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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사람] 소리이음

신앙과 과학을 어깨동무한 과학자_우종학

[소리가 만난 사람]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가는 학사와의 인터뷰



 학사운동의 역사를 만나다 #7

신앙과학을 어깨동무한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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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학 학사(연세대89)는 현재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학생 때부터 꾸준히 ‘신앙과 학문의 통합’에 대해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왔고, ‘신앙-과학’이라는 주제를 평생의 소명으로 다져 온 ‘크리스천 천문학자’입니다. 그가 지향하는 관점과 태도는 무엇인지, 과학자이면서 신앙인으로 사는 것은 어떤 모습인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진행 이시종 /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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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가르치시는 천문학에 대해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간단하게 설명해 주세요.(웃음) 그 중에서도 학사님의 전공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연세대 89학번으로, 학부와 대학원에서 천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예일 대학교에서 천체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바바라 캠퍼스(UCSB)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연구원으로도 일했죠.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5년쯤 되었습니다. 


학부 시절에는 미팅 나가면 문학 전공자라고 했어요.(웃음) 천문학은 크게 물리학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리학은 사물의 근본 원리를 다루는 학문인데요, 천문학을 천체물리라 부르기도 합니다. 연구대상이 우주, 천체이기 때문에 물리 중에서도 특화되었죠. 백억 년 이상 된 우주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제가 집중하는 건 블랙홀입니다. 얼마나 무거운지 질량도 측정하고, 다양한 물리현상의 원인도 파악하고요, 우주의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연구합니다. 연구를 위해 주로 대형망원경을 사용하는데 손으로 들고 보는 게 아니라 거대한 관측기기를 써요. 일 년에 두세 번씩 하와이, 칠레, 미국 애리조나 등 대형 망원경이 있는 산에 가서 며칠씩 관측하고, 거기에서 얻은 데이터를 연구실에서 처리하고 분석하고 측정합니다. 그래서 주로 컴퓨터를 보면서 살고 있어요. 



* 아내 분이 전직 [소리] 간사이죠?


맞습니다. 아내는 숭실대 94학번입니다. 제가 GSF(기독대학원생회)의 대표를 맡고 있을 때 수련회 준비를 하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학사회 간사님들을 찾아뵈었습니다. 당시 아내가 [소리] 담당 간사여서 처음 만났죠. 그러다가 어느 날, 제가 간사님들께 밥을 사기로 했는데, 아내 혼자만 나왔더라고요. 아직 밝혀지진 않았지만 저는 거기에 음모가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그러고는 5개월쯤 후에 결혼했어요. 제가 출장 간 3일을 빼고는 매일 만났었죠. 결혼한 지는 15년 지났고 아이는 없습니다. 아이가 없으니 그만큼 일을 할 수 있었어요. 아내는 라이프코치로 일하고 있어요. 구청에서 봉사도 하고 회사에 소속되어 강의도 합니다. 가끔 저도 코치를 받는데, 코치 자격증을 따더니 질문이 달라지더군요.(웃음) 



* ‘신앙과 학문의 통합’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근본적으로는 학부 때 IVF를 하면서 삶의 방향성이나 신앙의 색깔이 정해진 것 같아요. 어떻게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나라를 드러낼 수 있는가 고민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본격적으로 ‘신앙과 학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건 GSF를 할 때부터였습니다. 학문에 대한 생각은 이때 거의 정리했어요. 과학이라는 학문이 있고 기독교 신앙이 있는데, 신앙과 과학을 통합하려고 한다면 ‘기독교적 과학’이 되겠죠. 그런데 그런 건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과학을 충실하게 하는 것 자체가 기독교적인거라고 생각했죠.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 가지로서 과학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과학을 기독교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어요. 예를 들어, 기독교적 축구는 없죠. 게임의 룰을 지키며 정직하게 임하는 선수가 충분히 신앙적일 수 있는 것처럼, 데이터를 속이지 않고 논문을 조작하지 않으며 자신의 명예를 생각하기보다는 세상에 선향 영향을 주는 방향의 연구 자세를 갖는 것이 기독교적으로 과학을 하는 것이죠. 사실 과학 그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기독교적이기도 합니다. 창조를 연구하는 학문이니까요. 



