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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사람] 소리이음

[소리가 만난 사람] IVF 사역을 마무리하며, "참 잘했어요!"_박태선,전선미(2)

[소리] 2017년 여섯번째 소리 - 12+01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 소리가 만난 사람 - IVF 사역을 마무리하며, "참 잘했어요!" (1)

▶ 소리가 만난 사람 - IVF 사역을 마무리하며, "참 잘했어요!" (2) 










<소리가 만난 사람>

IVF 사역을 마무리하며, “참 잘했어요!”

- 두 번째 이야기-




박태선 ◆ 부산대 86

전선미 ◆ 부산대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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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사님 부부는 공간을 만드시는 분인 것 같아요. 지금 살고 계신 집의 공사에도 직접 참여하셨다고요. 

집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것 같아요. 어떻게 집을 짓게 되셨나요? 


태선 사실 돈이 없어서 그런 거죠(웃음). 원래 저희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집을 옮겨야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더라고요. 아파트는 어림도 없었고 빌라는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안 되거나 마음에 드는 장소가 없었어요. 대범하게 평지에 있는 주택을 봤더니 아파트와 별반 다르지 않을 만큼 비싸더라고요. 그러다가 40평에 4천이라는 주택의 공고를 보게 됐어요. 처음에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무시했는데, 며칠 지나니 어떤 집이기에 값싸게 파는지 궁금해졌어요. 화창한 날에 집을 보러 갔더니 생각보다 멀쩡하고 괜찮더라고요. 후배를 불러서 수리하는 데 얼마가 들겠느냐고 물어봤어요. 저희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해서 계약을 했죠. 하지만 나중에 비가 오는 날 가봤더니, 그때는 완전히 흉가더라고요(웃음). 지붕에서는 비가 새고, 모든 벽은 곰팡이 때문에 새카만 상태였어요. 역시 가격은 정직했던 거죠.


저희는 아는 형의 도움을 받아 집을 수리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든지 대의를 가지고 시작하던데, 사실 당시 저희에게는 그렇게 하는 게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도와주신 분께 은혜를 많이 입은 것이죠. 평생의 은인입니다. 가진 돈에 비해서 저희가 원하는 바가 높았기 때문에, 대신 기간을 길게 잡고 인건비가 들지 않도록 직접 공사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진행했어요. 아내와 구조를 재고, 그림을 그리고, 원래 있던 가구들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까지 계산해서 공사를 시작했어요. 골격을 제외한 전체 벽을 다 뜯어냈고, 생각하는 구조대로 다시 맞췄습니다. 공사에 들어가는 모든 자재를 옮겨야 했는데 집이 언덕이라 차가 들어올 수 없었어요. 찻길에 내려놓은 자재를 전부 짊어지고 계단을 올라야 했죠. 많을 때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갔어요. 죽겠더라고요. 당시에는 아무 것도 몰랐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직접 집을 지었기 때문에 집의 구조를 이해하게 된 것이 의미 있고 좋은 부분이에요.


선미 만약 저희가 평지의 좋은 곳에다가 화려하게 집을 지었다면 사람들이 올 때마다 괜히 미안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 집에 오려면 계단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오면서 마음이 가난해져요. ‘차도 안 들어오는 이런 골목에 사는구나’하고 생각하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크지는 않아도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공간을 만나게 돼요. 고난 뒤의 영광인 집이죠. 이곳은 서사가 있는 집이고 이야기가 있는 집이에요. 공유할 수 있는 간증이나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집이고요. 돈 자랑하는 집이 아니라는 게 참 좋습니다.


특히 작년에 만든 2층의 게스트하우스 공간은 처음부터 공유하는 공간으로 생각하고 지었어요. 간사들이 부산에 놀러오면 쉬고 기도할 만한 공간을 제공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많은 사람들이 와서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됐다는 부분이 너무 감사하고 좋은 것 같아요. 부산은 다른 도시 사람들에게는 제주도 다음으로 매력적인 곳이잖아요. 


태선 사실 2층의 게스트하우스 공간은 눈으로 와서 보기 전까지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보통 집으로 오라고 하면 ‘민폐가 될 텐데’하고 생각하는데, 와서 보고 나면 ‘이 정도면 편히 있겠구나’하고 이해를 합니다. 우리 가정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편히 쉴 수 있거든요. 뒤에는 산책길도 있고 앞에 나가면 자갈치 시장이나 남포동, 부평동 시장 등이 있어서 동네를 돌아보기도 좋고, 그저 쉬기만 하는 것도 좋아요. 아이들도 손님을 환대하는 상황을 어색해 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신들도 기회가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하더라고요.  



