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샬롬 교육을 향한 기독교대안교육_마병식



내 아이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밝은 미래를 살아가길 우리 모두 바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기가 유난히 강한 한국에서, 직업의 귀천이 암암리에 존재하는 이 땅에서 부모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겠습니다. 풍족하진 못하더라도 남들보다 부족하고 싶진 않은 우리의 깊숙한 마음을 교묘하게 부추기는 메시지가 넘쳐납니다.


아이를 '잘' 기르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정답은 없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들을 무한한 경쟁과 승자독식의 세계로 내모는 것이 아닌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한 발 앞서 이러한 시도를 하고 계신 분들의 사례를 듣고 함께 고민해 봅시다.

교육, 새로운 바람



샬롬 교육을 향한 기독교대안교육 



우리나라 교육에서 기독교교육의 역사와 공헌은 찬란하다. 기독교교육은 개화기 이후 당시의 대안교육이라 할 수 있는 신교육의 문을 새로운 형태와 방향으로 열었다. 또한 암울한 우리 공동체를 위한 소망의 씨앗을 뿌린 일종의 복음사역이었다. 이후 100여년을 지나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한 기독교대안교육은 기존 기독교학교인 미션스쿨(mission school)에 대한 성찰과 어두운 우리 공교육에 대한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기독교대안교육은 크게 홈스쿨링과 대안학교 형태로 전개되었다. 신앙교육과 교과교육의 통합, 교육의 본질을 위한 가정의 교육 기능 회복이라는 공통적 인식 안에서, 기존 공교육에서 미흡한 기독교육의 기능을 실천하고 과도한 경쟁교육으로 황폐화된 교육 현장에서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시도였다. 최근 들어 기독교대안학교는 양적으로 보면 기대 이상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다. 불과 십여 년 전에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던 학교 수가 이제는 수백여 개로 늘어나 괄목할 만한 학교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대안학교는 귀에 익숙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대안교육의 명분이 되었던 ‘대안성’이 충족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대안성에 따라오는 교육의 신뢰와 소망은 우리 교육을 향한 기독교대안교육의 가치인 ‘샬롬’을 위한 책임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의 샬롬, 우리가 그 가치를 여전히 잘 지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성찰할 때가 되었다. 기독교대안교육이 모두를 위한 소망으로 열려 있는지, 그리고 교육을 고민하는 우리 모두에게 실천적 가능성으로 여전히 유효한지 살펴보아야 한다.  






기독교대안교육의 가능성과 우리의 한계 

  

우리나라 기독교대안교육은 공교육의 황폐화에 대한 기독교육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기존의 국가가 주도하는 공교육이라는 제도적 틀의 한계에서 벗어나, 뜻있는 사람들과 교회의 시도로 시작된 새로운 개념의 학교였다. 교육과정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하려는 적극적인 모색, 그리고 우리의 신앙으로 연약한 교육의 대상을 섬기고자 하는 학교 형태로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대안교육의 등장과 전개의 과정은 우리 교육에 대한 본질을 생각하고 교육을 새롭게 이해하는 데 기회를 제공하였다. 기존 교육의 생각은 국가가 세운 학교와 제도권 교육에서만 교육이 이루어지고, 교육의 책임 또한 교육당국과 학교에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기독교대안교육의 등장과 함께 우리는 국가가 주도하고 법으로 규정한 학교 교육의 책임과 법으로 정한 교육의 의무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 스스로가 성경적인 교육의 기초를 생각하게 되었다. 


성경적인 교육에 대한 모색으로서 부모는 가정에서 교육의 책임과 역할에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한다는 의식을 일깨웠다. 그 실천이 기독교 홈스쿨과 대안학교다. 이렇게 자녀교육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신앙적인 교육의 동기들은 제도적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교육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가정의 신앙 전수와 기독교적 통합교육을 위한 기독학교, 다문화 가정 지원과 탈북청소년(NKey)을 위한 실천적 기독학교, 정서적 장애나 신체적 장애 아동을 위한 치유성장 기독학교, 선교를 지원하는 학교(MK학교), 예체능의 달란트 계발을 위한 예체능 기독학교 등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 교육에 신선한 바람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대안교육은 대안교육을 뛰어넘어 모두를 위한 보편교육으로 나아가기에는 여전히 많은 한계와 과제가 있다. 극도로 편협한 입시 중심의 교육 풍토와 경직된 교육 제도와 구조, 전인적 교육에 대한 의식의 빈곤 등은 교육의 대안을 생각하는 교육과정에서 제약으로 작용한다. 특히 제도로 묶인 경직된 교육 구조는 비인가학교과 제도권 밖의 교육이라는 생소한 용어들을 등장시켰으며, 제도권과 멀어진 비인가 대안학교들의 설립과 운영에 고비용의 구조로 이어지게 한다. 


대안교육의 이러한 특수한 한계들은 고스란히 대안교육과 대안학교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편,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는 기독교대안교육에 대한 비판은 교육현장이 대안교육을 향한 의지와 철학만큼이나 우리 제도권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학교성’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대안교육에 대한 법적인 한계를 벗어나고, 기존의 교육 정서를 넘는 새로운 시도에 걸맞은 철학과 세밀한 전략이 사실상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한편으로는 거대한 교육의 주류를 벗어난 새로운 교육의 장을 만들어갈 더 강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의 기독대안교육에는 제도적인 장애물을 극복하고 교육에 대한 사회적 주류의식을 뛰어넘는 더 정교한 실행철학과 충만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기독교대안교육의 고비용 구조에서, 경제적 여건이 되는 특정 부류를 위한 교육과 보편적인 교육 기여로 확장되지 못하게 하는 편중된 형식적 기독교육은 기독교대안교육의 내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의 실천적 지향점을 중심으로 한 삶으로의 교육, 세상 속에서의 삶의 실천, 이웃이 되는 세상과 소속한 공동체를 섬기고 중보하는 관계중심적인 책임의 교육, 하나님과 자연, 나와 이웃의 샬롬을 위한 교육, 사회적 책임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교육 등은 우리 교육의 성숙한 정체성을 필요로 한다. 


