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교육의 새로운 바람_김성천



내 아이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밝은 미래를 살아가길 우리 모두 바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기가 유난히 강한 한국에서, 직업의 귀천이 암암리에 존재하는 이 땅에서 부모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겠습니다. 풍족하진 못하더라도 남들보다 부족하고 싶진 않은 우리의 깊숙한 마음을 교묘하게 부추기는 메시지가 넘쳐납니다.


아이를 '잘' 기르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정답은 없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들을 무한한 경쟁과 승자독식의 세계로 내모는 것이 아닌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한 발 앞서 이러한 시도를 하고 계신 분들의 사례를 듣고 함께 고민해 봅시다.

교육, 새로운 바람



교육의 새로운 바람


ⓒstevensokulski (pixabay.com)


신영복 교수는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에서 역사를 중심부와 주변부의 교체 과정으로 설명한다. 우리나라와 중국, 서양의 역사가 그랬다. 주변부 세력은 힘을 얻어 어느 순간 중심부를 장악한다. 그 중심 세력은 세월이 지나 다시 쇠퇴한다. 변방의 어느 세력이 점점 힘을 얻다가 중심부를 차지한다. 신영복 교수는 변방을 단순한 공간의 의미로 보지 않고 철학과 가치를 내포한 역동적인 개념으로 해석한다. 


나는 우리 교육이 현재 중심 가치와 변방의 가치가 충돌하고 있으며, 아직 변방의 가치가 중심의 가치로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에 관한 중심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학벌주의와 학력주의, 경쟁과 입시, 진학교육, 성적, 일류학교로 설명할 수 있겠다. 


현 교육의 모습은 역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고려시대의 좌주문생제도는 오늘날의 학벌주의 내지는 학연과 유사하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는 양반들의 계층 유지를 위한 경쟁 도구였으며 생존 수단이었다. 과거 제도 방식을 둘러싼 훈구파와 사림파 간의 갈등은 입시 제도를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특목고와 일반고의 유불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대입 제도의 계급적 투쟁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가 양반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리그였다면,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에 진입하기 위한 전체의 리그로 경쟁의 양상이 확대 재생산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화 과정에서 초, 중, 고, 대학교 졸업장 중 어떤 것을 획득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졌다. 이러한 수직적 차별을 우리는 학력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에 경제 자본, 사회 자본, 문화 자본 등의 총량에 따른 혜택의 차별, 즉 수평적 차별이 존재하는 것을 우리는 학벌주의라고 말한다. 이러한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는 공교육의 경쟁 구도를 가속화시켰으며 공교육은 곧 입시에 종속되게 만들었다. IVF를 거친 학사들은 대체적으로 입시 전쟁을 치열하게 거치면서 살아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자녀의 교육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설국열차>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무너져가는 기차에서 질문을 던진다. “열차에서 뛰어내릴 것인가, 아니면 그냥 열차를 타야만 하는가?” 그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 보자. 많은 이들이 학벌주의와 학력주의, 경쟁과 입시, 진학교육, 일류학교 등의 궤도를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다. 불확실하지만 궤도를 수정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관행대로 달려야 하는가?  

  

과연 기존의 견고한 중심부의 교육 가치에 균열은 나타나고 있을까? 나는 균열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판단한다. 작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17개의 지역에서 13명의 진보교육감이 탄생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학부모들이 교육 임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공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기서 승리하려면 양과 속도의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남들보다 많이, 빨리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법이 최근 무너지고 있다. 공부 많이 시키는 학교, 선행학습을 시키는 학원 등을 찾아다니면서 명문대학교를 보냈다고 치자. 명문대학교를 나오면 뭐하나? 대부분 백수인데...


ⓒtebielyc (pixabay.com)

  

이러한 패러다임에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흐름이 도도히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주변부적인 가치는 협력과 전인적 성장, 혁신학교, 진로교육, 행복 등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고통스럽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 행복한 아이가 내일도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신념이 주변부적인 가치에 깔려 있다. 이를 구현하는 학교가 ‘혁신학교’이다. 

