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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워킹+맘= 죄인인가 신(神)인가?]겁나 빡센 워킹맘의 공동육아 추천사_최효미


[소리] 2017년 두 번째 소리-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겁나 빡센 워킹맘의 공동육아 추천사

 

최효미 | 이화여대99

40개월 사춘기 여아 나옹 엄마. 긴 여행을 다녀와 다시 긴 시간 준비한 스타트업을 말아먹고, 엄청난 대출을 갚느라 열일하는 생계형 어미. 느슨한 마을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한량처럼 어울려 사는 날을 꿈꾼다.

 


 

  안녕하세요, 워킹맘 동지 여러분! 더럽게 빡센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는 종일 서울 명동에 서식하는 삼십대 후반의 평범한 직장인 엄마최 과장입니다. 보통의 회사에서 여기저기 가장 써먹기 좋은 연차라, 상당히 숨 가쁘게 일하는 직장인 축에 듭니다. 광화문의 한 스타트업에 서식하는 동갑내기 팀장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40개월짜리 딸 하나, ‘나 옹이 있습니다. 육아에 있어 양가 부모님 도움은 거의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옹의 터전(공동육아 어린이집 공간을 이르는 말) 스케줄에 출퇴근 시간을 맞춰 매일 근근이 지탱해가고 있습니다. 숨만 쉬어도 부지런히 쌓이는 각종 집안일을 챙기고 나면 세수할 기운조차 남지 않아 잘 씻지도 않고 삽니다.

 

  씻지도 않고 사는 와중에, 첫 이사회에 다녀와 자정이 넘은 밤 이 글을 씁니다. 어디의 이사냐고요? 장면을 바꾸면, 저는 서울 모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아마(공동육아에서 아빠와 엄마를 줄여 부르는 말), ‘나무입니다. 올해 교육이사를 맡았습니다. 남편은 바위'라고 불립니다. , 공동육아에서는 교사와 부모를 모두 별명으로 부릅니다. 특정 호칭으로 규정되기 전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함이지요. 덕분에 아이들은 저를 누구 엄마나 아줌마가 아닌 저이들 터전의 어른 친구 나무로 여깁니다. 하루에 약 2만 마디를 하는 나옹은, 통통방 친구들에 대해 말하듯 스스럼없이 기린, 눈송이, 달팽이 등 아마들에 대해 이야 기합니다. 아마와 교사, 아마와 아마 간의 관계에서도 별명은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호칭 문화에서 느껴지듯, 공동육아는 일반적인 보육기관과는 조금 다릅니다. 공동체 교육, 생태 교육을 지향하고, 한글, 영어 등 프로그램화된 교육을 지양합니다. 아이들의 갈등과 문제를 다루는 방식, 부모들의 참여 방식 등에 고유한 교육 철학과 습관과 분위기가 있지요. 하필 유기농 먹거리만 고집하는 듯 한 인상이 도드라지게 미디어에 소개되기도 하고, 일반 보육시설에 비해 비용이 더 든다는 사실 때문에 중산층의 귀족 육아'라는 오명을 안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저희 가정의 재정 상황이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신념으로 공동육아를 택했습니다. 주변에 입양 가정도 많고, 같이 집 짓고 사는 이들 몇 팀과 교사 없는 엄마들의 쌩 레알공동 육아도 두세 그룹 있고, 대안학교 선생님과 재학생도 드물지 않은데다가, 홈스쿨링 끝에 올해 수능을 본 친구까지 있는, 소위 대안의 문화에 익숙해서 아이를 낳기 전부터 공동육아 아닌 다른 방식의 보육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공동육아란 그저 부모 공동체 안에서 내 아이 네 아이 구분 없이 같이 아이를 키우는 거라는 아주 표피적인 인상만을 가지고 말이지요.

 

  제 이야기에 앞서, 최근 회자되는 공동육아의 두 가지 갈래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먼저,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이라는 전국 단위 조합에 속해 있고, 정부 보조금을 받는 시스템 내에 있으며, 부모 아닌 풀타임 교사 조합원이 교육을 담당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2016년 말 현재 전국에 67개가 있지요. 저희 어린이집은 이쪽에 속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시스템의 도움 없이 부모들의 고민과 품앗이로 이루어지는 풀뿌리 공동육아입니다. 대체로 교회나 성당, 혹은 모여 살기로 결심한 마을 공동체 이웃들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이런 그룹이 전국에 얼마나 있는지 집계 자료는 없습니다.

