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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홈스쿨로 가치의 전환을 모색하다_박종숙



내 아이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밝은 미래를 살아가길 우리 모두 바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기가 유난히 강한 한국에서, 직업의 귀천이 암암리에 존재하는 이 땅에서 부모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겠습니다. 풍족하진 못하더라도 남들보다 부족하고 싶진 않은 우리의 깊숙한 마음을 교묘하게 부추기는 메시지가 넘쳐납니다.


아이를 '잘' 기르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정답은 없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들을 무한한 경쟁과 승자독식의 세계로 내모는 것이 아닌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한 발 앞서 이러한 시도를 하고 계신 분들의 사례를 듣고 함께 고민해 봅시다.

교육, 새로운 바람



홈스쿨로 가치의 전환을 모색하다



ⓒStockSnap(pixabay.com)


우리가 홈스쿨링을 결정한 것은 큰아이의 학교부적응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사람 좋아하는 큰아들은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노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하나에 꽂히면 다른 것을 돌아볼 줄 모르는 이 아이의 성향이 선생님에게는 골칫덩어리였나 보다. 선생님이 내게 직접 전화한 적은 없었지만 큰아이의 일기장에 가끔씩 써서 보내주시던 장문의 글 속에 큰아이를 힘들어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그 사정을 지켜보며 엄마인 나 역시 늘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홈스쿨을 하겠다는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학교라는 제도에서 버텨내야 사회생활도 할 수 있는 거라고, 혼도 나고 어려움도 겪어가며 뒹굴뒹굴 깎이고 다듬어져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님도 힘들어하고 아이도 힘들어하는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일이 꽤나 버거웠고, 계속되는 선생님의 지적 때문인지 아이의 마음도 점점 상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강의 차 중국에 갔던 남편이 한 선교사님 가정에 머물게 되었다. 그댁 아이가 홈스쿨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8살이던 그댁 큰딸은 아침에 일어나 말씀을 보고 책을 읽고 식사 전까지 어린 동생들을 돌보곤 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단다. 그후 남편은 홈스쿨에 마음이 열렸고 하평이를 홈스쿨로 키워보자고 요구해 왔다. 남편의 말을 무시하기에는 나 역시 고민의 시간이 짧지 않았다.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아이를 더 잘 이해하고 균형 있게 자라도록 돕는 게 피차에 좋은 결정이 아닐까 싶었다. 그때 1학년 입학을 앞둔 둘째아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둘째 역시 배움에 있어서 편차가 심한 편이었다. 배우는 속도가 느린 대신 한 가지를 집중해서 파고들 줄 아는 둘째의 장점이 학교에서는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이를 2년 동안 학교에 보내며 내가 보인 태도의 문제였다. 우리나라 교육은 옆집엄마가 문제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나 역시 주변 아줌마들의 정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나이엔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무슨 학습지가 좋다더라, 반평균이 얼마라더라 등등. 그 속에서 학습지 하나 시키지 않는 내가 불안했고, 반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온 아이는 내게 심한 핀잔을 들어야 했다. 소신 있게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심했으나 옆에서 들려오는 이런 소리들을 무심히 받아넘기지 못하고 일희일비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문득 두려워졌다. 이러다 아이를 더 망치겠구나 싶었다. 나와 아이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도 홈스쿨을 결정하는 데 큰 몫을 차지했다. 이렇게 우리 집 홈스쿨이 시작되었다.


ⓒsharpemtbr(pixabay.com)


달랑 홈스쿨 관련 책 한권 읽고 멋모르고 시작했지만, 나름 고민하며 이런저런 시도도 많이 해본 것 같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가정예배였다. 크리스천 홈스쿨링의 기본은 예배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무엇보다 예배를 가장 중심에 두었다. 그리고 한 시간씩 함께 말씀읽기, 성경구절 암송하기 등 주로 신앙과 관련된 커리큘럼을 짰다. 영어는 책읽기와 듣기, 영어 비디오 보기로 진행했다. 수학도 기본 연산만 학년에 맞게 배우도록 신경 쓰고 문제집은 거의 풀지 않다가 중고생이 되면서 개념이해와 문제풀이를 같이 하고 있다.

