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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정치 참여, 그 현장에 서다] 괴담의 시대, 어떻게 해야 할까_김동문

[소리] 2017년 첫 번째 소리- 0203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괴담의 시대, 어떻게 해야 할까

 


 

괴담이 가득한 시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정조사특위)에 증인으로 나온 이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모두 똑같았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이 아니다라는 식의 상투적인 거짓말이었다. 지금 한국사회는 더 이상 진실이 의미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다. 마치 강한 것이 진실인 양, 약자의 진실은 무의미한 것인 양, 당당하게 거짓을 만들고 유포하고 강변하는 시대인 것 같다. 거짓말 탐지기를 갖다 놓는다 하여도 거짓으로 판명되지 않을 만큼, 거짓에 심취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시대는 괴담이 가득하다. 괴담은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하나는 힘 있는 자들이 괴담이라 낙인찍은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힘 있는 이들이 거짓을 퍼뜨리기 위하여 조작한 것이다.

 

진실을 찾고자 합리적 근거에 바탕을 둔 의심을 제기할 때면, 힘 있는 자들은 으레 괴담이라는 명목의 낙인을 찍었다. 이 괴담은 아주 오래 전에 유언비어라 불리던 진실의 다른 이름을 연상시킨다. 너무나 많은 진실이 유언비어로 내몰렸다.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이들은, 유언비어를 퍼뜨린 혐의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괴담은 유언비어를 닮았다. 물론 괴담으로 내몰린 주장들 가운데는 전혀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억지스러운 추론들도 뒤섞여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아니면 습관적으로 만들어 퍼뜨리는 괴담이 있다. 이 괴담은 악성 괴담이다. 때때로 조악한 괴담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진실의 모양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 육하원칙의 형식을 갖추고, 친절 하게 관련 증거(?) 사진까지 넣어서 퍼뜨린다. 이렇게 정교한 괴담은 다수의 상식과 이성을 갖춘 이들 조차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조악한 수준의 괴담조차도 철저하게 진실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 괴담 유포의 가장 중요한 목표물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현 사회를 괴담이 넘치는 사회로 표현하고 싶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괴담의 생산, 유포 과정에 가장 중요한 몫을 다하고 있는 공간이 바로 한국교회라고 판단한다. 다소 단정에 가까운 이 같은 확신은 이슬람 괴담의 유통 경로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 괴담의 진원지를 따라가다 보면, ‘주님의 신부같은 식의 이름을 사용 하는 개인 또는 단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한축으로는 극우적 성향을 물씬 풍기는 아이디를 가진 이들이었다. 교회 안팎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클럽은 괴담 원산지 세탁의 중요한 경로인 듯했 다. 한국교회의 정치적 보수화 덕분인지 괴담은 너무 손쉽게 퍼뜨려졌다. 아니면 괴담 때문에 한국교회가 정치적 보수화 경향이 강화된 것인지, 선후관계는 잘 모르겠다.

 

북한의 남침 땅굴이 남한 곳곳에 존재한다는 땅굴 괴담, 좀비처럼 꾸준히 살아나는 5.18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 북한군 특수 부대가 파견되었다는 괴담, 국정교과서 지지 목소리 한복판에는 기독교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의 보수성 향의 단체들의 활동에도 기독교 쪽의 협력이 엿보인다. 결정적인 순간만 되면, 아니 극우적 보수에 힘을 실어줄 순간이다 싶으면, 로마서 13장을 들먹이며 정교분리를 외치는 교계 목소리는 여전히 낯설 기만 하다. 그런데 이런 목소리를 퍼뜨리는 매개가 카카오톡같은 공간이다. 그래서 카카오톡에 물든 한국교회를 카톡교라고 일컫는 지경에 이르렀다.



 

괴담의 생성 과정과 팩트 체크

 

현 시국과 관련하여서도 수많은 괴담과 거짓 루머를 퍼뜨리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오보 괴담 바로잡기: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코너를 운영할 정도이다.

 

괴담이 어떻게 생성되고 유포되는지 가장 일반적인 과정은 이렇다. 굳이 단계를 구분하자면 괴담 생산자, 괴담 가공자, 괴담 유통자, 괴담 소비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괴담 생산자는 직접 생산자와 생산, 가공을 병행하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 단순 괴담 유포자의 괴담을 정교하게 재가공하여 퍼뜨리는 경우와 초기 괴담 유포자와 가공자가 동일 인물인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괴담 생산자가 누구이든, 어떤 경로이든, 가공 라인을 통해 괴담은 더욱 정교해진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과정은 괴담 유통 라인이다.

 

수년 전에는 다음 아고라같은 공간을 통해 가짜뉴스 또는 괴담의 출처를 세탁하고(많은 경우 초기 게시글의 링크는 사라지곤 한다), 그것을 온라인 공간에 재공유하는 식이었다. 요즘은 카카오톡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복사하기기능만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톡 공유 과정에 오래 전 행운의 편지 같은 기법이 첨가되기도 한다. “긴급이라 느니 주변에 몇 사람 이상에게 퍼뜨려 주세요와 같은 요청이 담기는 것이다. 정말이지 카카오 톡이나 다른 매개를 통한 괴담의 유포 과정은 하도급과 다단계 시스템이 잘 조화된 것 같다. 여기서 겨자씨 비유와 달란트 비유가 떠오른다. 한 사람이 뿌린 괴담 하나가 순식간에 수십만 명, 수백만 명에게 전파되기도 하니까.