한편, 학사가 되어서도 각자의 영역에서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며 주변에 영향을 줄 것인가, 저는 그게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런 지향점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얼마나 잘 하고 있느냐 하는 건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에 대한 이해의 깊이도 달라지는 것 같고. 상당한 벽에 부딪히기도 했죠. 한국에서 교수라는 직업을 갖기 전까지는 사람들과의 관계성보다는 혼자서 고민하며 소위 탁상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하는 학문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했죠. 지금은 교수로서 학생들을 많이 만나고 지도하다 보니 캠퍼스라는 영역에서 저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IVF를 통해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훈련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나라를 위해 살아간다는 거시적인 개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내 삶의 주인이 나인지 주님인지 주도권 다툼이 있어요. 거시적인 문제도 개인의 삶이 담보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개인에게 매몰돼서도 안 되겠지만 일단 출발점은 일상이라고 생각해요. 학문의 세계에서도 동일한 싸움이 있습니다. 아주 치열하죠. 기업에서는 돈이 문제일 수 있겠지만, 학문 영역에는 명예도 걸려 있습니다.(웃음) 여기도 굉장히 치열해요. 이런 싸움에서 어떻게 보다 하나님나라의 관점으로, 성경적인 관점으로 살아갈지를 고민합니다. 하루하루가 하나님나라 운동이랄까요. 이제는 거대한 변화보다는 제 자신, 제 주변, 제가 지도하는 학생에게 더 중점을 두고 있어요. 자기 일에 성실하고,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적인, 사람에게 도움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개인적인 영역으로 축소된 면도 없진 않지만 그게 가장 우선되어야 하니까요. 학생들도 지도교수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기적으로 학생들을 부려먹는 것이 아니라, 품어주기도 하고 혼도 내면서 학생들을 학자로 기르는 길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신앙과 학문의 통합은 인간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므로 나와 연결된 관계, 즉 학생들과 동료교수들, 내가 고용한 연구원들을 어떻게 대하고 관계를 맺느냐가 관건이죠. 덧붙여 학문적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내야하구요. 굉장히 어렵겠죠?(웃음) 



* 천문학은 우주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될 텐데요. 유신론적인 설명과 무신론적 설명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신앙이 그 근거들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도록 영향을 주지 않나요? 반대로 자기 신념에 반하는 근거들이 나타날 때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천문학을 포함해 과학이라는 학문은 경험적인 자료에 기초합니다. 경험적인 자료를 중시하고 거기에 많이 기댑니다. 그리고 과학은 물리적인 인과관계를 주로 찾는데요,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기계적입니다. 다른 게 개입하기 어렵죠. 인과관계가 쭉 얽혀있는 학문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탄탄한 정합성(整合性)도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적이거나 철학적인 선입견, 믿음이 개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무신론자들이 과학을 믿음의 근거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크리스천은 별로 사용하지 못하고요. 사실은 양쪽 모두가 수용 가능한데도 무신론자의 근거로 사용되고, 크리스천은 신앙과의 대립으로 받아들인 면이 있습니다.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과학으로 다룰 수 없습니다. 현재의 과학을 넘어서는 영역이에요. 그러나 출발하지 않으면 그 이후가 성립되지 않죠. 이런 게 미묘한 지점이에요. 우주의 시작, 생명체의 탄생, 의식의 시작 같은 미묘한 지점은 아직 과학이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미묘한 지점에서는 다양한 철학적 견해나 종교적 입장이 부딪히거나 연결될 수 있죠. 저는 그런 지점에서 유신론적 입장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의 영역들은 사실 과학이 상당히 설명해내고 있어요. 과학이 설명해 내는 자연현상들도 물론 유신론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무신론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요. 자연현상 뒤에 신이 존재하는가와 같은 문제는 해석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과학 자체를 얘기할 때는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모두 동등한 입장일 수 있죠. 그런데 흔히 무신론자만 과학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는 일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 중요한 지적입니다. 크리스천은 과학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학을 무신론자와 동등하게 쓸 수 있다는 인식만 활성화 되어도 굉장히 다른 태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바로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요. 과학으로 증명되는 영역이 분명히 있지요. 반면에 자연세계를 넘어서는,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지만 우리가 받아들이는 실체가 있는데도 과학으로만 재단하려는 것이 문제에요. 그런 시각을 퍼트리는 것이 과학을 등에 업은 무신론자들이죠. 아쉽게도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과학과 종교 간의 ‘창조 대 진화’로 요약되는 논쟁의 역사를 보면, 교회는 과학을 버리고 부정함으로써 신앙을 강조하려는 전략을 선택합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내용을 보면 과학과 다른 것 같죠. 그런데 그게 당연합니다. 성경이 몇 천 년 전에 쓰였으므로 그 당시의 세계관으로 적혔겠죠. 당시의 우주관이 창세기에 반영된 겁니다. 창세기에 쓰인 우주관이 우리 실제의 우주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죠. 창세기의 우주를 접하다가, 발전된 과학을 통해서 다른 우주를 보게 되니 일단은 충격을 받습니다. 그 충격을 잘 넘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얼마나 풍성한지 과학을 통해 눈이 넓어져야 하는데, 자연이라는 책을 아예 덮어버리고 성경에만 갇혀버린 슬픈 일이 일어난 것이죠.


