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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와 기독교 복음 - 최경환




아고라와 기독교 복음 - 최경환  

   

 



다원주의 속 기독교 


볼프의 문제 제기는 이렇다.“ 종교가 공적인 영역을 자신의 주장에 따라 전체화시키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종교를 모든 공적인 영역에서 배제시키려는 세속적인 입장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는가?”여기에서 중요한 분석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세속적 다원주의’사회다. 볼프의 말처럼 기독교는 이제“현대 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내부로부터, 그것도 단편적으로 행사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사회 참여의 결과에 대해서는 통제할 능력이 없다”(125쪽)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예언자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 기독교는‘어떤’진리를 전해야 할 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어떻게’진리를 전해야 할 지,그 방법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예언자들이 왕을 향해 준엄한 목소리로 회개하라고 선포하면 그 목소리를 듣고 움찔한 왕이 회개하던 시대가 더 이상 아니라는 말이다. 볼프가 이런 다원주의 사회에도 기독교의 목소리가 여전히 유의미하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는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다원주의’를 적극적으로수용해야 하고, 나태함과 강요라는 신앙의 기능장애로부터 벗어나게 될 때 자신의 독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사회 속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광장에 서는 것 


존 롤즈로 대표되는 정치적 자유주의는 공적인 영역에서 정의에 대한 합의를 도출할 때 특정한 종교적 세계관이나 인간관, 사회적 가치를 거론하지 말고, 오직 절차적 정의에만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볼프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논의를 통해 밝혀냈듯이 공적인 영역에서 개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배제하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오히려 어긋나는 것 이다. 공적 영역에서 독특한 세계관, 인간관, 사회관을 거론하지 않으면서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적인 영역에서 이와 같은 기능들을 차단하고 순수한 절차적 정의만을 허용한다면, 그 영역에서 우리는 사상의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들의 정체성은 생각보다 두꺼운 것이고, 그것은 벗겨내기 쉽지 않다. 그래서 볼프는 그리스도인들이 공적인 영역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이러한 정체성 형성에서 찾는다. 

볼프는 정체성의 형성이 차이와 경계를 통해 항상 비판적으로 재구성된다고 말한다. 볼프는 초기 저작부터 꾸준하게 소통과 대화의 신학을 추구했는데,「 삼위일체와 교회」에서는 동방정교회와 가톨릭 신학과의 대화를 통해 에큐메니칼 교회론을 제시했고,「 배제와 포용」에서는 타자를 통해 끊임없이 연결되고 재구성되는 자아를 보다 적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주변 문화와 역동적으로 주고받으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구성된다. (141쪽)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과 경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정체성이 결국 수많은 타자를 통해서 구성되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은 공동의 가치와 질서를 좀더 아름답고 윤택하게 만드는 것, 즉 인간의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애써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전 존재를 통해 세상에 참여하고 공공선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신앙의 중심에서 세상과 소통하라 


신앙의 내적 논리와 언어가 공적인 영역에 진입하려 할 때에는‘자신의 고유한 기독교 전통과 언어를 상실하면서까지 세상과의 소통과 보편성을 추구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가 발생한다. 신학이 소통과 번역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학문의 장으로 편입되기 위해 종교 자체의 고유한 언어와 특징들이 삭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신앙 공동체의 위탁으로부터 벗어나 이를 추상화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신앙 공동체에 대한 정직한 태도도, 비판적인 태도도 아니다. 이러한 태도가 공론장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며 학문의 영역에서 정직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역설적으로 전혀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종교적 목소리로 말한다는 것은 신앙의 중심으로부터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목소리로 

말한다는 것은 두 가지 근본적인 신념, 즉 하나님은 죄지은 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과 종교적 정체성은 통과할 수 있는 경계로 둘러싸여 있음을 전제로 말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러한 신념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사람들의 목소리는 고유한 그리스도인의 목소리가 되고 다른 많은 목소리를 그 안에 담을 수 있게 되며 또 다른 목소리가 그리스도인의 목소리와 함께 울려 나올 수 있다.(188쪽) 




과연 한국 사회에서 광장에 선 기독교는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 있게 전하면서도 다른 이들과 원만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 또 광장에서 도출된 합의와 결론을 통해 잘못을 반추하고 비판할 수 있는 내적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국 교회에 철저한 개혁과 쇄신이 이루어지길, 그리고 볼프의「광장에 선 기독교」가 그 길목에서 작은 징검다리가 되길 소망한다.






광장에 선 기독교

저자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출판사
IVP | 2014-04-24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이 책은 오늘날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공적인 영역에서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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