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F맨들이 일구어낸 ‘희민건설’ 이야기

Posted by GCF IVF GCF
2015. 1. 27. 17:49 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IVF맨들이 일구어낸 ‘희민건설’ 이야기


[소리]가 학사님들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 끝에 삶의 현장에 직접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전국 방방곳곳에서 하나님나라를 위해 분투하고 계신 학사님들의 찾아 소개하기 위해 찾은 첫 방문지는 부산입니다. 자신이 부름 받은 부산지역에서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부산 ‘싸나이’들의 현장에 여러분을 모십니다. 


<체험, 삶의 현장> (1) 단순과격, 부산 IVF!_박주현 (2) 경명학교 이야기_김상윤 (3) IVF맨들이 일구어낸 ‘희민건설’ 이야기_김원식 (4) 좋은 건 함께할 때 더 좋다!_송민규 (5) 진로와 소명의 디딤돌이 되어주고파_김융동 (6) 18 카페 ‘그리고(Grigo)’의 여정_정홍원 




남들에게 크게 떠벌린 적은 없지만 20대 초반부터 내게는 창업을 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희망사항이 무색하게, 졸업하던 해 IMF라는 폭풍을 맞았다. 어디서 일을 할까 고민할 처지가 아니라 구인광고를 발견하는 것조차 희귀한 일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래도 내 딴에는 착실히 IVF를 섬겼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오는 건가? 심지어 IMF와 IVF가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도 불만스러웠다. 마음 깊은 곳에서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일할 준비가 되었는데 왜 하나님은 나를 사용하시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교만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떠한 성과가 아니라 겸손한 나의 마음이란 걸 깨닫는 데는 제법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기를 지내고 보니 그 순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곳곳에 숨겨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몇 달에 걸쳐 복잡한 마음을 추스른 후, 부산을 떠나 조금이나마 일자리가 많은 서울로 무작정 상경을 했다. 현장인부 모집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은 작은 건설회사였다. 거기서 예정에도 없던 면접을 보고서는 정직원으로 취업하는 감격을 누리게 되었다. 1년간 근무한 후 고향에 대한 향수와 부모님에 대한 생각으로 IMF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부산으로 다시 귀향하기로 결심했다. 사전 조사를 해 보았지만 예상대로 여전히 취업시장은 엉망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앞날을 준비해 주셨다. 서울에서 일했던 건설사 사장님의 처남이 부산에서 큰 사업을 하다가 망하게 되었는데, 궁여지책으로 부산에 건설사 지사를 연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그 지사의 직원으로 근무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열심히 지사 설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돌연 사장님 처남이 변심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갑자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것 같은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웬 은혜인지 사장님이 나에게 혼자서 지사를 운영해 보라는 제안을 하시는 게 아닌가! 단 1년의 경험만으로 지사 운영을 감당할 자신은 없었지만 어차피 일자리도 없는 상황에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으로 감사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부산지사를 시작하고 사장님께 과감한 지원을 요청하여 새 직원을 뽑았다. 그래도 IVF에서 동역했던 이들이 제일 먼저 생각나서 먼저 동기를 한 명 채용한 후 시간차를 두고 두 명의 후배를 더 채용하였다. 





그렇게 지사를 운영하다 보니 전부터 꿈꿔왔던 사업에 대한 마음이 커져갔다. 5년간 지사를 운영한 후 마침내 나는 ‘희민건설’을 창업하게 되었다. 나와 IVF출신 동기 1명, 후배 1명, 그리고 EBS(새벗) 멤버로 1박수련회에 참석했던 전력이 있는 학과 후배 1명, 이렇게 4명이서 시작했다. 창업 후 2명의 IVF 후배를 연달아 채용하였다. 같은 학교, 같은 IVF 출신 5명에 EBS출신 1명이라니, 정말 어마어마한 파벌이 아닐 수 없었다. 창업 때부터 여러 명의 같은 학교 IVF맨들이 모이다 보니 부산 바닥에서는 제법 관심과 부러움의 시선을 동시에 받은 것 같다. 그리고 뭔가 대단한 사업체처럼 여기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직장이 된 이곳은 우리의 소망과 더 닮아 있다기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의 장소였다. 처음에는 형, 동생으로 불리던 사이였는데 서서히 이름이 아닌 직함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또한 은연중에 각 직함에 어울리는 역할을 감당할 것을 요구하는 사이가 되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서로 다툼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양한 상황들 가운데 서로의 판단이 일치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도 역시 그런 문제들을 쉽게 극복하지 못했고 회사가 유지되는 내내 그런 문제들과 씨름을 해야 했다. 