 

그밖에 다른 것은 주로 책으로 배워왔다. 우리 아들들이 좋아한 과목은 역사였다. 역사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 인물이 있고 문화가 있고 예술이 있다. 나라나 문명의 흥망성쇠를 이야기로 읽으며 아이들은 역사를 재밌어했다. 작년에는 철학을 전공한 아빠 덕분에 함께 철학책 읽기도 했다. 책을 읽고 한편씩 글을 써서 발표하도록 했는데, 내용을 제대로 소화해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철학자들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신선했다. 그후 아이들은 대학교 1학년 형과 함께 독서모임을 하게 되었다.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함께 발표하며 토론하는 시간인데,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는 형과 함께해서인지 매우 즐거워한다. 매번 글은 썼지만 문장이 다듬어지지 않아서 나와 함께 《문장기술》이란 책을 가지고 글쓰기 수업을 하기도 했다. 시험 스트레스 없이 하고 싶은 독서를 마음껏 할 수 있고, 그것을 자기의 언어로 표현해 보는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는 것이 홈스쿨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큰아이는 요즘 영화도 매주 한편씩 보고 있다. 워낙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평론가가 되고 싶단다. 그래서 허락해 주었다. 매주 화요일은 영화 보는 날이다. 보고 나면 평론가처럼 글을 한편씩 쓰고 있다. 아들에게는 이 날이 가장 즐거운 날이 아닌가 싶다. 둘째는 혼자 걷기를 매우 좋아한다. 하루에 거의 한 번은 한 시간 이상 걷기를 한다. 요즘엔 걸으며 보이는 자연이나 사물들을 사진으로 찍어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해 왔다. 중고로라도 카메라를 한 대 사주려고 고려 중이다.


다음은 봉사활동이다.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장애인 단체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 주로 소식지 발송 작업을 돕고, 주요행사가 있을 때는 진행을 조금씩 도왔다. 그동안은 나이가 어려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고1, 중2 나이가 되었기에 몸을 쓰고 힘을 들여야 하는 봉사를 앞으로 시켜볼 생각이다. 소식지 발송은 두 여동생이 전담하고 말이다.


이런 여러 가지 내용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덧붙여지기도 하고 빠지기도 했다. 올해부터 우리는 온 가족이 모여 함께하던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대신 필요할 때 중보기도로 일주일에 한두 번 모인다. 매일 예배를 드리며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던 긴 시간을 거쳐 이제는 아이들과 하나님의 내밀한 관계 맺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아침에 각자 개인 묵상을 갖는다. 홀로 하는 묵상을 통해 하나님이 아이들에게 직접 다가가 주시기를 기도한다.


ⓒmarcisim(www.pixabay.com)


홈스쿨을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일상의 삶이었다. 학교와 집이 같은 공간, 학습도 관계도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가족 내의 역동이 중요했다. 나이차가 두 살인 아들 둘은 친구처럼 지낼 때도 있지만 갈등도 많았다. 두 아들의 성향이 완전 반대인데다가 각자의 필요도 달라서, 두 아이의 요구를 조율해 가는 일은 어려웠다. 매일 붙어있는 엄마의 잔소리도 문제였다. 삶의 태도를 지도하는 일, 공부, 인성지도 등 모든 것을 주로 엄마가 하다 보니 아들들은 엄마의 목소리만 들려도 잔소리라고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큰아이 사춘기 때는 많이 부딪혔다. 화가 난 아들이 박차고 집을 나가기도 했고 내가 쫓아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 몰려오는 두려움. 내가 아이들을 집에 붙들어 놓고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자괴감... 매일 붙어 있으면서 부족한 나의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날 때, 이중적인 부모의 얼굴을 들켜야 했을 때,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이 고스란히 아이들 앞에 노출되었을 때.... 그런 부끄러움과 절망감 속에서 당장 홈스쿨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결심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배우게 하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정직함이었다. 부모로서 약함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용서를 구하는 것. 그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물론 초반에는 아닌 척도 해봤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가는 아이들에게 그것은 믿을 수 없는 부모임을 자인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손을 번쩍 들고 항복하니 그제야 아이들과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지금 중2인 아들은 부쩍 말 수가 줄었지만 사춘기를 넘긴 고1 아들은 여전히 수다스럽다. 이제 부모의 약점도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자기의 약점도 예전보다는 훨씬 많이 인정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같이 부딪혀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아이들이 이제 좁은 집에 박혀 있지 말고 세상 속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학교가 아니어도 몸으로 부딪히고 배울 수 있는 현장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재정이 뒷받침 되어야 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아 고민이다.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의 필요에 맞는 길을 계속 찾아볼 생각이다.

