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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 2월호 이달의 묵상]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 되라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




신앙생활의 연륜이 쌓이다 보면 소위 “기독교적”인 말투에 익숙해져 갑니다. 일상의 삶에서도 “평안하세요”, “주님의 은혜입니다”, “참 감사한 일이네요”, “할렐루야”, “아멘”, “형제”, “자매” 등의 용어를 많이 쓰게 됩니다. 아마도 비그리스도인들은 잘 쓰지 않는 말들을 우리는 매우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우리는 흔히 “이해합니다. 주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있을 거예요.”, “힘내세요. 주님이 형제(혹은 자매)님을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기도하세요.” 등의 권면을 할 것입니다. 이러한 말투를 사용하는 것 자체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약 2:15-16) 우리의 현실을 야고보는 정확히 꼬집습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온갖 “기독교적”인 말로 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지만, 정작 몸과 물질로서 그 사람을 돕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온갖 아름다운 말로 그 상황으로부터 도피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상황 가운데로 직접 들어가 몸으로 무언가를 행할 것을 강하게 말하는 야고보의 권면은 우리가 꼭 새겨들어야 할 내용입니다.





더 나아가, 야고보는 선언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26) 아프게 다가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포장된 아름다운 말로 나 아닌 누군가의 어려움으로부터 도피하려 했던 제게 무척 뼈아픈 지적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추상적이고, 붙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만, 믿음은 눈에 보여야 합니다. 믿음은 실제적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며,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번 한 달, 우리의 삶을 정확히 꼬집으며 권면하는 야고보의 호소에 반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