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리 Sori/[연재] 소리지음

[당신의 연애자소서] 세 번째 고민_남편의 편지

[소리] 2014년 세 번째 소리- 6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당신의 연애자소서] 당신의 연애에 한선미-김효주 부부가 띄우는 상하고 상한 편지()

 

QUESTION:

 


 

안녕하세요? 이렇게 지면을 통해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대략 6개월 정도 교제를 하고 있는 형제입니다. 교제 중 스킨십과 관련한 고민이 생겨서 이렇게 메일을 보내요. 조금 민망하기는 하지만, 지금 좀 심각합니다.

 

저희는 교회 리더모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저는, 몇 번의 구애를 통해 교제를 시작했죠. 그런데 자매는 교제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습니다. 1년 이내에는 손을 잡지 않는다는 것과 결혼 전에는 안는 것(hug)도 금지라는 겁니다. 자매에게는 첫 번째 교제였기에 약간 무서워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저도 그 조건을 충분히 지킬 수 있으리라 여겼고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이 조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저 또한 정식으로 시작한 첫 연애인지라 오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욕구에 대해서 말이죠.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고 당연히 처음에는 모든 시간이 매우 행복했습니다. 함께 있는 것만 으로도 좋고,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도 만족이 되었습니다. 물론 스킨십을 하고 싶은 욕구가 종종 올라오기는 했지만 견딜 만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힘들어졌습니다. 지난겨울처럼 추운 날 나란히 길을 걷거나 따뜻한 봄날 벚꽃 길에서 손을 잡고 걷는 연인만 봐도 부러웠어요. ‘내가 정말 교제를 하기는 하는 걸까? 이자매가 날 좋아하기는 하는 걸까?’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올라왔고 점점 더 괴로워집니다. 그래서 저의 이런 생각에 대해 진지하게 자매와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자매는 자기를 위해 기다려 줄 수 없느냐고 했고, 더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교제를 시작할 때 약속해 놓고 지금 와서 이러면 그건 너무 욕심 아니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고민이에요. 이 자매는 저와 정말 잘 맞고, 앞으로도 이런 자매는 만나지 못할 듯싶고, 결혼까지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킨십 문제에 맞닥뜨리면 이 자매를 계속 만나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두 분의 조언, 부탁합니다.

 

============================================================

 

김효주고려대99

진중하고 과묵한 성격이었으나 하루에 4만 마디 하는 자매를 만나 연애시절 건당 30원하는 문자메시지 값만 3만원 넘게 나오는 기염을 토했다. 원래는 뭐 하나 꾸준히 하는 게 없는 캐릭터인 데, 한 사람과 6년 연애 후 결혼 그리고 결혼 후 6년 이상을 살고 있다. ‘오늘 점심 뭐 먹지가 최대 고민인 회사원 8년차이자 두 돌 지난 딸이 하나 있고 풀코스를 두 번 완주한 초보 마라토너

 

Answer:

 


 

ABCDEF, 이렇게 서서 AC의 손을 잡습니다. CE의 손을 잡고요. BD의 손을 잡고 다시 DF의 손을 잡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이어서 손을 잡으면 둥그런 원이 되겠죠. 무슨 이야 기냐고요? 학부 때 공동체에서 엔딩송을 부를 때 이런 방식으로 둘러섰습니다.

 

바로 옆 사람이 아닌 건너 사람의 손을 잡는 이런 방식으로 인해, 모임이 끝날 때는 항상 예상 가능하지만 정겹고 웃음 터지는 상황이 연출되곤 했죠. 맘에 들지 않는 친구를 옆에 두고 배를 신나게 때린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제가 처음으로 LGM에 갔던 날, 엔딩송을 할 때 두 명의 누나가 서로 저를 자기 옆자리에 두려고 다투는 모습을 보며 흐뭇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 흐뭇함이 배신감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지만요.

 

교회에서 만나 교제하는 거라면, 위와 같은 상황과 비슷한 일이 많이 일어날 수 있지 않나요? 교회 리더들끼리도 손잡을 일이 많을 텐데, 그 교회는 미니올림픽 때 짝피구는 안 하는지, 혹시 버스라도 같이 타 옆자리에 앉게 되면 어깨까지는 몰라도 궁둥이가 부딪히는 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몇 가지 더 있다는 조건은 대체 또 뭔지 등등... 지금 제 머리 속에는 형제님께 드리고픈 질문이 속사포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썰이 길었죠? 사실 진짜로 하고 싶은 한마디를 꾹꾹 누르는 중이었습니다. 이 글을 마칠 때까지 참을 자신이 없으니 그냥 말씀드릴게요. “그럴 거면 걍 헤어져!”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 다. “그렇다면 사귀는 게 아닐지도 몰라.” 만약 더 직설적인 얘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편집자를 통해 제 연락처나 메일주소를 알아보시고 제게 직접 연락을 주세요.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듣기 힘든 막말도 괜찮다면요. 교회 문화에서, 그것도 지면을 통해 스킨십을 구체적으로 얘기하기는 아직도 어색한 느낌이 들어서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되네요. 하하.



 

형제님이 그 자매와 함께 있기만 해도, 그 자매를 바라만 봐도 좋다가 이제 힘들어진 건 지극히 정상입니다. 변한 게 아니라 그냥 원래대로 돌아온 거예요. 형제 본연의 모습으로요. 도파민 분비가 끝나가고 있는 거죠. 원래 형제의 모습에 맞는 교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말은 표현의 수단입니다. 그런데 음악을 들을 때는 백 마디 말로도 표현이 안 되는 감정이 느껴지기도 하죠. 좋은 미술작품은 감상하는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런 감동은 말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과는 또 다른 무엇입니다. 이를테면 손을 지긋이 잡는 것도 그런 감동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대화의 창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무엇이 되었든, “대화가 중요할 것 같아요. 자유롭게 사랑의 대화를 나누기에는 처음 계약서를 너무 빡빡하게 쓰신 듯해요. 이쯤에서 재계약 시점을 잡아보는 건 어떨까요? 재계약이 잘 안되면 어떻게 하냐고요? 쌍방의 합의가 잘 안 되면 손 털고 떠나는 게 계약의 본질이란 걸 기억해 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책 속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마칠게요. 형제님, 파이팅!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우리 기술자들은 꽈당이라고 한답니다. 내가 꽈당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

[20175월 첫째주 IVF학사회 소리지 업데이트 계획]

502(화요일) - [당신의 연애자소서] 세 번째 고민_아내의 편지

504(목요일) - [당신의 연애자소서] 세 번째 고민_남편의 편지

505(금요일) - [IVP 신간 도서 소개] 행동하는 기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