 

대학 진학에 대해서는 마음을 많이 접었다. 아들이 고1이 되자 대학에 대한 부담이 확 몰려왔다. 수학문제집을 가져다 안겼고, 모의고사를 다운받아 풀어보게 했다. 부모가 생각하는 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아들도 부모인 우리도 행복하지 않았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다시 원점부터 생각을 모았다. 이 사회가 원하는 대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우리가 홈스쿨을 해왔던가 돌아봤다. 그건 아니었다. 사회에 필요한 실력을 갖춘 아이가 되기를 원했지만 대학 진학이 목표는 아니었다. 다시 여유를 갖기로 했다. 아들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누었고, 잘 하고 있는 부분을 더 개발시킬 수 있도록 돕기로 마음먹었다. 대학 진학도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하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홈스쿨을 잘 선택한 것일까,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마음의 굴곡을 여러 번 겪었다. 지금에 와서는 홈스쿨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이 길이 답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모두 동의한다.


ⓒgeralt(pixabay.com)


몇 번 홈스쿨을 접고 학교로 돌아가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온 가족이 함께 기도했다. 그러면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홈스쿨을 지속할 이유를 주셨다. 큰아들의 경우 고등학교 진학을 매우 원했다. 우리는 전적으로 아들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사실 우리 입장은 반반이었다. 그간 해온 홈스쿨을 버리고 제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걱정과 집을 떠나 다른 세상을 맛보게 하고 싶은 마음이 왔다갔다 줄다리기를 했다. 그러나 아들은 그렇게 강하게 원했던 진학을 포기하고 홈스쿨을 계속 하기로 결정했다. 아이의 결정에 큰 역할을 한 것은 교회에서 만난 학교에 다니는 또래 친구였다. 이제 고1에 올라갈 뿐인데 벌써부터 입시 스트레스를 가득 받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부럽지도 좋아보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학교에 가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래서 큰아이의 홈스쿨링은 계속되고 있다. 중2 아들은 고등학교는 진학하겠다고 한다. 그 역시 기도하며 함께 결정해 갈 생각이다.


밑의 두 딸은 지금 홈스쿨을 하고 있지 않다. 셋째는 또래 친구가 많은 학교에 가는 것을 매우 원했다. 결국 10살 나이에 진학을 결정했다. 대신 학년은 학교생활을 고려해 한 학년 낮춘 2학년으로 들어갔다. 홈스쿨만이 교육의 왕도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아이의 요구에 따라 결정했다. 물론 계속 홈스쿨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설득하기는 했지만 딸의 요구가 강력했다. 딸은 학교생활을 매우 만족해한다. 바라던 대로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운 것은 친구와 길게 놀 수 없다는 점이다. 아이들 대부분이 학원으로 바빠 조금 놀다가 빠져나가니 계속 친구를 바꿔가며 놀거나 친구들에게 놀아줄 것을 애원하는 지경이다. 막내는 작년과 올해 1년 반, 유치원에 다녔다. 교회서 운영하는 유치원이라 신앙교육에서 시작해서 성품교육, 독서교육, 프로젝트 수업, 체육, 산책, 견학 등 아주 훌륭한 커리큘럼으로 운영되고 있어 만족하며 보내고 있다. 아이가 집에 와서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홈스쿨보다 훨씬 잘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셋째딸을 학교에 보내면서 8년 만에 다시 공교육을 경험했다.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처음 학교생활을 해보는 의연이를 잘 도와주셨고, 학교에서 드러나는 아이의 부족함에 대해 부모인 나와 대화하면서 지혜롭게 풀어가셨다. 수업도 통합수업 위주로 주입식이 아닌 토론과 발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방식으로 해나가셨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꼭 돌아오는 말이 있다. “선생님에 따라 달라. 복불복이야.” 그 말인즉슨 그러한 교육이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이라기보다는 한 교사의 철학과 분투에 따른 결과라고 들려 씁쓸하다. 앞으로 이사를 가면 학교를 옮겨야 하는데, 어떤 선생님을 만날까 걱정이다. 