 

  굳이 이 둘을 구분 짓는 건 시작부터 제가 겪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공동육아 아마가 되기 전 주변에서 보아 왔고 더 이상적 이라고 느꼈던 공동육아는 대체로 후자였습니다. 이미 부모들의 삶이 섞여 있고 서로 이해하고 용납 하는 훈련이 된 공동체속에서 서로의 열매인 아이들을 함께키우는 이상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로 와보면 이 팀에 직장인 엄마가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어떻게든 함께 해볼수 없을까, 시간 대신 다른 방식으로 더 기여할 수는 없을까, 마지막까지 한 팀과 같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만 그건 지속 가능하지 않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데 동의하고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설명하는 공동육아는 전자에 한정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공동육아는 일단 바쁩니다. 매달 있는 또래 방모임, 운영/홍보/재정 등 자신이 속한 소위원회 참여, 일 년에 한두 차례 있는 전체조합원 교육, 개원 잔치, 들살이, 연말행사, 졸업식 등의 행사, 거기에 휴가를 써야 하는 일일 선생님 등, 기본만 나열해도 숨이 턱에 차는 기분이 들지요. 부모들이 아이를 함께 키우기 위해 어린이집을 함께 운영한다는 건, 방식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터전의 재정, 구매, 홍보, 시설 관리, 하다못해 청소에 빨래에 김장 까지 부모들이 도맡아 챙긴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교회에서도 일 좀 하신다고요? 그럼 정말 죽을 지경일 겁니다. 일 년 내내 투잡을 뛰는 기분. 회사 다니며 IVF 개척 지부 리더를 하는 기분이라면 이해가 쉬울까요?

 


 

  그러나 아이를 재우다 잠든 바위가 밤 12시에 벌떡 일어나 터전 청소를 위해 나서는 모습을 보며, 저는 문득 나옹의 이전 어린이집을 떠올렸습니다. 공동육아 합류 전 9개월간 가정 어린이집을 다닌 나옹은 일곱 시 반에 어린이집 문을 따고 들어가는, 가장 체류 시간이 긴 아기였습니다. 친구들의 등원까지 두 시간을 혼자 지냈지요. 매일 그 두 시간 동안 아기가 말 그대로 혼자’ TV 앞에 앉아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때도 선생님들이 나빠서라 여기진 않았지만 공동육아를 해 보니 더욱 그게 교사를 탓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부모들이 나누어 하는 모든 일을 여기보다 두 배 많은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가 직접 한다면 과연 교육을 고민할 시간 이, 아이들에게 집중할 에너지가 얼마나 남을까, 싶어서요.

 

  소통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듣고 “OO가 많이 아프다면서요?”하고 같은 반 아이 안부를 물으니, 즉각 , 어머니, 옮는 병이 아니에요. 염려 마세요라고 하시더군요. 궁금해서 질문하면, 친절하지만 방어적이고 원론적인 답이 돌아왔습니다. 백인백색 교육 소비자의 민원과 항의, 질문을 모순 없이 받아내는 원장님의 노련한 처신에, 저는 곧 대화의 시도를 줄이고 서비스에 감사하는 인사와 미소로 선생님들을 대하게 됐습니다. 평일 브런치 시간 없이 엄마들과 유대를 쌓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요.

 

  공동육아의 교사들은 교사만 처리 자격이 있는 행정 업무를 제외하곤 교육, 아이들 관찰, 교육에 관한 소통에 집중합니다. 매일의 기록인 날적이를 통해 아마와 직접 소통하고, 터전 운영을 함께 하며 한 팀'이라는 의식 속에서 아이와 교육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으니 훨씬 편안합니다. 일하는 엄마라 얼굴 마주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어도 교사나 다른 부모와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구조가 공동육아에는 있습니다.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고 해야만 하니, 남편과의 육아 팀워크도 훨씬 좋아 졌습니다.