 

이제 잘 알려진 괴담에 대한 팩트 체크와 사실 발굴을 통해 확인한 괴담의 예를 들어 보고자 한다. 괴담에 대한 팩트 체크 과정은 합리적 근거에 바탕을 둔 의심을 제기하는 연속과정이다.

 

# “피해자에게는 무죄추정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저 기원전 2700년 함무라비 법정에서도 인정되고 있다는 주장 왜곡 의혹

 

지난 15,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2차 변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사건 법률대리인단 중 한 명인 서석구 변호사의 발언 가운데 한 대목이다. 서 변호사의 이 논증을 접하면서 짚어봐야 할 팩트에는 무엇이 있을까? 서 변호사의 저 말이 함무라비 법을 제대로 인용한 것인지, 실제로 함무라비 법을 읽고서 인용한 것인지 짚어봐야 한다. 이것은 글쓰기나 말 인용에 기본인 일차 자료 검증이고, 팩트 체크의 바탕인 합리적 의심의 표출이다.

 

이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은 간단하다. 그러나 고대 문헌을 짚어봐야 하는 조금 번거로운 수고는 피할 길이 없다.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792년에서 1750년에 바빌론을 통치한 함무라비 왕이 반포한 고대 바빌로니아의 법전이다. 최대한 양보해서 서 변호사가 함무라비 법을 알고 있다고 믿어주고 그의 말을 이해한다면, 그가 흥분하거나 당황해서 관련 연도를 헷갈린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감싸기도 근거가 없다. 그것은 두 번째 문헌 확인을 통해 나오는 가볍게 나오는 결론 덕분이다. 함무라비 법은 모두 282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재판정 관련 조항은 1-5항에 강조되고 있다.

 

1.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고소하여 그를 살인자로 지목하였지만,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을 때는, 그의 고소인은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2.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고발하면 그 피고소인이 강으로 가서 그 강을 껑충 뛰었는데, 그가 강에 빠진다면 고소인은 그의 집을 재산을 취할 것이 다. 그러나 강이 그 피고소인의 무죄를 증명하면 그는 해를 당하지 않으며, 그를 고소한 사람은 사형에 처해질 것이고, 강을 껑충 뛴 사람은 그의 고소인에게 속한 집의 재산을 취할 것이다.

 

3. 사람이 한 경우에 거짓 증거를 하였고 그가 한그 말이 확인되지 않았을 때, 그 경우가 목숨에 관련된 경우라면 그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

 

4. 그가 곡식이나 돈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면, 그는 그 경우의 손해를 물어야 할 것이다.

 

5. 재판관이 결정된 판단을 내렸다가 또 그 판결을 문서로 남겼는데 이후에 그 판결을 변경했을 때, 그들은 재판관이 판결을 번복했음을 입증할 것이다. 그는 원고에게 12배로 갚을 것이며, 그들은 그 재판관을 공히 재판관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재판을 담당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 조항들 안에, 서 변호사의 말처럼 무죄추정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는 조항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함무라비 법의 나머지 275 개 조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논증은 일반인들에게 이름이 익숙한 고대 문헌의 권위에 빗댄 자기주장의 전형이다. 권위에 의존한 거짓 논증의 오류를 보여준다. ‘함무라비 법을 확인도 안하고 인용하였다면 거짓 논증이 고, 읽었는데도 이런 식으로 인용했다면 난독증을 드러내는 것이다. 서 변호사는 무죄추정 주장 논증의 예로 왜 뜬금없이 함무라비 법전을 잘못 인용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괴담 앞에 선 그리스도인의 자세와 태도

 

괴담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출발점은 합리적인 의심이다. 합리적 의심은 누군가의 말을 반대하기 위해서이거나 아니면 무조건 지지하기 위해서 취하게 되는 과정이 아니다. 팩트 체크는 중립 적인 과정이다. 맹목적 지지 또는 반대가 일상화된 지금, 우리에게는 사실 확인을 위한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괴담이 가득하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거짓이 넘치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합리적 의심, 회의하는 용기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영혼 없는 퍼 나르기를 멈춰야 한다.

 

괴담에 속지 않고 괴담을 퍼뜨리지 않기 위한 작은 아이디어를 제안해 본다. 정보의 원출처를 확인하자. 정보 공유자에게 앞선 출처를 확인하자. 일단 정보를 전달 받으면 전달 경로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최소한 전승 과정 3단계 윗선까지는 확인해 보자. 사실과 해석을 구별하자. 주장과 사실도 구별하자. 해석과 주장의 근거가 타당한지 따져보자. 공유 속도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키자. 그 사이에 팩트 확인을 위한 공동체적 수고를 하자. 구글링과 영어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혹시 그 비슷한 주장이 국내 또는 해외에 있었는지 짚어 보자. 공동체 안에서 약속을 하자. 괴담 또는 과장된 내용을 3회 이상 공유할 경우, 신뢰 대상에서 배제한다는 공동체적 서약을 하고 서로 점검하자.

 

불완전한 세상에 괴담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괴담을 의도하고 가공하고 퍼뜨리는 것은 주의하고 경계하자. 거짓의 아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일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더 이상 괴담의 진원지, 최대 유통망의 역할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유되는 정보의 정교함 또는 허무맹랑함을 넘어서서,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교양과 상식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실과 진실, 합리적 의심, 근거에 바탕을 둔 정보를 통해, 맹목적 보수성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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