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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연재] 소리지음

[말씀산책] 우리 안에 있는 수로보니게 여자의 간청(막7:24~30)_김문정

<소리> 2018년 04+05월 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말씀산책]

우리 안에 있는 수로보니게 여자의 간청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 막 7:24~30-






김문정(연세대93)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2012부터 신대원 3년, 신약학 석사 2년을 마치고 

현재 안산이주민센터에서 기관목사로 이주민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순회 설교자셨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집은 갈릴리 호수 근처 가버나움에 있었다”(2:1)고 합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회당에서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귀신을 쫓고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버나움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특히 이동하시는 동안 길에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마가복음은 항상 ‘이동 중’이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이동의 경로는 유대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두로 지방에 가셨습니다. 24절을 읽어 보면 예수님이 원래 두로를 방문한 목적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한 집에 들어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바쁜 일정 가운데 잠시 쉬어가기를 바라신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이 묘사하는 예수님은 어디를 가든지 항상 군중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고(6:31), 큰 무리와의 만남 이후엔 따로 떨어져 혼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지만(6:45), 이내 예수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고자 사방에서 몰려온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습니다(6:56). 유대 땅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피할 수 없으니 잠시 경계를 넘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으셨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의 존재감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곧 예수님이 두로 지방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졌고, 한 여자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가진 여자였습니다. 마가는 이 여자가 헬라인이고 수로보니게 족속이었다고 소개합니다. 이 여자는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마가가 묘사하는 이 여자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이 딱 막히게 합니다. 어디 하나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먼저, ‘여자’입니다. 젠더 이슈이지요. 그 당시 여자들은 확실히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게다가 이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었습니다. 여자 플러스 이방인입니다. 선민의식을 갖고 있는 유대인의 천대와 무시를 받기에 딱 좋은 조건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자에게는 부양가족이 있습니다. 이 여자가 어린 딸을 위해 이렇게 나선 것을 보면, 그녀는 이 딸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과부였거나 미혼모, 아니면 이혼녀…. 어느 것으로 보든지 사회적으로 불리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딸이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고 합니다.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정신이 성하지 않았습니다. 사면초가란 바로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말이 아닐까요? 온갖 핸디캡을 가진 이 여자는 그 상황에서 예수께 나와 당당히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 장면에 대한 여러 해석들은 이 이방 여인의 ‘믿음’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문단을 나누어 놓은 성경에서도 이 단락을 “수로보니게 여자의 믿음”이라고 제목을 붙여 놓았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병행본문인 마태복음 15장 21~28절에서 예수님이 이 여자의 믿음을 칭찬한 대목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본문에서 이 여자의 간절함과 믿음보다는 예수님의 반응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평소 제가 알던 예수님의 모습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절박한 상황에 있는 이 여자의 간청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에게 찬물을 확 끼얹는 느낌입니다. 평소의 부드럽고 사랑 많은 예수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비정하고 법을 따지는 쌀쌀한 예수님이 그려집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자녀와 자녀가 아닌 자로 대상을 구분합니다. 이 구분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자녀이고, 이방인은 자녀가 아닙니다. 그리고 자녀가 아닌 이방인을 심지어 ‘개’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에게 부탁한 치유행위를 예수님은 ‘자녀의 떡’으로 비유하셨으며, 이는 이방인들에게 허용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떡은 자녀에게 먼저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순서를 정하셨습니다. 엄격한 경계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으며, 이 경계는 쉽사리 깨뜨릴 수 없음을 암시합니다.   


 사실 저는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구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여자의 믿음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일단 한번 던져 보신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그 속마음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예수님은 자신의 주장을 곧 번복하며 여인의 간청을 들어주십니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와 한계를 허물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차별 없이 베푸십니다. 한마디로 해피엔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처음 반응이 그렇게 낯설지 않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반응입니다.  완전히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비슷한 울림을 주는 기사들을 최근에도 매스컴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이주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근로조건 악화되고 임금이 낮아지다’, ‘한국 노동자와 일자리 경쟁’ 등,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기사들입니다. 마치 이주노동자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져야 할 이익이 줄어들고 우리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을 줍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 국민과는 다른 사람이고, 이들에게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과 똑같은 것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을 긋고 있습니다.





 저는 이주민들을 위한 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가끔 이주 노동자를 위한 상담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법이 많이 좋아지고 이주 노동자들의 역사도 쌓여서 자신들이 직접 처리할 때도 많지만, 여전히 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자신이 받은 임금이 실제로 받아야 되는 액수에 훨씬 못 미치는 것 같다며 상담을 하러 온 우즈베키스탄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의 이야기를 들은 뒤 사실 관계를 확인하러 회사 사장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임금 액수를 확인해 달라고 말하자 사장님은 “한국 사람이 왜 외국인 편을 드느냐, 한국 사람을 도와줘야지”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사장님에게는 임금이 제대로 지불되었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과 외국 사람의 편을 가르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의 편을 들지 않는 것 때문에 기분 나빠했습니다.