  

혁신학교는 기존의 중심부 가치에 도전한다. 예컨대, 혁신학교는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데 열을 올리지 않는다. 들어온 학생들의 수준이 어떠하든 그들을 잘 길러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혁신학교는 대체적으로 열악한 지역이나 비선호 학교에 주목한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이 많이 몰려있는 학교에 보다 많은 지원을 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혁신학교는 공교육이라는 제도권의 틀 내에서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런 점에서 혁신학교는 대안학교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혁신학교는 입시 위주의 교육을 거부한다. 입시에 종속된 교육과정이 아닌 학생들의 다양한 성장을 자극할 수 있는 수업과 교육과정, 평가를 꿈꾼다. 이를 위해서 교사들의 학습공동체를 강조한다. 교사들의 개인기에 의존한 수업이 아닌 학교의 비전과 철학에 입각하여 공동체와 함께하는 수업을 꿈꾼다. 

  

예컨대, 고양시에는 덕양중학교가 있다. 1968년에 개교했고 18학급으로 운영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6학급으로 줄었다. 학교 주변 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이면서 슬럼화 되기 시작했고 학생들이 더 이상 모이지 않았다. 이러한 학교에 뜻을 같이 하는 기독교사들이 모여들었고 몇 년 후 대표적인 혁신학교로 우뚝 섰다.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 학교는 수많은 단체와 MOU를 체결하여 마을과 함께 학생들을 길러낸다. ‘학생회 기 살려주기’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 스스로 기획능력을 기르며 재미있고 행복한 학교를 만든다. 수업은 강의식 수업에서 탈피하여 모둠별 참여 수업을 진행한다. 다양한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앎과 삶을 일치시키는 교육을 추구한다. 이러한 혁신학교가 2015년 3월 현재 전국에 816곳에 달한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치열한 고입과 대입 경쟁을 경험했다. 그 삶이 옳았고 바람직한가를 성찰하면서 기존의 명문고 패러다임에서 탈피하여 혁신학교 패러다임을 선택하는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혁신학교의 수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전국의 11,000여 개의 학교를 언제 다 혁신학교로 만들 것인가? 결국, 혁신학교를 넘어 학교혁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혁신학교는 교사들에게 자기의 안일함과 싸우게 하고, 학부모들에게는 불안감과 싸우게 만든다. 혁신학교는 교사들의 헌신을 요구하는데, 이는 공짜로 좋은 학교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혁신학교 운동에 뛰어들려면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학부모들은 자녀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혁신학교는 아이들의 삶에 경쟁력을 강화하면 강화했지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혁신학교는 협력과 소통, 문제해결력과 창의력, 인문학적 소양과 민주시민성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과정과 수업을 진행한다. 


ⓒWounds_and_Cracks (pixabay.com)


최근에는 대학교와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이 변화하고 있다. 출신대학이 아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를 살핀다.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는 사람을 원하는데, 혁신학교는 교육과정을 통한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데 유리하다. 변화하는 대입제도를 보면 예전처럼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많이 한다고 해서 대학에 많이 보내는 것도 아니다. 수능 위주로 선발하는 정시의 비중은 낮아지고 학생부 중심의 수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가 풍성해지려면 학교의 철학과 수업, 평가,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혁신학교는 대입을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대입 결과가 예상 외로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악의 경우, 우리 아이의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불안한가? 기억하자. 예전의 진학 공식이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명문대학교 나와서 대기업 들어갔다고 치자. 40대 이후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가? 결국은 진학이 아니라 진로이다. 우리나라 직업 사전을 보면 대략 12,000개 이상의 직업군이 존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은 몇 개나 될까? 남들이 선망하고 알아주는 직업 2~30개 군에 들어가기 위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등바등 사는 것은 아닐까? 

  

올해 서울시 교육청은 ‘오디세이 학교’를 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진로탐색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학교이다. 우리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학생이 일단 진학을 하면 쉼표 없이 무조건 달려야 한다. 그나마 대학에서는 휴학생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중고등학교에서는 상상하기가 힘들다. 대학생들을 보라. 진로와 적성이 아닌 성적에 맞추어 진학을 하고는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고, 편입을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 교육은 남들이 뛰니까 생각 없이 같이 뛰는 상황인 것 같다. 속도가 아닌 방향이 더욱 중요한데도 학생들은 방향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속도전에 돌입한다. 얼마나 더 많이 방황하는 청춘을 봐야 하는 걸까. 

