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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내 삶에서 실현되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_한원정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을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 구석구석에 소금과 빛이 된 교회의 손길이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개신교의 이미지는 끝도 알 수 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공공성 회복,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은 저 멀리에 있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 우리의 삶 가까이에서 펼쳐내어야 하는 가치입니다. 내가 아닌 특별한 누군가가 추구하고 노력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주위를 둘러보시겠어요? 나는 이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광장 속의 기독교



내 삶에서 실현되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시민단체인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 처음 문을 두드린 것은 3년쯤 전이다. 대학 때부터 과외나 학원 강사 등을 하면서,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일이 어느 정도 나의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중고등학생을 만날 바에는 이왕이면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중 IVF 학사들과 함께 학습과 멘토링을 하는 모임을 만들고 일하면서, 교과 과목이 아닌 교육과 멘토링, 코칭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를 위해 좀 더 전문적인 교육을 받게 되면서 현재까지 프리랜서로 청소년기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습과 진로에 관한 컨설팅과 강의를 하고 있다. 


학생들을 실제로 만나서 학습 멘토링을 하다 보니, 학생들은 성적과 입시에 끊임없이 힘을 쏟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성적은 쉽게 오르지 않아 괴로워하고 있었다. 부모들 역시 입시를 위한 사교육 비용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허덕이고 성적과 입시로 인해 부모자녀 관계는 악화되고 갈등은 더욱 깊어만 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우리는 왜 아무도 원치 않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고민스러웠다. 이런 정황 속에서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과 만나게 되었다.

 

“여러분, 지금의 교육제도는 엉망이니, 내 자식을 희생시켜서라도 이 제도를 바꾸는 일에 동참합시다. 이 일에 힘쓸 분이 계신가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들었던 첫 강의, 그것도 송인수 대표님의 강의 중에 나온 말씀이었다. 충격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좀 더 전문성을 갖고자, 또 곧 학교에 들어갈 내 아이를 위한 실용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 선택해서 들은 강의였다. “우리 단체와 함께하면 사교육 걱정 없이 자녀를 잘 키우고 공부시킬 수 있습니다.”와 같은 달콤한 말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그런 방법이 있을까 알고 싶어 비용을 지불하고 들은 강의에서 내 자식을 희생시켜서 제도를 바꾸는 일에 동참하라니... 무례한 요구였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고, 함께 하기로 마음을 열어 단체의 후원자가 되었다. 내 생애 최초의, 여태까지도 유일무이한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2014년,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4만 2천원이다. 그러나 사교육에 참여한 학생들로 범위를 좁히면 월평균 지출은 훨씬 많아진다. 사교육 참여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5만 3천원이고, 고등학교의 경우 46만 1천원이다. 이 또한 부모의 소득에 따라서 6배 이상 사교육비 차이가 있다. 사교육이 대학입시로 이어지고 또한 대학 이후에도 계속되는 취업 사교육으로 인해서 사회 계층의 구조는 더욱더 양극화되는 실정이다.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사실 사교육비가 이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점점 확실해 지는 것은, 내게 소신이 있어서 사교육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사교육을 못 시킬 것 같은 착잡한 마음이 든다.


사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말하는 사교육이란, 학원이나 학습지 등의 공교육 외 모든 활동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을 목적으로 한 시민단체이기 때문에 과도한 선행과 맹목적인 입시를 위한 사교육 시장을 규제하고, 더 나아가서 공교육 부실과 입시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구조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사교육에 대한 모두의 걱정을 없애기 위해서는, 입시경쟁 속 입시 사교육은 개인이 어쩌기에는 어쩔 수 없는 영역으로 인정하더라도 그 속에서라도 불필요한 사교육비는 줄여야 한다. 그리고 입시경쟁 때문에 개인에게 부담을 주는 사교육과 관련해서는, 개인에게 무한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고, 수업과 평가의 질을 개선해야 하며, 대학교육 및 입시체제를 개편하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발굴하고 또 올바른 채용 관행이 정착되도록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단체가 추구하는 가장 큰 목표이다. 생각만 해도 살고 싶은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간절히 바라는 단 한 가지는, 부디 이 땅에서 입시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 것이다. 제발... 


사실 나는 사회나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다. 불의한 사회에 분노하는 것도 잠깐이요 지속성을 가지고 어떤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일도 별로 열심을 내지 못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아직은 손이 많이 가는 어린 아이들을 밥 먹이고 재우고 온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반복된 일상조차조차 버겁고 피곤한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다가 작년, 둘째아이가 백일쯤 되었을 때 세월호 사건을 보고 들었다. 부모이기에 슬펐고 어른이기에 너무나 미안했다. 그리고 그저 나와 내 가족, 내 주변의 사람들과 즐겁게, 폼나게 살고 싶었던 마음을 회개했다. 일말의 사회적 정의조차 잃어버린 우리의 마음에 꽃 같은 아이들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어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실질적인 것은 무엇인지 기도하기 시작했다.


