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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 1월호 영혼의 창] 믿음의 선배를 보내고 - 한병선

믿음의 선배를 보내고




나 에게는 친할아버지는 아니지만 할아버지 역할을 해주시던 분이 계셨다. 나에게 유아세례를 주셨고 결혼식 때는 축도를 해주시고, 외국에 있을 때는 가끔 들러서 잘 사는지 괜찮은지 위로도 해주셨던 분이었다. 그분에 대한 추억이 많다. 어릴 때 집에서 음식을 하면 가장 좋은 것을 담아서 목사님이 계시는 사택으로 갖다드렸다. 그럴 때마다 특유의 이북사투리로 환하게 웃으시면서 “내레 잘 먹갔다고 말씀드려라.” 하셨는데 그 말이 참 정감 있게 들렸다. 그러고 보면 내 삶의 중요한 순간에는 늘 함께 계셨다. 어느 날 내 기사가 신문에 났을 때 전화를 주셔서는 네가 이럴 줄 알았다고, 이렇게 기사가 나서 좋다고 해주셨다. 굉장히 바쁘신 분이셨는데 참 많이 챙겨주셨다. 나에게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챙기시고 목양하셨다. 그래서 ‘목사’ 하면 그분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름이 되면 하얀색 양복에 흰 모자에 백구두를 신고 다니는 멋쟁이셨고, 젊었을 때 중국에서 선교하셨기에 베이징 덕을 참 좋아하셨다. 원래 적게 드시던 분이 “어디서 뵐까요?” 하면 늘 베이징 덕을 하는 집으로 약속을 잡곤 하셨다.




사실 그분에 대해 내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나이 차이가 50도 더 되는데……. 그런데 그분에 대해 할머니께 들은 기억이 있어 그분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분에게는 따님이 있었다. 피아노도 잘 치고, 아주 예쁘고 참하고 자랑스러운 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이 새벽기도를 마치고 광고시간에 “어젯밤에 제 딸이 하나님 품으로 갔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성장한 딸이 밤사이에 갑작스럽게 하나님께 간 것이다. 본인에게는 얼마나 청천벽력 같고 깊은 슬픔일까마는 하나님과 드리는 예배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오셔서 예배를 인도하시고 광고시간에야 말씀하셨다는 게 너무 마음이 짠해서 교인들이 같이 울었다고 했다. 



그분은 그런 분이셨다. 자신의 역할에 너무나 철저하게 순종하시기에 많은 이들이 존경하게 되었다.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봉직하고 원로목사가 되신 그분은 후임 목사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 그럴 때 참 어렵고 인간적인 배신감도 느끼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그 모든 것을 참으셨다. 그분의 신앙은 그것인 것 같았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 그것이 그분의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그분의 집에는 다양한 선물들이 들어온다. 그것을 늘 두고 계셨다가 누가 오면 다시 챙겨 보내시곤 하셨다. 평생 소식(小食)하셨고 검소하셨으며, 탐욕이 없으셨고 소유를 주장하지 않았는데, 그분이 얼마나 검소하게 사시는지 뵐 때마다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어디든 가셔서 복음을 전하고 후배들을 격려하셨다. 90대의 나이에도 아마존 정글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가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셨다.



나에게는 그분이 믿음의 선배이자 목회자의 모델이고 살아가야 할 삶의 자세가 되었다. 103세를 사셨지만 단지 오래 사셔서 존경하기보다는 그 삶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평소 늘 “녹슬어 못 쓰느니 닳아서 못 쓰겠는 삶”에 대해 말씀하셨고, 그대로 사셨다. 그것이 참 오래도록 남는다. 나는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는가? 녹슨 삶인가, 닳아 없어지는 삶인가. 

10월 10일에 타계하신 방지일 목사님. 나의 신앙의 선배, 살아야 할 기독인의 모범, 우리들의 할아버지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