그런 문제들 앞에서 세상적인 방법으로만 극복하려 하지 않고 말씀과 영적교제의 도움을 받으려 한 것은 참 잘한 일 같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존경해 마지않는 IVF 간사 출신이신 김유현 목사님과 문춘근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렸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직원들의 영적필요의 일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정해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1년에 4번 정도 정기적으로 여행을 갔는데 그것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두 번은 가족여행으로, 두 번은 직원들만의 여행을 가지며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과 가족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2년에 한번은 확실한 재충전을 위해 모든 직원이 해외여행을 떠났다. 해외라서 더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행들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직원들끼리 여행 가서 함께 나누었던 큐티 시간, 서로를 안아주며 느낀 감정의 교감, 결혼하는 직원을 위해 온 직원가족이 함께했던 특송 등, 우리에게는 참 좋은 추억이 많이 남았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할 수 있도록 시간과 재정, 그리고 마음의 여유까지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보기 좋은 열매는 농부의 땀의 결실인 것처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휴일에도 편히 쉴 수 없을 때가 많았다. 현장의 심각한 문제들로 인해 웬만하면 눈물을 보이지 않던 형제도 눈물을 흘린 경우도 있었다. 자매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한 가족처럼 고락을 나누던 현장책임자를 현장사고로 잃은 충격적인 일도 겪어야 했고, 생사가 달린 수술실 앞에서 수술이 잘 되길 기도하며 밤을 새운 경우도 있었다. 또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생생히 적용되는 입찰수주의 과정에서, 경쟁 기업들을 적대시 하지 않고 온유하게 그들을 따돌리고 수주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어찌나 잘 이해되던지! 그 말씀의 적용은 또 얼마나 어려운지! 나 스스로 뱀처럼 간교하면서 하나님 말씀에는 비둘기처럼 아둔한 건 아닌지 회의감이 들 때도 많았다. 아마 건설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지체들은 건설계통의 구조적 죄악과 병폐를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속에서 너무나도 작고 나약한 자신을 보며 힘들어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앞에 놓인 세상이라는 대적이 때로는 얼마나 거대해 보이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질타만 하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를 품어 주시고 격려하셔서 더 강하게 정금같이 단련하시는 분이다. 한번의 깨달음으로 알 수 있는 진리가 아니다. 끊임없는 체험의 결과로 얻어지는 깨달음이다. 혹시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이 있다면 내 짧은 소견이지만 말해주고 싶다. 거창한 목표를 세워도 한 걸음을 내딛기 힘들 수가 있고, 한 걸음을 내딛었더니 다음 걸음을 띨 곳이 보일 수도 있다. 뱀처럼 지혜롭기 위해 깊이 생각하되, 결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겸손히 인정하면서 과감히 결단하라고 말이다. 그후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도와 말씀묵상의 시간을 통해 각자에게 충분히 보여주시리라 믿는다. 





희민건설을 창업한 지 10주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함께했던 초창기 다섯 명의 IVF맨 중 이제 한 명만이 희민건설에 남아 있다. 나도 이제는 거기에 없다. 그렇다고 희민건설의 상황이 어려워진 게 아니라 전보다 더 탄탄해졌다. 과정이나 이유가 어찌되었든 우린 각각 따로 제 길을 가게 되었다. 감사한 것은 4명이 각자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을 이방으로 흩어지게 하신 주님의 역사하심이 우리에게도 적용된 것일까. 희민건설을 거치며 각자 나름대로 보통의 직장생활로 모으기 힘든 재정의 축복(?)도 받았다. 하지만 우리가 받은 게 재정의 축복뿐이라면 우리는 정말 불쌍한 자들이다. 이제 여러 회사로 나뉜 만큼 함께했던 시간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혜와 순결함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것이 어떻게 사용될지는 이제 각자의 몫이다.




김원식│부경대90

부산 정관이란 곳에서 아내와 세 아이 그리고 어머님까지 여섯 명의 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 현재는 '굿프랜즈'라는 부동산 관련 회사를 운영 중이며 부동산 개발 및 시행 사업에 관심이 많아 실제적인 준비도 조금씩 하고 있다. 하루를 소중하게 사용했다는 벅찬 가슴을 안고 하나님과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퇴근하는 날이 앞으로 더 많아지길 소망한다.



















vol.217=2014.12+2015.01

체험, 삶의 현장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1. 미소가득한 학사님도 이런 저런 상황을 겪으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