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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연재] 소리지음

[당신의 연애자소서] 이별..._아내의 편지


[소리] 2014년 다섯 번째 소리- 12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당신의 연애자소서] 당신의 연애에 한선미-김효주 부부가 띄우는 상하고 상한 편지()

 

QUESTION:

 

이별...

 


 

안녕하세요? 날씨가 무척 쌀쌀해졌네요. 날씨를 따라 제 마음도 점점 차가워지는 나날입니다. 저는 지금, 3년이 넘게 만났던 남자친구와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학부 때 IVF 공동체에서 만나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먼저 형제에게 호감이 있었는데 형제가 제 마음을 눈치 챈 것인지 먼저 고백을 해서 그간 알콩 달콩 사귀었습니다. 동기들은 물론이고 공동체 모두의 축복과 부러움을 한껏 받으며 우리는 만남을 지속해왔습니다.

 

문제는 졸업 이후였습니다. 취업이 어려운 시대이지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겨우겨우 두 사람 모두 직장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남자친구는 잘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본래 꿈꾸던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의 꿈을 지지 했습니다. 하지만이제는 정말 지쳤습니다.

 


 

제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요? 저도 회사 일로 늘 이리저리 치이고 바쁩니다. 그 와중에 남자 친구를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네요. 남자친구가 시험으로 인해 예민해져 있기도 하고요. 차라리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만날까 하는 생각만 듭니다. 언제 이 시기가 끝날지 모른다는 막연함이 정말 답답합니다. 물론 남자친구의 부담은 더 심하겠죠.

 

서로 애정보다는 정 때문에, 그리고 우리 사이가 끝나면 어색해질 공동체의 관계 때문에 서로를 놓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은 이미 헤어지는 쪽으로 기운 상태인데요. 남자친구에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것조차 고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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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미한성대99

캠퍼스 간사 6년을 포함, 20대를 고스란히 IVF에서 뒹굴 거리다가 지금은 살림과 육아에 전념 중이다. 2002년 착하고 성실한'' 알았던 형제를 만나 열심히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고를 무한 반복하다 그만, 2007년에 결혼까지 해버린 상태다. 하루에 4만 마디쯤은 거뜬히 하고 뜨개질, 바느질, 독서 외에도 각종 오지랖을 넓혀가고 있는 아줌마.

 

Answer:

 


 

제가 애정하는 작가,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 비행운<호텔 니약따>의 한 부분입니다서윤은 경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평소 자기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유치한 질문을 했다.

 

너 나 만나서 불행했니?” 그러곤 곧장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경민이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 “그런 거 아니었어.” “......”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혹시 자매님도 서윤의 남자친구 경민과 같은 마음일까요? 지문만으로는 다 알 수 없겠죠.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데에는 수백, 수천가지의 이유가 필요할 때도 있고 그 어떤 이유도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제일 중요한 한 가지는 꼭 물어 보고 싶어요. 그를 사랑하나요?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나요? 상황이 사랑을 이끌어 갈 수도 있고, 사랑이 상황을 이길 수도 있죠. 어떤 경우에도 제일 중요한 건, 당사자 두 사람인 것 같아요. 남자친구 힘든데 못 기다려주고 차버린 야박한 현실에 찌든 여자 친구가 되어 버릴까봐 두려운 건가요? IVF 공동체 안에서 두 사람이 만났고 많은 선후배들이 알고 있지만, 사랑하지도 않는데 IVF 때문에 만날 수는 없잖아요. 공동체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청할 수는 있지만, 그건 결정의 기준이 아닌 것 같아 요. 거기서부터는 자유롭길 바라요.

 

남자친구에게 자매님의 속사정, 이 어려운 마음을 털어 놓아야할 때인 것 같아요. 혼자만 이런 저런 생각하다 결정 다 하고 통보 하는 이야기 말고요. 지금의 힘든 점, 서운했던 마음, 이 상태가 지속될까 염려스러운 점, 안개 속에 갇혀 출구를 못 찾는 그 마음 말이요. 어쩌면 이미 눈치 채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자매님은 남자친구를 돌봐줘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남자친구 입장에서도 자신이 답답한 상황이긴 하지만 자기를 믿어 주지 못하는 여자친구가 부담되고 섭섭할 수 있으니까요. 애정 어린 긍휼한 마음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 어떤 부분은 의외로 풀어지고, 어떤 부분은 두 사람이 파이팅! 하며 의기투합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아니면 대화하면서 좀 더 정리되고 , 더 이상은 무리겠구나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하겠죠.

 


 

만약에 남자친구가 지금 선생님이 되어 있었으면 두 사람은 계속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요? 아니, 남자친구가 선생님이 되지 못한 아쉬움을 계속 안고 있지만 그래도 그냥저냥 회사생활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자매님은 남자친구에게 뭐라고 말해줬을 까요? 그래도 회사생활 하고 자리 잡고 그러다 결혼했다면 괜찮았을까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지금의 고비를 넘겼다 해도, 긴 시간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같이 살아가는 동안, 우리 에게는 헤어질까?’ 하는 시간이 또 찾아와요. 그게 이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어도 말이죠. 우리의 연약함은 쉽게 변하지 않고, 나도 상대방도 그렇게 금방 성숙해 가는 존재들은 아니니까 요. 어쩌면 우리는 고질병을 안고 평생을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같죠. 그러나 나의, 그리고 너의 그 문제들을 함께해결해 가고 온전해지고 싶다, 하는 서로를 향한 애정은 있어야 해요.

 

그 애정이 솜사탕마냥 늘 달콤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애정이 있지만 지루할 때도 있고, 쓴 입맛을 다지며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그 사람을, 이 시간을 허락하신 걸까요? 그 형제와 사귀기 전에 숱하게 고민하고 기도하셨죠? 그렇다면 헤어지고 싶은 이 시점에도, 그때처럼 하나님께 물어야 할 거에요.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웬만해서는 받지 않는 편인데, 낯선 번호로 온 [소리] 간사님의 전화를 어쩌다 받고는 벌써 여섯 번이나 연애 수다를 떨었어요. 캠퍼스 시절이나 졸업 후 학사님들이 나, 연애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은 걸 보고 미소 짓기도 했고요. 좀 더 화끈하게 조언을 해드렸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도 남네요. 그러나 뭐, 백번 쓰고 읽어야 뭐 해요. 연애는 글로 보고 배우는 게 아닌데 말이죠. 더 열심히 치고 박고 미워하고 싸우고 그리고 딱 그만큼 더 많이 사랑하며 지내시길요! 감사했어요. 정말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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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월 둘째주 IVF학사회 소리지 업데이트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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