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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F/IVP

타인의 포용을 통한 정체성 만들기 - 강영안




타인의 포용을 통한 정체성 만들기 - 강영안  

   

 


이 책「배제와 포용」은 쉽지 않다. 읽기가 쉽지 않은 만큼 천천히, 조금씩, 마음을 집중해서 오래 동안 숙고하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천천히 읽어보면 이 책은 신학의 문제, 굳이 분류하자면‘정치 신학’에 해당하는 문제를 다루되, 끈질기게 묻고 또 물으면서 온전한 신학적 사고의 길을 열어가는 탁월한 책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신학자가 편안한 서재에 앉아 한가하게 쓴 책이 아니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향 땅을 오가며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의 가슴으로 현실에 대한 한탄과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꿈꾸면서 희망을 자기고 쓴 책이다. 저자는, 한편으로는 근대 사상가들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포스트모던 이론가들과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면서 문제를 철저하게 파고든다. 그러면서 신학의 현장인 삶과 이 현장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활동에 잣대가 되고 등불이 되는 성경 텍스트에 깊이 개입한다. 




볼프가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어떤 집단에나 두루 발견되는 갈등의 문제이다……볼프가 직접 경험하고 목도한 갈등은 지난 세기 말 발칸 반도에서 있었던 전쟁이다……볼프의 신학적 생각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눈앞에 전쟁은 계속 된다. 근대의 철학적, 정치적 프로그램은 실패했다. 포스트모던 정치 철학도 대안이 아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제자로서 그를 닮고 따라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인홀드 니버처럼 현실주의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재세례파 신학자 존 요더처럼 평화주의를 선택할 것인가? 예수의 십자가의 관점과 만물의 회복을 기대하는 종말론적 관점은 이 물음에 어떤 전망을 열어주는가? 볼프는 매우 현실적인 이 물음을, 매우 이론적이면서도 실천적 함의를 가득 

담는 방식으로, 성경 내러티브를 통해 풀어간다. 볼프의 책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 부분은 배제와 포용, 성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두 번째 부분은 좀더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물음으로서, 정의, 진실, 평화의 문제를 다룬다. 어느 부분이나 볼프 특유의 신학적 이해의 탁월함이 드러난다. 첫 부분이 볼프의 정치 신학의 근본적 지향을 명료하게 보여 준다고 한다면, 두 번째 부분은 첫 부분에서 말한‘포용하고자 하는 의지’라는 관점에서 정의와 진실, 그리고 삶의 궁극적 지향점이요 목표인 평화를 소상하게 그려낸다. 먼저 논의의 전개 방식에서 드러나는 볼프의 신학함의 태도와 방법을 주목해 보자. 




첫째로, 볼프의 논의는 다루는 주제인 배제·포용·성 정체성·정의·진실·평화에 관한 근대적 관점을 먼저 보여 주고 이것을 포스트모던 관점을 통해 비판하고 극복하려 한다. 

그럼에도 포스트모던 관점을 고스란히 따르지는 않고 오히려 성경으로 돌아간다. 이 점에서 볼프는 현존하는 신학자 가운데 누구보다도 포스트모던 사상에 우호적이다. 그럼에도 볼프는 포스트모던 사상이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그의 신학함의 방법은 현 시대 사상과의‘대화’와‘대결’을 통해서‘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대화론적이며, 문제 해결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성경 내러티브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얻어낸다는 점에서 성경신학적이다. 




둘째, 볼프의 논의의 핵심에는 항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셨다……여기서 볼프는 폭력에 대한 십자가의 도전을 읽는다.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는, 르네 지라르가 주장하듯이 인간 문화에서 보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희생양 메커니즘’을 폭로한다……예수 자신이 직접 폭력을 수동적으로 당함으로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낸 사건이다. 볼프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십자가는 단순히 예수께서 폭력을 수동적으로 당할 뿐 아니라 사탄의 세력을 쳐서 이긴 사건이며, 피해자 뿐아니라 기만과 불의의 사람들까지도 안으시고 받아들인 사건이라고 본다. 십자가의 예수는 구세주일 뿐 아니라 동시에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이다……이로부터 볼프는 악인과 원수를 포함해서‘타자를 포용하고자 하 

는 의지’가 진실과 정의와 평화의 선결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셋째, 볼프의 관점은 종말론적이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것이 현실 정치에 곧장 적용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 점에서 그의 태도는 예언자를 닮았다. 현실 적용 가능성보다 먼저,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그를 따르던 사도들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다. 그의 주장이 현실 정치에 곧장용되지 않더라도,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 곧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그것이 현실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세상 속에서 세상의 일원으로 편안한 삶을 누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과 전혀 다른 새로운 대안적 삶을 보여 주는 종말론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은 진실과 정의, 평화를 다룰 때 뿐 아니라 배제와 포용, 그리고 성 정체성 문제를 다룰 때도 드러난다. 종말론적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사회와문화에 접근하기 때문에 볼프는 사회 제도나 구조 변혁을 목표로 삼지 않고 사회적 행위자, 곧 사회 속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들의 변화를 겨냥한다. 


※ 글은「배제와 포용」해설에 실린 글의 전반부를 요약한 것이다.



배제와 포용

저자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출판사
IVP | 2012-07-3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정의를 위한 투쟁, 그리고 궁극적 화해에 이르는 길에 대한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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