나는 혹시라도 의연이가 학교생활을 힘들어 한다면 상황이 허락하는 한 학교생활을 고집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또 가능하면 대학진학이 목표가 되기 시작하는 중학교부터는 탈학교를 권면해 볼 생각도 있다. 물론 최종결정은 아이에게 맡기겠지만 적극적으로 권면해 볼 것이다. 학교가 아니어도 세상엔 맘만 먹으면 배움을 누릴 수 있는 통로가 무수히 많다. 학원가로 내몰리고 방대한 공부의 무게에 짓눌려 친구와 맘 놓고 수다도 떨 수 없는 아이들의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Greyerbaby(pixabay.com)

홈스쿨이 쉽지 않고 좌절을 많이 하면서도 지속해 온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해 하고 학교의 배움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삶의 길을 찾을 수 있다면, 교사와 부모가 함께 아이의 교육에 대해 논의하며 집과 학교에서 같은 목소리로 아이를 도와줄 수 있다면 학교 보내기를 포기하고 아이를 집안에 앉혀 놓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이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며 더불어 사는 가치를 가르쳐 주는 학교였다면 홈스쿨을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훨씬 더 전문성을 가진 교사의 가르침과 수많은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까지 포기하면서 말이다.

  

공교육에서 버텨낼 자신이 없어 홈스쿨링을 선택한 사람으로서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여전히 공교육이 살아나야 한다고 믿는다. 홈스쿨을 선택하는 사람은 부모 중 적어도 한명은 집에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맞벌이를 꼭 해야만 하는 부부에게 홈스쿨은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대다수의 아이들에게 균일한 교육의 혜택을 주고 사회에서 살아낼 수 있는 실력과 인성을 더불어 함께 키우는 장이 공교육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승자독식이 지배하는 학교, 더불어 함께가 아니라 다른 친구를 밟고 일어서야 내가 앞설 수 있다는 가치를 가르치는 학교, 공공연하게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너희 인생은 실패라고 말하는 교사가 있는 학교, 마음이 아프다.

  

이승욱 씨가 공저로 참여한 《대한민국 부모》에서 그는 우리나라 교육은 틀린 문제에서 출발한다고 이야기 한다. 교육 제도, 추구하는 목표, 방향이 이미 틀렸다는 것이다. 돈이라는 맘몬에 사로잡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른들, 돈을 잘 벌려면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야 하고 번듯한 직장에 가려면 소위 일류대학에 가야하고, 그러려면 공부를 잘 해야만 한다. 모두가 다 일류대학에 갈 수 없으니 친구보다 더 공부해야 하고 더 높은 성적을 내야 한다. 친구는 친구이기 전에 경쟁자다. 잘못된 문제의 답을 내느라 아이도 부모도 신음하고 있다. 경제적 풍요라는 거짓된 목표에 홀려 현실의 아이들이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애써 보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유예되는 행복은 과연 언제쯤 진짜 행복이라는 얼굴로 우리 아이들 앞에, 우리들 앞에 나타날 수 있을까.

  

나는 우리 교육의 해답은 가치의 전환에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 모두가 함께 행복하기 위해 내 것을 포기할 줄 아는 태도를 배우는 교육, 약자를 배려하고 내 것을 나누어 배고픈 이의 배를 채워주는 것이 당연함을 가르치는 교육, 그래서 내가 잠시 넘어져도 두렵지 않은 사회,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격려해 줄 이웃이 있음을 감사하는 사회, 이런 것들이 공교육이든 대안교육이든 모두가 공유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런 가치를 어떻게 담아 낼 수 있을까? 나만 잘 되려고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앞에서 그냥 끌려가는 삶을 살지 않으려는 노력이 내겐 홈스쿨이라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홈스쿨을 선택하고도 여전히 사회 큰 흐름에 휩쓸리는 나를 보았다. 끊임없이 깨어있지 않으면, 그리고 같은 맘을 품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기도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잘못된 교육의 흐름에 끌려가는 것을 본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내 아이에게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교육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목숨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가진 물질, 시간, 공간을 나눌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것, 그리고 나 먼저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 세상을 거스르며 그런 삶을 살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런 삶을 꿈꾸며 분투해야 하는 것이 오늘 부모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 믿는다.




박종숙◆인하대91

손으로 만드는 대부분의 것을 좋아해 그것을 매개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현재는 세월호 진상규명에 관심이 많다. 남편은 이시종 간사(서강대88)이고 아들 둘, 딸 둘 네 남매와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다. 


















VOL.221│2015.08+09

교육, 새로운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