결국 기독교대안교육은 제도적인 한계, 한국교회의 내적인 연약한 배경, 편협한 우리 교육의 풍토, 기독교육의 실천성에 대한 깊은 성찰의 부족이라는 여러 한계를 극복하고 극복한 사례를 많이 만들어가야 한다. 역설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한계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기독교대안교육은 우리 교육의 골리앗 앞에서 당당히 직면하며 싸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샬롬을 위한 기독교대안교육 


기독교대안교육이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다가온 지 이제 10여년을 넘겼다. 작금의 상황에서 보면 소중한 열매와 아울러 교육에 대한 무언가 모르는 기대감과 우려가 함께 교차하고 있는 시점이다. 진지하게 전개되었던 교육에 대한 소망이 양적 성장에 치우친 여타의 내용 없는 빈 수레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염려와 아쉬움은 분명하고, 거룩한 명분과 시도에 비해 허접해 보이는 대안교육 현장을 부분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그런 이유가 회피하고 거부하는 명분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애정과 기대로 범 공동체적으로 기독교육을 세워가야 할 것이다. 


사실 기독교대안교육의 많은 한계들은 우리 교육의 배경과 제도적 환경에 기인하고 있다. 특히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접근할 수밖에 없는 고액의 학비 문제는 법적인 보호와 공적 재정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기인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기독대안학교 학부모들에게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로운 교육 선택을 법적으로 인정받기는커녕 공적인 재정 지원과 제도적 혜택을 포기하게 몰고 있다. 이들은 모두 교육세를 성실하게 납부하는 국민이지만 공적으로 재정 지원을 받을 권리를 포기하게끔 한다. 자유로운 교육 선택이 보장되는 않는 사회 속에서 교육주권을 찾아가기에는 많은 희생과 노력이 요구된다. 


때때로 기독교대안교육 현장의 전문성에 대해서 염려를 많이 한다. 교육의 의도가 좋으면 결과가 좋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기독교학교교육의 원리와 특성에 맞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새로운 전문성과 교육의 각론은 경험의 축적과 실천의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우리의 짧은 기독교교육의 역사를 고려해 본다면 더 많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기독교대안교육은 책임 있는 교육자들의 실천으로서 “샬롬을 위한 교육”의 길목으로 접어들었다. 온 공동체를 위한 관계중심 회복의 교육, 복음으로 평안과 위로하는 교육,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삶으로의 교육을 진지하게 추구한다. 


혹자는 기독교대안교육을 기독교의 대안교육이라는 생각을 한다. 종교적 성취를 조장하는 교육, 혹은 종교적인 기능을 위한 교육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독교대안학교는 분명히 유형의 교회와 역할이 구분되지만 사람들은 기독교학교를 교회의 확장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우리 기독교계의 근본주의적인 배경으로 인해 교회의 확장 개념으로서의 기독교 학교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학교의 위치를 좀더 엄밀하게 살펴보면 교육기관으로서의 영역 주권은 분명하다. 그것은 교육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선포하고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교육과정을 이해하고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정과 교회, 그리고 기독교학교의 협력적 네트워크로서 기독교학교를 형성하려면 좀 더 많은 교육문화를 축적해야 한다.





소망 


교육은 성장과 성찰을 필요로 한다. 교육은 관계를 만들어가고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교육은 세대와 세대 간에 언약의 선물을 주고받는 은혜의 과정이다. 기독교대안교육은 우리 사회에 대해 새로운 교육으로 접근하고자 하고, 우리 교육에 대한 책임으로서의 반응이다. 교육으로 교육에서 소외 받는 자를 돌아보고 섬기는 과정이다. 성경적인 세계관 위에 삶의 교육으로 접근하고, 그 배움을 바탕으로 이 세상을 섬기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다.


월터 스토프가 말한 것처럼, “학생들로 하여금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세상 속에서 어떠한 특정한 삶의 방식을 위해 살아가도록 활력을 불어넣는 것, 그들이 샬롬을 위해 투쟁하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 샬롬의 도래를 증언하고 비참함과 고통을 경감시키고 인류의 상처에 반응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섬기는 것, 하나님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일을 하도록 준비시키는 것” 등이 우리 기독교대안교육의 목적이다. (월터 스토프, 《샬롬을 위한 교육》, SFC 출판부) 여전히 부족하고 개선해야 할 요소들이 산재한 기독교대안교육이지만 우리는 더욱 이런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성원하고 더 나아가 책임 있는 반응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먼저 부모로서 교육에 대한 책임을 새롭게 회복하고, 국가 공동체 안에서 기독교육을 위한 권리를 찾아내고, 우리 교육의 책임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제도적인 한계와 재정적인 어려움을 뛰어넘는 대안교육의 가치와 가능성을 분명히 하고, 삶으로 드러내는 학교로서의 개념을 경험으로 축적해야 한다. 


우리 삶의 새로운 가치와 지향점이 새로운 학교를 낳고 새로운 교육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그리고 새로운 교육문화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나라에 주목하는 삶으로 드러나는 선순환의 교육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기독교대안교육의 소망이 여기에 있다. 그 소망이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되길 소망한다. 






마병식

샬롬을위한교육지원센터 총무, 전(前) 기독교대안학교연맹 사무총장



















VOL.221│2015.08+09

교육, 새로운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