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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진로와 소명의 디딤돌이 되어주고파_김융동

진로와 소명의 디딤돌이 되어주고파




[소리]가 학사님들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 끝에 삶의 현장에 직접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전국 방방곳곳에서 하나님나라를 위해 분투하고 계신 학사님들을 소개하기 위해 찾은 첫 방문지는 부산입니다. 자신이 부름 받은 부산지역에서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부산 ‘싸나이’들의 현장에 여러분을 모십니다. 

<체험 삶의 현장> (1) 단순과격, 부산 IVF!_박주현 (2) 도덕과 자연, 역사를 잇다_김상윤 (3) IVF맨들이 일구어낸 ‘희민건설’ 이야기_김원식 (4) 좋은 건 함께할 때 더 좋다!_송민규 (5) 진로와 소명의 디딤돌이 되어주고파_김융동 (6)  카페 ‘그리고(Grigo)’의 여정_정홍원 




예비 신입학사, 세상의 문을 두드리다





2010년은 많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였다. 6년 동안 IVF와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졸업을 했기 때문이다. 진로 선택의 고민이 나를 압박해왔다. 해운경영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당연히 관련분야에 가는 것이 쉬운 길이였다. 입사원서를 준비하면서 정말 내가 하고 싶고 가슴 뛰는 일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진로 관련한 책도 읽고 선배들도 찾아 다녔다. 그런 과정 속에서 예비 학사모임 때 만났던 박기영 선배님을 다시 만났다. 당시 학사님이 우리 학교에서 교양수업을 하는 겸임교수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선배님과 원투원을 하면서 진로와 소명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리더십 교육강사가 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박기영 선배님과의 마지막 원투원에서 특별한 제안을 받았다. 교육강사가 되기보다는 교육회사를 창업해 보라는 말씀이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길이라 놀라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무슨 용기가 솟았는지 한 달 만에 창업을 했다. ‘사회적기업 청년사업가 양성사업’에 지원하여 사업자금과 사업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2명의 동역자와 함께 본격적으로 청년와 청소년 대상으로 리더십 교육을 시작했다. 1년 후, 우리의 도전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경제적으로 이윤을 창출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꿈에 대한 도전보다 현실의 안정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연결고리, 인연으로 잇다


첫 창업의 실패 이후 함께했던 동역자들은 다른 길로 가고 나만 홀로 남았다. 주변의 염려와 걱정으로 인해 남이 보기에 괜찮은 직장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다른 회사에 지원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청년이 있는지 찾고 싶었다. 일주일 동안 새로운 교육사업 분야에 도전하는 청년을 찾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아름다운배움’이라는 이름으로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진로 및 멘토링 교육을 하는 단체를 발견했다. 나보다 3년 앞서서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다른 교육단체와 다르게 시민교육단체로서 교육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젊은 청년들이 모여서 시작한 단체였다. 곧바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원형 대표님의 연락처를 찾아내 만나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평소에 내향적이고 신중한 내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내게 정말 가슴 뛰고 의미 있는 삶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며칠 후 답장이 왔다. 한번 만나고 싶은데 서울 사무실로 올 수 있겠냐 하셨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돈을 싹싹 끌어 모아 서울 사무실을 찾아갔다. 4시간 동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교육의 모습과 꿈에 대해 나눴다.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의미 있는 교육단체를 만들어서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도 굶지 않는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우연의 일치로 대표님도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짧지만 의미 있는 만남 후 부산지역에 ‘아름다운배움’ 지부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하나님은 함께할 동역자 한 명을 보내주셨다. 작은 움직임에서 인연의 꽃이 피어났다. 





본격적으로 ‘아름다운배움 부산나래’라는 이름으로 부산과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청소년 교육을 시작하였다. 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아이들부터 학교폭력 가해자 아이들, 무기력에 빠진 아이들, 미혼모인 여고생까지 다양한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의 현실은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더 어두웠고 위기상황에 놓여있었다. 교육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지만 IVF 공동체의 생활을 통해서 배웠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일터에서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동안 도시중심으로 진행하였던 진로와 멘토링 교육을 농어촌 청소년을 위한 진로와 멘토링 교육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와 농어촌간에 문화적, 교육적, 사회적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농어촌 공동체가 무너지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청소년이다. 아이들의 진로와 삶을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적 모델이 필요하다. 지난 3년 동안은 농어촌 교육공동체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꿈사다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아름다운배움’ 후원자의 물질적 도움과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의 멘토 활동을 통해서 방학기간에 12박13일 동안 아이들과 진로멘토링 캠프를 열었다. 깨어있는 후원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농어촌 공동체의 교육 불평등의 문제에 참여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의 회복을 꿈꾸고 있다. 2015년에는 경남지역에 5년 안에 폐교될 중학교 한 곳을 찾아서 꿈사다리 프로젝트(진로·멘토링 캠프)를 진행할 계획이다. 새로운 교육모델을 기대하면서 도전의 길을 걷는다. 





다시 후배들을 두드리다


4년 가까이 청소년 및 청년을 위해서 진로교육을 하던 중에 문득 IVF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배들에게 받았던 사랑과 은혜를 후배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부산지역의 몇몇 학사님들과 나누던 중에 ‘W진로소명연구소(가칭)’를 만들게 되었다. 예비학사들에게는 졸업 이후의 삶과 진로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수도권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을 주고 있지만 부산지역에는 그러한 기회가 많지 않았다. 


IVF에서 잘 훈련받고 준비된 후배들이 진로와 소명에 대해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W진로소명연구소’의 목표가 되었다. 졸업 이전에 진로와 소명에 대해서만 잘 정리되어도 학사의 삶이 두렵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방식과 가치대로 살아가는 삶이 여전히 필요하고, 후배들이 그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W진로소명연구소’가 디딤돌의 역할을 맡고 싶었다. 후배 동역자들에게 내가 걸었던 길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그들의 걸어가는 길을 응원하고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는 것이 2014년 한해의 마지막 도전이 되었다. 새로운 선택의 길에 놓여있는 후배들과 인연의 고리가 잘 형성되길 기대한다. 






김융동(한국해양대03) 

새벗 출신으로 하나님을 믿고, 해양대에서 신나게 캠퍼스운동을 했다. 현재는 ‘아름다운배움’ 부산나래의 대표를 맡고 있다. 더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과 꿈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