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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기획] 소리정음

교회의 진정한 유산(遺産)을 고민하며

 교회의 진정한 유산(遺産)을 고민하며

지난해 한국교회 내부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잇따라 터져 나왔습니다. 기독교 외부에서 지탄의 대상이 된 것에 이어 속에서 곪았던 오랜 상처들이 드러난 것이겠죠.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교회를 떠났다는 이야기가 공동체 내에서 더 이상 낯선 소식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필립 얀시의 책 제목과 같이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이자 고민입니다. 과연 학사들은 어떤 고민을 안고 교회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다양한 필자에게 현재의 고민을 나눠주십사 부탁했는데, 필진 전원이 익명으로 글을 싣기를 원했습니다. 현실에서 부딪히는 벽의 높이와 고민이 지속되는 골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번호에서는 우리의 현실을 마주하고자 합니다. 다음호에서는 교회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며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소리]의 시도를 통해 교회에 대한 고민의 실마리를 얻으시면 좋겠습니다.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1) 교회의 진정한 유산(遺産)을 고민하며 (2) 오늘도 나는 교회에 갔다 (3) ‘‘그 교회’는 가지 않지만 ‘이 교회’는 간다 (4) 공동체성을 회복한 작은 교회




#1 중학생 때, 어느 교회 재정보고서를 우연히 보았다. 담임목사 사례비 외에도 차량운영비, 심방비, 도서비, 자녀장학금, 사택관리비 등, 꽤 많은 금액이 여러 가지 항목들로 분산되어 있었다. 필요해서 지급하는 건 좋은데, 왜 굳이 항목을 여기저기 흩어 놓아서 합계금액이 한눈에 보이지 않게 해놓았을까 의아했다. 비슷한 연배의 부교역자 앞으로는 이런 항목들이 잘 보이지 않던데 말이다. 사택과 성미까지 감안한다면 두 액수 사이에는 꽤 많은 차이가 났던 것 같다. 나는 교회가 분배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교회 내부이든 교회 외부(사회)이든 말이다. 이것이 내가 최초로 인식하게 된 교회의 ‘생얼(민낯)’이었다.


#2 대학에 들어갔다. 대형교회에 가지 말고 작은 교회에 가서 헌신하고 섬기라는 간사님의 조언을 듣고 하숙집 앞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며 주일학교 교사를 자원했다. 고3 반을 맡기기에 가보니, 남학생 단 한 명이 나와 있었다.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고3들이 많은데 안 나와요. 고3이 되어서 교회 나오면 집사님들이 이상하게 봐요. 쟤는 대학 안 가는 애냐고.” 연락을 해달라고 하니 그 다음주에 10명 정도의 아이들이 왔다. “앞으로 매주 나와야 하는 거예요? 저는 이번 주만 나와서 기도제목 이야기하고 가면 되는 줄 알고 왔어요. 고3이 교회 매주 나오는 건 부담되고요, 집사님들도 이상하게 봐요.” 그 아이들의 부모님은 대부분 교회의 중요 직분자였다. 주일학교 교육에 세상의 가치와 방법이 무비판적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교회는 잘 분별해야 한다. 나아가 교회는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의 교육에도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올 수 있는 아이들은 매주 나오라 했다. 몇 명이 나왔지만, 분반공부를 할 장소가 없어서 기다리는 사이에 상당수가 가버렸다. 교회 근처에 교인들 집이 빙 둘러가며 있는데. 가정을 개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았다. 교회는 가정을 개방하는 일을 격려해야 한다. 군 제대 후 다시 와보니, 목사님이 1년 간격으로 몇 번을 바뀌었고 사람들은 우르르 나가버렸다. 


#3 헌신된 지체들이 청년부를 잘 세워놓았다. 성경공부 리더를 하면서, 이사야서 1장을 공부한 첫날, “교회를 꽤 다녔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성경공부를 하기는 태어나서 처음이네.”라는 말을 들었다. Shocking!

 

#4 평소 존경하던 목사님을 만났다. “너 왜 큰 교회에 있니? 개척교회로 와라” 곰팡이 냄새 나는 조그만 지하교회였고, 내가 30번째 멤버였다. 목사님 부부로부터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 교회는 헌금을 무기명으로 했고(어느 교인이 얼마만큼 헌금을 하는지 목사가 알면,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목사는 없다는 게 그분의 지론), 십일조(아니면 전체헌금?)의 10%는 구제와 선교에 사용했다. 교회재정을 맡게 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재정투명성이 확보되도록, 회계장부의 계정과목을 분류하고 복식부기에 의한 체계를 잡는 일이었다. 교회재정의 투명성은 돈이 어떤 원천에서 들어왔고, 어떤 용도로 어떤 곳에 어떤 비율만큼 사용되었는지를 정확하게 분류하고 공개해 주어서 관련된 사람들이 쉽게 알게 해주는 것이다.

 

교인수가 80명까지 늘어났다. 대출을 받아서 예배당도 넓혔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교회에 이러저러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똑같은 일에 대해 아침에는 이 사역자, 저녁에는 저 사역자에게서 정반대의 해석을 들었다. 당시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던 나는 예수원에 들어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하나님께 여쭙기로 했다. 하나님은 아무런 답도 주시지 않았다. 내 마음에 주신 생각은 “하나님,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순종하겠습니다.” 이게 다였다. 