 이주민센터라고 해서 이주민 편만 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의 집을 멀리 떠나 말과 음식과 기후와 문화가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주민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한국에서 오래 산 사람들이라고 해도 여전히 그들은 외국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주민들 대부분은 우리나라가 우리의 어려운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입니다. 한국이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저출산, 고령화는 노동력의 저하를 동반합니다. 특히 한국 사람이 꺼려하는 3D 업종(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분야의 업종)은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미리 지정한 몇몇 나라에서 사람들을 모집합니다. 한국 사람들의 일반적인 우려와는 달리 이들의 수는 정부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으며, 노동 비자인 ‘E-9(비전문취업비자)’은 아무 산업에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지정한 분야의 산업에만 갈 수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원하는 업체에서도 한국 사람에게 미리 일정기간 구인 노력을 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좀 더 전문직 인력을 뽑는 ‘E-7’은 진입 경로가 훨씬 좁습니다. 정부에서도 고급인력을 해외에서 유치해 오고 싶어 하지만,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하기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입니다.


 우리나라에 일하러 온 노동자들이 고학력인 경우도 많습니다.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자기 나라에서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 꿈을 이루려 한국으로 옵니다. 열악한 산업 환경에서 몸에 익숙지 않은 육체노동을 하며, 사장님의 요청이면 야근도 주말 업무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국에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고 싶어 합니다. 한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들 때문에 한국인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우리에게 나누어질 파이의 조각이 작아질까 봐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사실 아직까지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의 수보다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한국인의 수가 더 많다고 합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기꺼이 이주민의 삶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들 또한 외국인으로서 차별을 받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이웃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인류의 이주 현상은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작년 말 국내 체류 외국인은 218만명(단기 체류자 포함)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충남 인구보다 더 많은 수입니다. 예전에는 종로나 명동 같은 시내에서만 외국인들을 볼 수 있었다면, 이제는 외국인이 살지 않을 것 같은 동네에서도 어김없이 외국인을 마주칩니다. 외국인의 수가 인구의 4%가 넘어서면서 우리는 다문화 사회를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그보다 먼저, 우리는 지금 그들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나요?





 최근에 제 생각에 변화를 가져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은 저 또한 잘못된 시각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것은 한 우간다 여성과의 만남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작년부터 제가 일하고 있는 안산이주민센터는 주일 오후에 나이지리아, 브룬디, 카메룬 등에서 오신 분들로 구성된 아프리카 공동체에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공동체에 속한 여성 한 명이 세 들어 살던 곳에서 짐도 챙기지 못한 채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일을 계속 하지 못하여 방세가 많이 밀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갈 데 없는 상태가 되자 대표 목사님이 임시방편으로 비어 있던 쉼터 방을 하나 내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쉼터에 들어온 이 사람이 나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쉼터는 원래 남자들 전용이고 일자리가 없는 이주민들을 위하여 한시적으로 숙소를 제공한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여성 전용 쉼터를 소개해 주겠다고 해도, 난민 전용 쉼터를 소개해 주겠다고 해도 싫다고 합니다. 자기 교회가 여기에 있는데 자기가 어디를 가겠냐고 합니다. 알고 보니 이전 교회에서도 애를 먹인 골칫덩어리였습니다. 같은 공동체 사람들도 이 분에 대해 좋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일이 이쯤 되니, 저는 이 여성을 마주칠 때마다 그다지 고운 시선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항상 처리해야 할 문제처럼 느껴졌거든요. 이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고, 어떻게 내보낼까만 궁리했습니다. 건강하게 생겼는데 왜 일을 안 하는지, 난민 비자 연장은 도대체 어떻게 받고 있는지, 왜 여기에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지…. 여러 가지가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대표 목사님이 이 분과 상담을 하겠다고 하셔서 저도 그 자리에 동석했습니다. 목사님이 어떻게 지내냐고 묻자 이 분은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결국 자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일을 하고 싶지만 자기를 써주는 곳이 없고, 몸은 이곳저곳이 아프다, 사람들은 자기를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자기는 미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하소연을 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상담을 마쳤습니다. 목사님 방을 나와서 이 분과 따로 만났는데 신기하게도 얼굴이 그전보다 훨씬 밝았습니다. 해결된 문제는 하나도 없고 상황이 달라진 것도 없는데, 속 이야기를 다 하고나서인지 아니면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를 만나서인지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미소가 얼굴에 비쳤습니다. 


 매일 열심히 기도한다는 그 분에게 저는 뭐라고 기도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의 사정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네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니? 뭐라고 대답하시니?” 그랬더니 저에게 “너는 그것도 모르냐?”라고 미소를 지으면서, “내가 갈 곳이 없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이렇게 쉼터에 들어올 수 있게 해주셨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그녀와 같이 깔깔 웃고 말았습니다. 저에게는 해결해야 하는 골칫덩어리였는데,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니…. 


 단순히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얼굴 표정이 변하는 걸 보고 저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은 이주민들에게 큰 것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그냥 친구처럼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미 내 이웃이 되어 같이 살아가는 그들에게, 이것이 내 것이니 네 것이니 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계를 가를 것이 아니라 이제는 같은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는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먹을 떡을 이들과 나누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따지기 전에, 고통과 어려움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말을 들어줘야 마땅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동계 올림픽이 연일 화제입니다. 크로스컨트리 경기에 나간 한국 선수를 마침 근처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북한 코치진이 응원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마 이 내용이 기사로 나간 이유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북한과 남한은 한 핏줄, 한 겨레, 한 동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게 아닌가 합니다. 이미 반백년 넘게 분단 조국으로 살고 있지만 무의식중에 서로를 응원하는 우리는 한 민족임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꼭 핏줄이 같고 뿌리가 같지 않아도, 심지어 생긴 것이 다르고 국적이 달라도, 이미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주민들은 우리의 이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나는 나의 경계선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