2층 게스트하우스의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부산 전경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태선 하나의 큰 방향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계속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시작했고, 목표를 20년으로 길게 보고 있어요. 두 번째는 사역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결국 청년 사역을 해야 할 것 같고, 사역자 중심으로 코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인격과 사역은 지속적으로 길게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간사 훈련을 하면서 이 부분이 참 아쉬웠어요. 사역자는 부교역자로 사는 기간 동안 거의 내팽개쳐진 대로 살아가곤 해요. 자기 발전도 없고 목회를 배우는 것도 아니고 교회가 필요로 하는 뒤치다꺼리만 하는 거죠. 그러다가 담임목사를 맡게 되면 대책이 없습니다. 


저는 많은 수가 모이기보다는 5명~10명 정도의 청년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성경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을 키우고 성경을 묵상하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면서요. 결국 미래의 한국교회를 생각할 때 이런 부분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해보면서 방향을 맞추어 가는 부분도 필요할 것 같아요. 현실 속에서 부딪쳐가면서 해야겠죠. 또 일상사역연구소와도 함께하려고 생각중이에요. 일상연구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역들과 제가 가지고 있는 사역을 두고 함께 이야기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적어봤는데 제법 많더라고요. 그런데 아내가 한마디 하더군요. “돈 되는 것은 하나도 없구만!”이라고요(웃음). 그게 풀어야 하는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해요. 





 <소리> 독자들과 전국의 학사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태선 저는 학사들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삶에서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는 규범적인 생각 때문에 ‘이렇게 살아도 되나’ 혹은 ‘이렇게밖에 못 사나’하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세상 속에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버텨내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입니다. 학사들이 너무 죄책감을 느끼거나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학사는 힘들고 어려운 삶이니까요. 신입간사 훈련에는 간사들이 1주일씩 현장 학습을 다녀오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현장 학습에 다녀온 간사들은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IVF 학사들이 있다는 것에 많이 놀라고 있습니다. 이름도 없고 유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헌신적으로 살아가고 있더라는 것이죠. 우리가 보고 아는 것보다 학사들이 훨씬 잘 살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저 역시 자부심도 느끼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25년간의 사역 기간 동안 지지하고 응원하며 여기까지 오신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태선 가정이 안정되지 않았거나 가족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없었다면 오랫동안 사역을 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간사훈련부에서 사역을 할 때는 따져보면 1년에 6개월 가까이 집을 비운 것인데, 아내가 저를 신뢰하고 또 끊임없이 믿어주었기에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결국 나가서 사역하다 보면 고맙다는 이야기는 제가 다 듣거든요. 하지만 실제적인 사역은 아내가 다 했어요. 집에 올 때도 다들 저를 보고 방문하지만 갈 때는 아내에게 인사하고 가더라고요(웃음).


선미 처음에 IVF 사역을 마무리한다고 했을 때,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희에게 ‘너희의 삶의 기반이 IVF냐?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냐?’하는 말씀을 주셨어요. 물론 IVF를 통해 감사한 시간도 많았지만, 저희의 기반은 예수 그리스도고 지금도 사명으로 부르고 계세요. 사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는데, 남편이 생각보다 빠르게 사람들 만나서 사역에 조언도 구하고 사업자 등록도 하는 등 진행하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더라고요. 저도 본격적으로 디자인과 편집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하나님이 길을 더 열어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간사의 사모로 살면서 간이 커진 것 같아요. 지금은 훨씬 편안하고요, 감사한 마음이 가득해요. IVF를 통해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고 좋은 남편도 만났고 자녀들도 잘 훈련받고 있죠. 지난 25년 간 학사님들이 후원해주신 금액을 생각하면 정말 엄청나요. 우리는 늘 부족하다고 했지만 사실은 후원해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풍성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참 감사합니다. 


남편이 간사로 살았던 세월에 대한 총평은 앞으로 20년 정도 지난 후에 하고 싶어요. 아직 사역할 날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죠. 대신 중간평가를 할게요. “참 잘했어요!”  

 




<소리>를 환대해 주신 두 분의 집은 정말 따뜻하고 풍성했습니다. 

2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IVF를 섬겨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사명으로의 부르심을 <소리>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