다윈의 《종의 기원》 이전에도 지구의 나이에 대한 논란이 많았습니다. 교회가 과학 전문지식에 근거하지 않고, 과학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비전문가인 사람이 성경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메시지를 읽어냄으로써 과학을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결국 지식을 가진 사람, 과학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기독교가 꼴통으로 보이는 것이죠. 이것은 기독교 변증에 굉장한 걸림돌이 됩니다. 주일학교에 다니던 학생이 과학을 배우며 혼란을 겪고 교회를 떠나는 문제가 생겨납니다. 제일 안타까운 건 과학이 하나님의 것이고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데, 교회가 잘못된 전략을 선택해서 점점 수세에 몰리는 형국이 된 거죠. 그걸 뚫고나갈 방법은 과학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유신론적으로도 얼마든지 수용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이런 관점을 담아 《무신론자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라는 책을 쓰기도 하셨는데요, 반발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관점을 타협이라고 여기는 분도 많고요.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나요? 그때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시작한 게 1996~97년쯤으로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할 때였어요. 당시 <복음과 상황>에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모두 과학을 수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기고를 했어요. 그후 학교에서 마주친 IVF 후배가 저를 보자마자 대체 무슨 글을 쓴 거냐며, 어떤 지인이 우종학이란 사람이 크리스천이 맞느냐고 물었다더군요. 제3의 길이 가능하단 글에도 크리스천이 맞느냐는 반응이 나오는 걸 보면서 솔직히 좀 충격이었어요. 



2014년 10월 30일에 발행된 개정판 ⓒIVP

1999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가자마가 미국IVP에서 나온 창조진화를 보는 네 가지 견해에 대한 책을 번역했죠. 그러면서 저도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박사과정을 한 곳이 시골이라 시간이 많았어요. 책을 많이 읽었죠. 지적설계론, 창조과학 관련 연구와 논문을 많이 봤습니다. 그러다 다시 <복음과 상황>에 지적설계를 비판하는 글도 썼는데 타협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논쟁도 많았고요. 저는 일단 억울했어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면 그런 의심을 받지 않았을 텐데, 논리적인 이야기를 하면 타협한 크리스천이라고 의심하더라고요. 제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하고 또 저를 비방하기도 한 글을 보면 억울했어요. 그때는 아직 학생이었고 이후 단계적으로 훈련되면서(웃음)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별 흔들림 없이 이런 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2006년 즈음에 미국 코스타에서 세미나강사로 섬겼는데, 그때 강의안이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의 초고가 되었고 2009년에 IVP에서 발간했습니다. 


지적설계를 비판할 때 창조주, 혹은 지적설계자가 있다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비판하는 건, 그런 가능성을 논하는 것을 과학이라며 과학 시간에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이죠. 그건 과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천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때 신앙을 강화시킬 수 있고 설득력이 높을 수 있지만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죠. 그런데도 현재의 과학 대신 지적설계를 과학으로 가르쳐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지적설계자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진 않았다는 거고요. 철학적 논증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보통 지적설계를 “Bad Science-Wrong Theology”라고 해요. 과학도 아니고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많다는 얘기죠.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지적설계자가 증명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반면에 과학으로 설명되는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적설계는 그 부분을 논증에서 모두 버려요. 저는 하나님이 과학에서 설명되는 방식으로 주로 일하시는 것 같아요. 완전히 기적적으로 창조했거나 스스로 발현하도록 창조했거나 둘 중 하나이지, 중간에 개입해야만 하는 창조는 왠지 불완전해 보이죠. 중간 중간 갑자기 나타나 개입한다면 굉장히 불완전한 창조처럼 생각되거든요. 물론 그렇게도 하실 수 있겠으나, 그보다는 우주를 마치 씨앗처럼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가 발현되도록 만드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긴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게 더 완전하죠. 자꾸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빈틈을 찾는 그런 방식의 논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까워요. 



