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2014년 두 번째 소리- 8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당신의 연애자소서] 당신의 연애에 한선미-김효주 부부가 띄우는 ‘자’상하고 ‘소’상한 편지(書)
QUESTION:
제게는 참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저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 그를 알아갈수록 재미가 있었고, 다른 세상을 보여주어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만난 지 어언 1년이 되어가네요. 그런데...이제는 좀 지친다는 느낌이 듭니다. 분명히 장점은 장점대로 맘에 들고 단점은 단점대로 매력 적이었는데, 제 마음이 달라진 걸까요. 더 이상 바뀌지 않는 그와 제 자신이 답답하고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저와 그는 취향이 너무 다릅니다. 같이 볼 영화 하나 고르기도 어려워요. 저는 잔잔하고 메시지가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반면, 그는 시끌벅적하고 볼거리가 많은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관에서 보긴 아깝다나요. 그리고 저는 미술관이나 각종 전시를 보러 다니는 게 취미였는데 제가 좋아하는 걸 남자친구와 함께하긴 참 어렵더라고요. 운동을 좋아 하는 남자친구도 마찬가지고요.
또 남자친구는 애교도 많고 표현도 풍부한 편이에요. 그래서 저에게 사랑을 확인시켜 주는 건 참 좋지만... 제가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설 때가 많더라고요. 그리고 저에게도 같은 강도로 표현해 주길 원하는데 저에겐 그게 참 어렵습니다. 평소 무뚝뚝한 제가 이것저것 노력을 해봅니다만, 남자친구의 필요를 채워주진 못할 뿐이고 저는 저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하고요.
이런 다툼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평행선을 그릴 것 같다는 게 무엇보다 절망 적이에요. 1년 정도 만나니 결혼을 고민하게 되는데 이런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너무나 다른 저희가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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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주│고려대99
진중하고 과묵한 성격이었으나 하루에 4만 마디 하는 자매를 만나 연애시절 건당 30원하는 문자메시지 값만 3만원 넘게 나오는 기염을 토했다. 원래는 뭐 하나 꾸준히 하는 게 없는 캐릭터인 데, 한 사람과 6년 연애 후 결혼 그리고 결혼 후 6년 이상을 살고 있다. ‘오늘 점심 뭐 먹지’가 최대 고민인 회사원 8년차이자 두 돌 지난 딸이 하나 있고 풀코스를 두 번 완주한 초보 마라토너
Answer:
혈액형 테스트입니다. A형은? “소세지”래요. 소심하고 세심하고 지랄 맞아서. B형은? “단무지”래요. 단순하고 무식하고 지랄 맞아서. O형은? “오이지”래요.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지랄 맞아서. 그렇다면 대망의 AB형은? “3G”랍니다. 지랄 맞고 지랄 맞고 지랄 맞아서. 이 타이밍에서 웃으셨어야 되는데, 어땠나요? 자매님은 무슨 유형이세요?
이 유머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우선, 인간은 모두 지랄 맞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알 수도 있지 않겠어요? 게리 채프먼은 그의 역작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사람은 각자 사랑을 느끼게 되는 고유한 표현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엄청 사랑해서 선물을 막 사주는 남자친구에게, 여자친구가 이런 말을 건네는 거죠. “난 그냥, 너랑 함께 있고 싶어.” 아, 돈은 돈대로 깨지고 분위기도 뻘쭘한 이상황,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요? 개인마다 사랑의 언어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는 내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언어를 알고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남녀 간 사랑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일 아닐까 싶어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배우고 또 써보 고, 상대의 반응을 보고 피드백하고 하는 과정, 마치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말이죠.
“웬수”는 어떨 때 “웬수”가 될 수 있을까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은 “웬수”가 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건 그냥 무관심하거나, 모르는 사람이죠. “웬수”의 성립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서로 잘 아는 사람일 것. 둘째, 그 사람이 싫을 것. 농구 한 게임 뛰고 온 그 남자의 땀 냄새마저 향긋하다가, 샤워도 안 하는 것 같은 위생관념이 의심스러운 건 한 순간이죠. 남자가 말도 참 예쁘게 하는 것 같아 사랑이 퐁퐁 솟다가도 말 참 지지리 많네 하게 되는 데는 이유가 없는 겁니다. 보통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웬수”가 되기 가 쉽습니다. 제 주위 사람들을 보면요. (저는 아닙니다, 험험.)
이 황당하고 절망스러운 전우주적인 딜레마를 어찌해야 할까요! 사실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이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니 까요.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개인이 지금까지 익숙하게 살아왔던 방식이 계속 발목을 잡을 겁니다. 우선 솔직하게 잘 드러내는 게 지혜로운 방법인 것 같아요. 대신 조금씩 덜 심각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요? 오늘은 자매님이 좋아하는 미술관 가기! 형제님에게는 숙제를 주는 겁니다. 작가의 화풍과 상징하는 바를 맞추면 애교 한 번 부려주기. 운동을 좋아하는 형제님을 위해 배드민턴이나 볼링 같은 걸 가지고 내기를 하면 어떨까요? (참고로 전 졌었죠. OTL) 잔잔한 영화 보고 졸지 않기나, 애교 금지 기간 일주일 수행하기 등등.
이러다 보면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전시회 관람 좋아 하고, 표현이 부족한 것 같은 나도 있는 그대로 좋아해 줄 남자는 없을까? 꼭 이렇게 어색하고 조금은 오글거리기도 하는 노력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 고민 끝에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라는 게 생각보다 달콤하지 않다는 진실을요. 전 커피를 참 좋아하는데, 주로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편이에요. 거기에 첨가하는 게 물이건 우유이건, 설탕에 시럽 두 바퀴 반이건 간에 변하지 않는 진실은, 커피는 쓰디쓴 에스프레소에서 시작한다는 것이죠. 커피는 어른의 음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사실 본래의 모습은 쓰디쓴, 하지만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는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사랑이 달콤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마치 딸기맛 감기약 같은, 아직은 쓴 게 힘든 아이를 위한 배려가 아닐 까요? “사랑은 세상의 커피이니 커피가 만일 쓰지 않으면 무슨 맛으로 먹으리요” 커피복음 2장 3절 말씀. 원액이 진할수록 향은 그윽할 겁니다. 첫 맛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떫은 것 같지만 마실수록 빠져드는 에스프레소 같은, 사랑의 맨얼굴을 만나는 교제하시길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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