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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심 8월호 영혼의 창] 자연과 음악 - 한병선

자연과 음악




 나는 창의력을 요하는 직업을 가졌다. 영상을 만들거나 글을 쓸 때마다 어떻게 하면 더 남다르게,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아야 하는 노동을 한다. 그런 나에게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계속해서 일을 해내려면 어느 정도는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나름의 시스템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일을 잘하는 것과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 사이에는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까? 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소비적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한다. 물론 기도를 하거나 말씀을 보는 방법으로 마음의 짐을 벗기도 하지만 남자들은 술을 마시거나 헛소리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기타 등등, 여자들은 맛있는 케이크 같은 단것을 먹거나 수다를 떨거나 쇼핑을 하거나 남의 ‘뒷담화’를 하거나 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배설한다. 대부분 자신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서든 없애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나도 그런 방법으로 편리함과 일시적 쾌감을 누리고 살았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하게 되었다.




 다행히 내 작업 공간은 한정되어 있지 않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러 지방에도 가야 하고, 이래저래 전국 곳곳을 다닐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 나는 지방 출장이 잡혔을 때 꼭 시간을 내서 그 지역의 자연을 누리는 기회를 갖는다. 






 지난달에 제주도에 일정이 잡혀서 일을 끝낸 후, 하루를 더 머물 수 있었다. 하루 동안 무엇을 할까? 그때 기준이 있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간다. 살다 보니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누리냐가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고 비교적 가지 않을 곳을 찾아서, 조용하게 한적하게 자연과 함께 누리려 한다. 용수에 있는 김대건기념관에도 가고, 방주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서귀포휴양림을 안개 속에서 걸으며 나무의 숨소리를 들었다. 애월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망망한 바다를 봤다. 얼마나 많은 바람이 지나가는지,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속삭이는지, 얼마나 많은 돌들이 모여 있는지, 얼마나 많은 자연이 펼쳐지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회복이 일어나는지, 감동이 되는지,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지……. 




 나는 길을 떠날 때마다 휴대용 CD플레이어를 챙겨간다. 특히 자연으로 나갈 때 음악은 필수품목에 속한다. 자연 속에서 듣는 음악은 자연에서 누리는 감동을 2~3배 더 증폭시켜주고 행복감이 절정에 달하게 한달까, 그런 행복과 감사가 저절로 나오는 시간이 된다. 이렇게 감동을 느끼게 되면 당분간, 한두 달간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지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누리지 못하는 것은, 그리고 스트레스를 값싸게 배설하는 것은 돈이나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냥 강박적인 ‘여유 없는 부담’이 늘 마음을 누르고 있어서 작은 시도조차 할 생각을 못하는 것이 크다. 내 환경에서 한 발짝도 다르게 나갈 수 없다는 부담이, 두려움이 우리를 묶는다. 혹은 집에서 쉬어야 된다는 강박이…….

그냥 한두 시간이라도 좋다. 제주도가 아니라도 그냥 좀 한적한 곳, 사람들과 몰려다니면서가 아니고, 소비를 부추기는 곳이 아니고, 그냥 걷고 생각하고 쉬고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나를 여유롭게 행복하게 해방시켜보자. 또 다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한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