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죄인인가 신(神)인가?] 198년대 어느 워킹맘의 자화상_김성순

Posted by GCF IVF GCF
2017. 4. 13. 15:05 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소리] 2017년 두 번째 소리-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1980년대 어느 워킹맘의 자화상

 

김성순 | 덕성여대70

두 아들을 키우며 1982년부터 현재까지 온누리대산약국을 운영해왔다. 관악구 약사회 자문위원이자 대한약사회 이사이며, 한국여약사회 회장으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현재는 두 아들을 모두 장가보내고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저는 현재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약사입니다. 학창시절엔 문과를 공부했었는데, 치과의사였던 큰오빠가 앞으로는 여성도 직업을 가져야한다며 약대로 지원할 것을 권유해 이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1982년에 약사로 일하기 시작했으니 대학원 졸업 직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한 셈이네요. 그때 제 나이가 결혼 적령기라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결혼식을 올렸고 시부모님과 시누이와 함께 살며 신혼 생활을 보냈습니다. 결혼을 하자마자 임신을 하게 되어 첫아이를 갖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집과 가까이 있는 제약회사에 다녔는데, 배가 부르고 아이를 낳는 날까지도 회사에 계속 나가야 했습니다.

 

  첫아이는 남자아이였지요. 시아버님은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분이라 첫 손주를 보시고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아이가 조금 크고 난 다음 다시 회사로 나가게 되어 아들은 시어머님이 돌보 주셨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둘째도 갖게 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신림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회사가 너무 멀어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졌고,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3개월을 쉬었는데 집에 있는 게 익숙하지 않더군요. 결국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시에는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 많지 않았지만 저희 집은 어렸을 적부터 형제끼리 평등하게 자랐고 당연히 능력이 되면 여성도 직장생활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시어머님이 돌보아 주셨고 도우미 아주머니도 상주해 있었습니다. 퇴근 후 저녁이 되면 큰아이는 시부모님이 데리고 주무셨고 작은아이는 제가 데리고 잤습니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다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이번에는 약국을 개업했습니다. 개인약국을 운영하면 아이들과 같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생기리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약국은 잘 되었지만 바쁘고 시간이 없는 것은 여전해서 저와 남편은 주일만 겨우 지키는 1시간 예배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박사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받아 전임강사가 되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큰아이는 초등학 교를 다니고 작은아이는 유치원에 다녔는데, 둘째가 유치원에 들어가니 엄마의 손길이 정말 많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아들만 둘인지라 딱히 까다롭지는 않았어요. 주로 시어머님이 저 대신 잘 돌보아 주셨지만 아이들 소풍 때면 저는 약국 때문에 따라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럴 때는 시어머님이 소풍날 같이 가주셨고 어떤 때는 남편이 따라간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같이 따라온 아이는 우리 아이밖에 없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나고 보니 아이들이 커가는 소중한 시절, 약국 문을 닫고서라도 아이와 소중한 추억을 쌓았어야 했다고 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 학부모의 참석을 바라는 행사에 전혀 참여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이 시험을 치를 때는 집이 아닌 약국에 조그마한 상을 펴놓고 문제집으로 공부를 시켰던 적도 있습니다. 저녁에도 늦게 들어가다 보니 엄마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보고 아이들이 자랐습니다.

 

  그래서 엄마와의 추억은 별로 없고 음식도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음식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이 되었네요.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고 중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도시락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급식을 먹으니 도시락 걱정은 덜하겠지요. 옛날에는 약국이 아침에 일찍 열고 밤에 늦게 닫는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쓰러운 일이었지요. 토요일이 되어야 네 식구가 방에 모여 늦게까지 TV를 보기도 하고 밤참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던 기억이 있습니다.

 

  큰아들이 고3이 되었을 때, 국가에 한약조제 시험 제도가 생겼습니다. 저는 약국 문을 닫고 나면 밤을 새우면서 공부했습니다. 어느 날, 늦게 귀가한 남편이 고3 아들은 쿨쿨 자고 엄마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서로 바라보면서 웃었던 일이 생각나네요. 그래도 지금 돌이켜 보니 두 아들은 무사히 대학원도 졸업했고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평범한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들들의 신앙이 걱정입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첫 번째 우선순위로 여기고 철저히 주일성수를 하면서 교회를 섬깁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제가 약국 일을 하느라 주일학교에 데려다 놓고 지켜봐줄 수 없어서 아이들의 신앙을 잘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주일학교에 갔다가 그냥 돌아와 버리는 일이 잦았고, 지금도 스스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일에 교회에서 큰아들 내외를 만나기는 하지만 아직 믿음이 없는 상태이고, 작은아들 내외는 어쩌다 한 번 정도 교회에 옵니다. 제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들들과 같이 있지 못하고 믿음에 소홀히 했기에 제 책임이라 생각하고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게 소원이 있다면 믿음생활 잘 하는 자손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현재의 워킹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직장 때문에 아무리 바쁘더라도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에서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때 같이 있어 주어야 합니다. 그 시간은 절대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명백한 사 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없었던 지난 시간이 안타깝습니다. 물론 워킹맘으로서 장점도 있습니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남녀평등하게 서로 존중하며 생활할 수 있었고 워킹맘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아이들이 일하는 엄마를 든든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경제적인 부담도 주지 않고 꿋꿋이 일하는 엄마가 버팀목이 되어주니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 하네요. 요즘도 어떤 때는 시간에 쫓겨 사는 게 힘들어서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정년이 70세라 생각하고 지금까지 건강 하게 일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렇게 평생 주님과 동행하는 삶, 성경에 나오는 안나와 시므온같이 평생 기도하며 교회를 떠나지 않는 삶을 살리라 꿈을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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