*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과학 선생님들이 도전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학습교재를 만들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나요? 

  

원고는 마무리가 되었고 교정하는 중이에요.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개최한 포럼에서 발표를 했던 게 발단이었죠. 그때 오셨던 선생님들이 현재의 과학교육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시며 이전에도 제 강의를 접했다가 또 들으러 오셨다고 하더군요. 원래 갖고 있는 생각들이 깨지는 ‘멘붕’을 겪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마치 출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것처럼 말이죠.(웃음) 학교에서 과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하는 선생님들께 좀더 헌신해서 세미나도 열고, 자료집도 내고 교과서를 만들라고 도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중 한 분이 진짜로 휴직을 하시더군요. 다행히 IVF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지원을 받아 그분의 6개월 생활비를 모금할 수 있었고 ‘징검다리’라는 연구프로젝트로 진행했어요. 반년 동안 저와 두 주에 한 번씩 세미나를 하고 다른 선생님들과도 세미나를 했습니다. 그러니 거의 매주 모인 셈이에요. 그 내용을 다듬어서 책의 원고를 만들었습니다.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예화도 넣고요. 현직선생님이 쓴 책이라 접근성이 좋더군요. SFC 쪽에서 출간될 거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과학교육이 아주 중요한데 저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여러 사람들이 연결되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겠더라고요.  

  

앞으로는 공인된 교과서도 만들고자 합니다. 기독교 대안학교나 주일학교가 많지만 과학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더라고요. 창조과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과학교육을 아예 안하고요. 대안이 없으니까요. 예전에 어떤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님들 대상으로 강의를 했습니다. 이분들이 어떻게 가르쳐야 하냐고 호소하더군요. 여러분이 일선에 있으니 답을 찾으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때 자료가 정말 없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주일학교에서 자료를 개발하긴 어려워요. 책이 나와야 그걸 가져다 쓸 테니 그게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 특히 아이들이 과학을 접하며 헷갈려 하더군요. 학생들을 위해 쉬운 말로 된 과학책이 필요하단 말씀에 공감합니다. 

  

현재 과학에 대한 해석의 대부분은 무신론적이죠. 우리에게 필요한 건 크리스천 과학자가 동일한 데이터와 이론을 가지고 다르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목소리가 너무 없어요. 여러 전략이 필요하겠죠. 교과서에는 구체적인 해석이 들어가면 안 될 거예요. 다만 뉘앙스가 있을 뿐이죠. 선생님들과 의논하면서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쓰지 말고 중립적으로 하자는 이야기도 했고요. 한편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더 명시적인 교과서도 만들 수 있겠죠. 그리고 주일학교에서 쓸 만한 교재도 있을 테고요. 현재로서는 이런 게 전무한 실정입니다.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과학을 수용하는 입장에서도 기독교 변증을 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 신앙과 과학을 통합적으로 보는 것은 과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기초에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학사들이 읽으면 좋을 책들을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이 분야의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 만한 책도 있을까요?

  

학사님들에게는 자기 자신보다는 자녀들의 문제가 더 와 닿을 것 같습니다. 과학이 신앙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죠. 부모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예방주사 차원에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좀 더 수용하는 입장을 공부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우선 제 책을 먼저 읽으시면 되겠습니다.(웃음) 숲을 보는 느낌으로요. 지식적인 수준이 높아지고 고학년이 되어 좀더 구체적인 필요가 있으면 IVP의 《오리진》을 추천합니다. 《오리진》의 경우 조금 어려울 수 있으나 제 책을 읽고 더 알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전체를 읽히기보다 원하는 부분을 발췌해 읽도록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모든 고등학생이 읽을 만하진 않지만 부모님이 먼저 읽고 추천해 주시는 방식으로요. 본인의 교양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 변증이나 전도의 차원에서도 과학은 중요합니다. 





* 학사님 말씀대로 교회가 과학을 적대시하며 놓친 부분이 아쉽습니다. 앞으로 장기적인 계획과 비전을 가지고 교회 내에서 과학의 대중화가 차근차근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이 과정에 학사님의 노력이 귀하게 쓰이길 기대합니다. 























no.216=2014.10+11

타향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