 

  일하는 엄마인 제게 공동육아가 가장 크게 주는 가치는 안심'입니다. 약속된 시간(아침 7-저녁 7) 동안 내 아이가 방치되는 일 없이 살갑고 촘촘한 돌봄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리라는 안심. 오해하면 어쩌나 아이에게 해가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없이 아이에 대해 터전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묻고 의견을 내고 같이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안심. 워킹맘도 정보와 관계에서 소외되지 않으리라는 안심. 거기에 까다로운 기준 덕에 터전에서 워낙 질 좋은 음식을 골고루 잘 먹으니 피곤한 저녁엔 좀 대충 먹여도 돼, 하고 서로 다독이는 불량 부모로서의 안심까지!

 


 

  아이에게만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금요일 밤, 아이 재우고 나온 엄마들과 새벽까지 마신 술로 쌓은 우정이 제법 돈독해졌습니다. 내 남편 내 아이 흉을 실컷 봐도 그게 정말 흉이 될까 걱정되지 않는 마음이 때로 신기합니다. 지난 연말 통통방 다섯 가정이 함께한 모꼬지에서 아이들이 (정말로!) 미치광이처럼 굴어도, 잘 놀다 갑자기 투덕거리며 싸우고 울고불고 해도 부모들이 요동 없이 편안함을 확인하면서, 저는 이렇게까지 우리가 아이에 대해 놓아도좋은 공간이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육아를 하며 무의식중에 쌓여온 고립감, , 개인주의, 교육 소비자스러운 사고방식 등이 공동육아 덕에 슬슬 깨지니 아이 키우는 게 한결 수월하게 느껴집니다.

 

며칠 전 오랜만에 아이 등원을 시키는 길에, 신나서 앞서 뛰는 아이를 추키느라 과장스럽게 외쳤습니다.

 

아이고 다 왔네, 다 왔어. 여기가 누구네 터전이 야? 우리 나옹 터전 아니야?”


아이가 뛰던 발걸음을 멈추고 휙, 돌아보더니 또랑또랑 대꾸합니다.


아닌데? 여기 우리 가족 터전인데? 엄만 아직도 그걸 몰라아아?”

 

  다시 총총 뛰어 들어가는 아이를, 먼저 등원시키고 나오던 아마 해바라기'가 맞았습니다. “아이구 우리 나옹 왔구나!”하며 두 팔을 벌리자 아이는 기괴한 익룡 소리를 내며 달려가 폴짝 뛰어 안깁니다. 아이 말이 맞다 생각했습니다. 거대 도시 서울의 점하나인 외로운 핵가족, 허덕허덕 사는 워킹맘과 워킹대디에게도 이곳은 우리의 터전'입니다.

 

  다만 맞벌이 부부의 일상적인 부담 측면에서 공동 육아는 결코 대안이 아닙니다. 하다못해 지금 터전 에서 엄마가 교사이거나 아빠가 시간 사용이 자유롭거나, 아니면 아이돌보미 이모님 혹은 조부모님의 등하원 도움을 받거나 하지 않고 공동육아를 소화하는 맞벌이 부모는 저희뿐입니다. 엄마인 제 입장에서는 비록 아이가 잠든 후 밤새서 일할지언정 8시 출근 5시 퇴근을 용인해 주는 회사가 있고, 이심전심에 육아와 가사가 완벽하게 대체 가능한 남편이 있는 운 좋은 케이스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워킹맘의 삶은 출근의 연속입니다. 무거운몸 일으켜 회사로 출근하고, 일 끝나면 집으로 출근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빡센 워킹맘의 삶에 구태여 터전으로 출근하는 부담을 하나 더 얹고 구시렁대는 제게, 저희 엄마는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들 어. 힘들어도 재미있으면 그걸로 됐어라고 하시더군요. 쉴 틈 없는 스케줄이 제게 주어진 삶이지만 그게 제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공동육아를 통해 저는 제가 가치 있다 생각하는 삶을 조금이나마 몸으로 사는 기쁨을 느낍니다. 공동육아는 제게 어쩔 수 없다는 말 대신 책임지는 어른으로서 자라가는 한 방식,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한 방식입니다. 돈 내고 시간 내고 마음 내고 몸을 내는 재미있는 개미지옥, 공동육아로 초대합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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