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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사람] 소리이음

쌀을 씻어 밥을 짓는 드라마_이미란

[일상에서의 만남] 각자의 소명을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학사들의 삶 이야기


쌀을 씻어 을 짓는 드라마




요즘에 새로 재미를 붙인 건 아침드라마다.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딸내미를 준비시켜 어린이집 차에 태워 보내고 들어오면 아침드라마를 시작할 시간이다. 처음에는 집안일 하며 대충 보았는데 요즘은 혼자 보면서도 어찌나 몰입을 하는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을 당하고, 버려지고 빈털터리가 되어도 보란 듯 성공하여 나타나고, 소년소녀 가장으로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며 힘들게 살다보면 느닷없이 재벌 부모님이 친부모라며 나타난다. 말도 안 된다. 그래서 드라마인 법이다.





문득 내 삶이 드라마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아마 애국가 시청률도 안 나오겠지 싶다. 누군가 보고 싶고 듣고 싶어 할 만한 에피소드가 없으니 말이다. 좀 억울하긴 하다. 특별할 건 없어도, 살면서 끝없이 희로애락을 겪는데 왜 일상은 재미도 없고 박진감도 없는 것 같을까? 


2년 전, 남편은 8년 동안의 간사 사역을 마쳤다.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걱정과 갈등, 희망이 공존했는지 모른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인정하고 포기하는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여기며 기술자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남편이 고맙고 사랑스럽지만, 처음에는 ‘괜찮을까?, 할 수 있을까?’ 불안하고 안쓰러울 뿐이었다. 늘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아침 일찍 나가면서도 펼쳐 놓은 QT책이 때로는 나에게 감동을 준다. 요즘에는 강제 다이어트로 체중이 15kg이나 줄어 때늦은 비주얼 전성기(?)를 맞이했다며 좋아한다.  


새로 살 곳을 마련하고 이사할 때는 어땠는가? 새집에 대한 기대감 같은 건 넣어두고 계약이 잘못되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다. 파워블로거가 올려놓은 멋진 인테리어를 할 수 있으리라 꿈꾸며 뜬눈으로 검색에 열을 올렸지만, 현실에서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전혀 실행할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12월생 딸아이를 3세반으로 보내야 할지, 4세반으로 보내야 할지, 엄청나게 고민하고 상담하고 의견을 물었다. 12월생이라서 4세반에 가면 다른 애들에게 치이지는 않을까, 그렇다고 3세반에 있으면 친구들보다 뒤처지는 건 아닐까, 나도 열어볼 수 없는 내 마음속에서 끝없는 갈등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아침드라마처럼 배신과 복수, 출생의 비밀 같은 막장 요소는 없었지만, 내 일상의 사건 속에도 분명 고난과 기쁨과 감사가 있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것도 분명했다. 하지만 제3자가 들여다본다면 별다른 재미나 감동을 느끼지 못할 평범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드라마처럼 특별하고 큰 일(?)이 벌어지길 기대할 때도 있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좋은 일을 기대하기도 하고, 보란 듯이 고난을 이겨내 모두가 감동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기도 하다. 하긴, 게을러지고 현실에서 전혀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으며 무감각 속에 살아가는 것은 눈물로 간청할 기도제목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상의 소소한 사건 속에서 주님을 찾기보다는 포털사이트에 도움을 청하며 열을 올린다. 그러니 어느 날 닥쳐올지도 모를 큰 일(?) 앞이라고 해서 내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으리란 걸 난 알고 있다.  


나에게 드라마보다 더 큰 반전이라면 끊임없이 그 “매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기억상실에 걸린 것처럼 지난 시간을 다 잊어버리고,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될라치면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든 무관심하게 돌변한다. 학생 시절, 양화진 성지에서 이렇게 기도한 적이 있다. ‘하나님! 이 믿음의 선배들보다 더 나은 믿음을 주세요.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때는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목숨을 위협받는 고난 앞에 놓이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양화진 앞에 서 있던 20살 여학생은 이제 30살이 되었다. 내게는 지금 더욱 절실한 기도가 있다. '밥하기 싫어 외식하고 싶은데 정해 놓은 생활비를 다 써서 또 쌀을 씻어야 합니다. 이런 사소한 일 앞에서도 그저 당신 한분만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며 감사의 제사를 지내는 삶을 소망한다. 은설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남은 하루도 파이팅.



양창모 학사(강원대97)와 이미란 학사(한림성심대04) 부부




이미란│한림성심대04

남편 양창모(강원대97)와 결혼한 지 5년차 주부. 출산 후 육아에 전념하고 있으며 4살 은설이와 뱃속에 기쁨이(태명)가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