  

‘오디세이 학교’는 고등학교 버전의 자유학기제로 보면 된다. 현 정부에서도 진로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를 적용한다. 자유학기제는 한 학기만큼은 시험으로부터 자유롭게, 적어도 오후에는 동아리, 진로, 교과프로젝트 활동 등을 진행하게 해주자는 취지다. 우리 교육의 획일성에 관한 문제의식은 이제 보수와 진보 간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꿈의 학교’를 시작했다. 사실 학생들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현행 공교육 시스템에서는 자신의 재능과 관심 분야를 키워나가기가 어렵다. 사교육 시장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학교 밖에는 진정성과 열정, 전문성을 가지고 학생들을 향한 선의로 뭔가를 가르쳐 보고 싶어 하는 주체들이 많다. 그러나 학교는 폐쇄적인 모습을 보였다. 교육은 교사들의 몫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식은 이론적 지식도 있지만 경험적 지식도 있다. 이론적 지식과 경험적 지식의 폭발적 증가는 학교 교육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지역사회의 네트워크를 잘 활용한 배움과 가르침의 전략을 학교가 모색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꿈의 학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과 후나 주말을 이용해 여는 오케스트라, 연극, 승마, 영화,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학습 공간을 꿈의 학교라고 부른다. 학생들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지식과 기술을 배운다. 아직은 50여 개에 불과하지만 이 수요는 앞으로 폭증할 것으로 기대한다. 


ⓒUnsplash (pixabay.com)


이러한 변화를 종합해 보면 선발 경쟁에서 잘 가르치는 학교의 효과로, 성적에서 성장으로, 특목고에서 혁신학교로, 진학에서 진로교육으로, 경쟁에서 협력, 고통에서 행복으로 일정하고도 꾸준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교 바꾸기, 그 후 12년》이란 책에서는 혁신학교의 원조 격인 남한산초등학교 졸업생의 삶을 추적하였다. 졸업생들 중에는 명문대학에 간 아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대학을 가기도 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생성과 자기 주체성이라는 특성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남한산초등학교 교육과정과 선생님과의 만남이 삶의 에너지의 원천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힘이 있다면 특목고와 명문대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분당에는 이우학교가 있다. 혁신학교이자 대안학교이다. 입학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은 이우학교 교사들에게 자기 아이를 서울대학교에 보낼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우학교 선생님들은 대답한다. “우리 학교는 서울대학교 입학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 학교를 졸업해서 자신이 가진 재능과 특기를 가지고 이 사회에 공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이 우리 학교의 교육 목표입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사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내기도 한다. 이우학교는 기독교 학교가 아니다. 기독교 학교를 표방하면서 명문대학교에 학생들을 보내는 것을 제1의 사명으로 하는 미션 스쿨이 우리나라에는 많다. 어느 학교가 진정한 기독 정신을 실현하는 학교일까? 

  

IVF 학사들의 사명은 무엇일까? 직장에서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직장에서 기독인들의 모임을 만들고, 자신이 속한 조직과 기관이 공의와 정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감시하면서 살아야 한다. ‘좋은교사운동’의 경우, 11,000여 개의 학교에서 깨어있는 기독교사 한 명을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의 무수히 많은 기관과 조직, 단체에는 깨어있는 기독 직장인 및 시민 한 명이 절실히 필요하다. 

  

학교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전투가 진행되고 있다. 일종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싸움이요, 삶의 전투이다. 학교는 늘 학부모의 요구가 입시 교육이며 경쟁교육이라는 핑계를 댄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장관이 바뀌면 우리 교육이 바뀔까? 학교 현장과 일상에서 발생하는 우리 모두의 전투, 즉 중심부와 주변부 간의 전투를 이기지 못하면 아이들의 고통은 계속된다. 치열한 접전의 상황에서 IVF 학사들은 강력한 원군이다. 교사라면 학교 혁신 운동에, 학부모라면 학부모 모임과 학교운영위원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학교를 견인해야 한다. 




김성천◆강원대92

성균관대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경기도교육청 정책기획관 장학사로 활동 중이다. 《혁신학교란 무엇인가》(맘에드림)의 저자이다. 


















VOL.221│2015.08+09

교육, 새로운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