2015 등대지기학교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단체와 뜻을 같이 하는 회원이라면 반드시 듣고 싶어 하는 강의가 있는데, 바로 <등대지기> 강의다. 매년 연1회 정도 열리는 등대지기 강좌는 정말 최고의 강사들을 모시고 7~8회기 정도 열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나는 등대지기 강좌를 신청하고 조금 더 마음과 수고를 내어 수강했다. 혹시나 강의를 신청하지 못한 회원들을 위해서 강의를 요약하고 소감을 적는 강의 스케치를 작성했는데, 이제 막 돌이 지난 둘째아이를 돌보면서 매주 시간을 내어 강의를 듣고 글을 쓰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자는 새벽에 일어나 녹화된 강의를 듣고 정리하는 시간은, 개인적으로 정말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강의를 집중해서 들으면서 내 의식은 더욱 변화하기 시작했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초기 멤버로 지역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오지랖 기질을 발휘해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단체를 알리고 지역모임에 나오기를 권했다. 주변 사람들이 단체를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고 정기적으로 지역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고, 나 또한 지역모임에서 만난 분들을 통해서 용기와 확신을 얻는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라는 단체 이름을 접하는 사람들은 처음에 조금 망설인다. 현재 교육 환경에서 사교육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반대로 사교육 없이도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은 마음에 단체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어떠한 목적이 있든지 상관없다. 다만 조금이라도 통하는 마음을 얻었다면 함께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단체에 대한 마음이 늘 열정적이거나 언제나 열려있는 것만은 아니다. 왜 굳이 나와 내 아이가 이 일에 동참해야 하는지, 좀 편하게 그냥 사교육에 아이를 맡기는 것이 당연한 시대의 흐름인데 왜 자꾸 고민하는지, 무엇보다 나중에 아이가 입시에 실패했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이고 과연 아이는 행복할까, 이런저런 불안이 밀려올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정서적, 사회적으로 함께하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많은 등대지기들이 힘이 되어 준다.


현재 단체에서 ‘수포자 없는 입시 플랜’ 운동을 펼치고 있다. 현 입시에서는 엄청난 수의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들)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자신의 꿈이 요리사여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하루 3~4시간씩 수학을 공부해야 하고, 국문학과에 진학하려고 해도 엄청난 시간을 들여 수학을 공부해야 한다. 수학 교과서에서 다루는 분량을 줄이고 전공과 계열에 맞는 수학 시험 범위를 조정하고 영어처럼 수학도 절대평가로 바뀌게 된다면 지금처럼 학생들이 수학으로 인한 엄청난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수학에 들이는 엄청난 사교육비도 절감될 것이다. 


사실 ‘서명 한번 한다고 설마 입시 문제가 해결 되겠어?’라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 나 또한 처음에 단체에서 수포자 없는 수학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선행학습 위주의 과도한 사교육 시장을 형성한 것이 바로 특목고 입시였는데 단체에서 끊임없이 외고 입시의 변화를 연구하고 요구하면서 실제적으로 외고 입시가 달라지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수학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자녀를 둔 분들, 혹은 아직 어린 자녀를 키우지만 본인이 수학 때문에 괴로운 학창시절을 보낸 분들, 그리고 이미 대학입시를 치룬 자녀가 있지만 다음 세대에게 수학 고통을 없애 주고 싶은 분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학사님들 모두 이 운동에 함께 참여해 주길 바란다. 간혹 수학이 제일 쉽고 매력적이며 입시에서 수학 과목에서 큰 은혜를 입은 분들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 정의로운 삶이란, 힘을 가진 사람이 힘이 없고 배우지 못한 사람을 섬기는 것인데 수학의 고수들이 이 땅의 수포자들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정의로운 삶이다.




최근 12년 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차를 가지고 거리에 나가기까지 12년이나 걸렸다. 나의 두려움과 불안함과는 달리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차들은 함께 만든 규율 안에서 움직이고 있어서 나는 그저 속도와 차선을 잘 지키기만 하면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간혹 초보인 나를 못마땅해 하는 운전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해 주고 양보한다. 운전대를 다시 잡으면서 나는 새로운 정의로운 세상을 맛보고 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나라의 의는 저 멀리 거창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영역과 내 관심 분야에서부터 작게 구하고 또 그것이 실현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저 나의 자리에서, n분의 1의 역할을 다하는 정의로운 국민으로 살고 싶다. 





한원정◆서울여대98

6살, 2살 두 딸의 엄마. 학습, 진로 코칭 강사. 관계로 시작되어 관계로 끝나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고 '우리'에 격하게, 과하게 관심이 많다. 그래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반짝 반짝 빛이 되고 싶은 욕망 아줌마.



















vol.220=2015.06+07

광장 속의 기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