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후의 문제에 관한 톰 라이트의 예전적 씨름 - 이승용

Posted by GCF IVF GCF
2015. 1. 19. 10:40 IVF/IVP

“죽음 이후의 문제에 관한 톰 라이트의 예전적 씨름” 이승용  

   

 


톰 라이트 죽음 이후를 말하다

저자
톰 라이트 지음
출판사
IVP | 2013-12-1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톰 라이트, 죽음 이후를 말하다 성도의 죽음과 천국에 관한 뿌리...
가격비교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까? 내 고민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이 책을 몇 장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다. 톰 라이트의 책치고 상당히 얇은 책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제목에서부터 풍기는‘죽음 이후의 문제’를 어떻게 현재 나의 이야기 안에서 풀어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이는현재나에게묻는질문이기도했다.“ 죽음이후의문제가지금나에게얼마나중요할까?”굳이 안녕하지 못한, 하 수상한 시절이라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 본성적으로 사람은 죽음을 낯설게 여 

기기 때문이리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이 순간, 죽음 이후의 문제를 현재 삶의 문제와 연결시켜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성경에 근거한 하나님 나라를 제시하는 톰 라이트에게 더 매료되었다고 말할수 있다.‘죽음 이후 그리스도인의 상태’는 오늘을 살아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핵심 요지를 형성하는 다양한 내용을 통해 개신교적(혹은 복음주의적) 기독교가 얻을 수 있는 통찰은 꽤나 많다. 




먼저‘, 전통보다성경’을기준삼는라이트의뚝심이다. 라이트는연옥교리를믿지않는다고단언하며, 성경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는 전통은 서슴지 않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는 성경의 근대적 읽기가 아니라, 초기공동체적 읽기로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들이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의미였는지 고민하게 한다. 서론에서 라이트는 굳이 이 책의 특징을‘개신교적 논박’이 아니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비성경적인 절기들을 과감하게 비판하는 라이트의 개신교적 면모가 이 책에서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유명한 외침을 라이트는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지키고 있다. 



기독교의‘공교회적 보편성’에 기초를 둔다는 점도 귀한 통찰이다. 이미 예상하듯 성공회 신학자로서 라이트는 모든 예전에 철저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는 개신교의 종교개혁적 유산을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로마 가톨릭, 성공회, 동방정교회를 포괄하는 공교회적 보편성에 기초를 둔다. 그에게 성경의 이야기를 우리 자신의 몸의 이야기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교회력에 따른 절기들은 꽤나 중요하다. 그것이 성경의 이야기와 얼마나 들어맞느냐가 핵심이다. 개신교는 종교개혁 사건을 통 

해 기독교의 공교회성을 회복했다는 믿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사도적 그리고 어거스틴적 기독교에 맞닿아 있음을 추구하는 공교회의 보편성은 근본 토대가 된다. 이 지점에서 톰 라이트에게 배울 점이 있다. 




무엇보다 삶의 여정에서 완성되는 구원의 확실성을 추구하는 라이트의 주장은‘성도의 견인’으로 불리는 개혁파 복음주의 구원론과 거의 동일하다. 사실 이 교리는 어떠한 현실에 처해 있는 신자라도 영화로운 구원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위로와 소망을 전해 준다. 모든 신자가 성자로 불릴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라이트의 목회적·실존적 특징이 다른 책에서보다 더 잘 드러난다고 본다. 사실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이 쓰였고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가 쓰이기 전에 세상에 나온 이 책에서 라이트는 고통의 문제, 죽음의 문제에 관해 자신이 경험한 바가 실제로 적고 그에 관한 내용을 많이 풀어내지 못한 점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래서 가족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한 성도가 라이트에게 질문하는 내용으로 이 책이 시작한다는점이중요하다.“ 톰라이트는유독실존적고통의문제가약하다.”라는비판을나도제법들었었는데, 그 점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나름대로 해답을 제시하는 점이 돋보인다. 이제 그가“Surprised by Hope!”라고 말하게 된 이유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어졌다. 그는 높은 책상에서 차디찬 언어들만 내놓는 신학자로만 살아온 게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꽤 알려졌지만 그가 이 책에서도 제시하는‘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매력적이다. 라이트가 비판하는 로마 가톨릭과 성공회 전통에 비해 하나님 나라의‘이미’와‘아직’이라는 교리적 개념이 복음주의에서는 그나마 덜 낯선 건 사실이지만, 문제는 그리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이 세상으로부터의 도피 개념으로 자주 차용되는 구원관, 천국 개념이 여전히 복음주의에도 즐비하기 때문이다. 영원히 전통 기독교를 갉아먹는 이단인 영지주의적 내세관은 우리 안에서도 골칫덩어리다. 로마 가톨릭을 따라서 구원의 초월성, 내세성에만 자꾸만 관심을 보이는 성공회 전통에 관한 라이트의 비판적 대안을 읽으면서 라이트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그토록 강조하던 이유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현재성에만 너무 힘을 주는 게 아니냐는 복음주의권의 비판에 여전히 동의하면서, 라이트가 서 있는 맥락에서의 씨름에도 동의가 된다. 


그러나 라이트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종교개혁 전통을 고백적으로 소중히 여기는 신자로서 나는 성경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도출하기 어려운 전례들은 더 급진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령절이 부정적인 할로윈 문화를 만들어내듯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전통은 세속적으로도 본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라이트의 성공회 내부의 씨름을 읽으면서, 개신교 전통이 얼마나 소중한 유산인지를 다시금 재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개신교 전통에는 당장에 결론으로 달려가 버리는 성급함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또 다른 아쉬움은‘영혼’의 문제를 라이트가 너무 단순하게 건드리고 넘어간다는 느낌을 받는 데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의 위치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한 편의 치우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서 놓치는 점이 적지 않다. 신자들의 삶에서 영혼의 문제가 이 정도로 단순할까? 이 부분에서는 나에게 영혼의 문제가 얼마나 심원하고 놀라운지 깨닫게 해준 여러 청교도적 목회자, 신학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영혼의 문제가 매우 근본적이었고, 그것은 수많은 신자들의 현실을 변화시켰다. 여기에서 라이트가 다소 놓치는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아쉬움이 있음에도 이 책은 따로 읽을 필요가 충분한 책임에 틀림없다.라이트는 방대한 저서의 요약판에도 그 나름의 매력을 담는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저자라는 걸 다시 확인한다. 톰 라이트라는 걸출한 신학자의 방대한 책들로 시작하기에 부담을 느끼는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라이트의 여러 특징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죽음 이후’가 아니라‘지금’이라는 현실에 관심이 집중된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책이라고 믿는다. 이처럼 결국‘현실’로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톰 라이트는 놀랍다. 



이승용 20대 끝자락에서‘지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며, 밥상과 책상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에 대한 소망으로 30대를 시작한 전도사이자 복있는사람 출판사에서 영업·마케팅 담당자.

원문보기 : IVP 북뉴스 2014년 1월-2월 호 (통권114호)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
  1.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죽음에 대해 관심 있어 하시는 것 같아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www.uec2018.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