뇌리에 박혀 ‘부모님조차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에 서글프게 울었습니다.





 결국 저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지방에 있는 사립학교였는데, 시험을 보아서 합격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다니던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던 제 마음과 저를 모범생 딸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반영되어 결정한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용기 내어 학교를 옮겼으나 상황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오타쿠’였고 그곳의 아이들도 오타쿠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반 여자아이들은 뒤에서 욕을 하며 수군거렸고, 남자아이들은 지나가면서 가만히 앉아있는 제 어깨를 치거나 종아리를 차거나 머리를 때렸습니다. 그곳은 지방이었기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기에 따돌림은 학교를 마친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점점 학교 밖으로 도망을 나가거나 기숙사에서 몰래 도망쳐 나오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기숙사에서 자는 것이 너무 싫어서 기숙사 밖 모텔에서 잠을 자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반년 즈음 지나 부모님께 “새로운 학교에서도 적응을 하지 못하겠다. 반 애들 때문에 힘들다. 학교를 나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거나 그 이유가 만화 때문이라거나 하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적응을 못하겠다고만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왜 더 자세하게 말하지 못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아마 자존심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자세한 설명 없이 학교를 다니지 못하겠다고만 하는 딸을 보며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셨습니다. “또? 또 학교를 옮기자고? 왜 이렇게 나약한 거냐. 도대체 왜 적응을 못 해?” 그날 저는 밤새 펑펑 울며 잠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폭언에 저는 마음의 문을 닫고, 방문을 닫았습니다. 온라인 게임에 푹 빠져 방 안에서 하루 종일 게임만 했습니다. ‘부모님이란 존재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저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난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존재이다.’ 이렇게 생각했고, 그러다보니 게임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교류가 깊어졌습니다. 저라는 존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해주는 이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제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제 모든 사정을 이야기하고, 위로받고, 더욱 더 게임에 의존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게임에 심취해 있던 어느 날, 30대의 아저씨로부터 “그 미친 집에서 도망 나오라. 내가 잘 해주겠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그 아저씨와는 게임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위로를 받았던 터라 저는 그 아저씨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흔쾌히 집을 나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집을 나오자, 집으로부터 저를 안전하게 해줄 거라고 생각했던 그 아저씨는 전혀 안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가출을 함으로써 훨씬 위태로워졌으며 그 아저씨와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성적 관계를 해야만 하는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가출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고, 열흘 만에 경찰에 붙잡히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겪었던 것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하지 못해 혼란스러웠고, 그 아저씨에 대한 사랑, 원망, 분노, 슬픔 등 너무나 많은 감정들이 제 안에 있었으며, 부모님에 대한 분노로 집에 가기 싫다는 마음까지 더해져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저는 별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부모님께 매를 맞고 혼이 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열흘간의 가출 생활을 하면서 지쳤던 터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오히려 안도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잠든 줄로만 알고 아버지께서 분노에 차 하신 말씀을 엿듣게 되었습니다. “저 창녀 같은 년.” 그 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밤새 울고, 죽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또 울고, 그러며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가족에게 아무런 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분노뿐이었습니다. 이전보다 더 방 안에 틀어박혔으며, 방 밖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았습니다. 중학교는 중퇴했습니다. 게임을 하고 만화를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아무와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처럼 1년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문득, 고등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창문을 타고 넘어왔습니다. 정말로 갑자기 눈물이 솟아났습니다. 1년 동안 죽은 사람처럼 살아서 감정이 모두 메마른 줄 알았는데, 그 재잘거리는 소리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펑펑 울면서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와 말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방문을 열고 나와서 “엄마, 아빠. 저 고등학교 다니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하고 바로 그 다음날 고등학교에 등록했습니다. 당시에 제 결심과 결단에 무척이나 놀랐던 부모님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에 등록하고 나서 집에는 다시 활기가 돋았고, 또 입학 준비로 분주해졌습니다. 1년 만에 대화다운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서로의 상처에 대해서나 그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꺼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몇 마디 일상적인 말이 오가는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의 일이라 어쩐지 따스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입학하여 적응하고 또 입시라는 큰일을 치르면서 저희 가족은 그렇게 차츰차츰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되돌아보니 따돌림, 성추행, 가출, 가족과의 소통 단절까지 참 다사다난했던 사춘기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일련의 일을 겪는 동안 제가 하나님을 몰라 기댈 곳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빠져나오는 데에 너무나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부모님은 모두 불신론자이시고 저 또한 그랬으며 대학교에 들어와 IVF에 우연히 가입하게 되면서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면 하나님께 기대어 조금은 덜 힘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나 더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당시 부모님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살펴주시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다녀야 한다”,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이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죠. 하지만 공부보다는 만화를 좋아하는, 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딸을 이해하지 못했고 품어주시지 못했습니다. 저 또한 제 스스로가 부모님의 기대에 무척이나 못 미치는 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소통하기가 더욱 꺼려졌던 것 같습니다. 만약 부모님이 제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또 저를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여주셨다면, 사춘기 시절의 어려움을 조금 더 쉽게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어려운 상황에 도달하지조차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제게는 아픔으로 남아있는 과거이고 다 치유되지 않은 일들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감사하게도 지금은 이러한 아픔에서 많이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지옥 같은 중학교 시절은 이미 10년도 더 지난 과거가 되었습니다. 또 가족 안에서도 회복이 일어났고, 이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조금씩 상처가 아물고 있습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도 언젠가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 치유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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