성령 안에서 서로 용납하고 이해하며 하나 되지 못할 때,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치유 받고 자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역을 하게 되면 본인에게나 공동체에 치명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지도자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되지 못하면 공동체에는 파괴적인 결과가 올 수 있다.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 가운데 친히 중보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대천덕 신부님이 중보기도를 해주셨다. “주님, 이 일이 왜 생겼는지 우리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신 그 말씀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한 자매가 진눈깨비 펄펄 날리는 추운 벌판 가운데서 추위에 떠는 어린 양을 목자가 꼭 껴안고 있는 환상을 보여주셨다고 내게 조용히 말했다. 양들이 추위에 내버려져 있을 때, 목자이신 우리 주님이 친히 양들을 품어 주신다는 응답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교회는 폐쇄되었다. 남은 지체들은 교회의 부채를 정리하고 적지 않은 모든 재정을 애란원이라는 미혼모 보호시설에 기부하기로 하였다.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하고, 교회의 재정은 사람을 살리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


#5 그리고 한 부부가 가정을 개방하여 6개월 이상을 그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다. 우리의 원칙 중 기억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어떤 결정이든 성령 안에서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만장일치가 주는 은혜를 경험했다. 6개월 이상을 가정에서 모이면서 많은 은혜를 경험했고, 참된 사역자들의 본을 볼 수 있었다. 건물도 없고 돈도 없고 목회자도 없었다. 돈 없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며 순종해서 잘 흩어지기 위해 불가피하게 가정에 모여서 예배를 지속했다. 


잘 흩어지기 위해서 모였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교회로 탄생했다. 굳이 전용공간이 필요 없어서 모 사회단체의 강의실을 저렴하게 주일만 빌려 썼다. 금요기도회는 집에서 했다. 십일조의 3분의1은 독립계정으로 구분해 구제, 선교로만 사용하기로 했다. 독립적으로 구성된 재정위원회에 교회의 모든 계층을 참여시켜 상식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첫 담임목사의 사임 후에 두 차례에 걸친 새로운 담임목사 청빙이 있은 후, 창립 전후부터 헌신하던 지체들이 하나둘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나가는 사람들은 아무 말 않고 조용히 나갔다. 그렇게 한 가정씩 차례로 떠났다.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위에 세워진 교회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눈물이 났다.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역할과 권력은 어느 정도여야 바람직한 것일까, 그리고 성도들은 어느 수준까지 헌신하고 성숙해야 하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6 그후, 돈도 없고 건물도 없고, 사람도 거의 없는 개척교회에 의도치 않게 출석하게 되었다. 혹시 관련된 어떤 사람들 간의 화해의 다리로 나를 사용하시려고 이 교회로 보내시나 하는 일말의 의문과 기대도 있었다. 주일 예배가 회복되기 시작했고, 어린 아이들을 떼어놓지 않고 모든 세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은혜도 누려보고, 다른 차원의 신학적인 스펙트럼도 경험했다. 몇 년 전 하나님께 물었으나 답해주시지 않았던 문제에 대한 답변도 어렴풋이 듣게 된 것 같다. 


교회는 세대 간 통합에 신경 써야 하고, 균형 잡힌 건강한 신학을 갖춰야 한다. 말씀과 은사가 균형을 갖추고, 속사람을 치유하여 온전케 함으로써 공동체(가정, 교회, 사회) 내의 관계가 온전해지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7 다시 훌륭한 목사님이 교단의 임명을 받아 구조적인 한계 가운데서도 열심히 섬기시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교회에는 상황과 상관없이 꾸준히 교회를 지키고 계신 어른들이 계셨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북한 동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 끌어안고 살아줄 수 있는 청년들이 이곳에서 양육 받고 자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이들 덕에 주일학교 학생이 6명으로 늘어났다. 열심히 주일학교 학생들을 돌보는 청년교사들을 보면서, 그들을 누군가 돌보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몇 달간 조용히 예배에 참석하였다. 


담임목사님이 중고등부를 시작해보자고 하셔서 이미 교사를 하고 있던 청년들과 협의하기 위해 모였다. 간단히 삶을 나누고 기도제목을 나누자 청년들의 표정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동안 교회에서 이런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청년부까지 맡게 되었다. 우리가 익숙하게 했던 소그룹, 삶을 나누고 말씀을 나누고 자기 삶에 적용하며 기도제목을 나누는, 이런 방식을 중고등부와 청년부에 모두 그대로 적용하자 아이들에게 활력이 생겼다. 아이들은 자기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 것이다. 2명으로 시작한 중고등부는 5명이 되었고, 6명으로 시작했던 청년부는 12명이 되었다. 청년부 리더모임은 그대로 교사모임이었다. 유치부 아이들은 청년교사들 등위에 올라가서 발로 밟아대며 놀았고, 아이들은 자연에서 뛰어 놀았다. 리더를 할 만한 청년의 팀워크가 갖춰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새로 오는 청년을 30명 정도까지는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쯤, 담임목회자가 새로 발령이 나면서 바뀌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일부 사람들이 나가기 시작했고, 보석 같은 청년들은 다른 교회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평신도의 역할은 현실적으로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개개인의 헌신보다는 구조나 지위나 권력이 더 강한 것일까. 개개인이 보다 더 헌신하고 보다 더 성숙하면 어떤 구조나 권력도 선하게 작용하는 것일까. 



#8 목사님이 설교 중에 탄식하신다. 용산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기에 이 문제를 가지고 설교했더니 목사가 정치적인 설교를 한다며 교회를 떠나는 교인들이 있다고 하셨다. 이럴 때 목사가 어떤 설교를 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겠냐고, 그렇게 떠나는 교인은 목사가 성경을 왜곡한다고 생각해서 떠나는 것일 터, 성경을 펼쳐놓고 성경에는 무어라 쓰여 있는지 찾아보며 토론하면 어떤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 성경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졌을 텐데, 믿음은 기득권자의 믿음과 가난한 자의 믿음이 따로 있는 것일까. 기득권자의 신학과 가난한 자의 신학이 별도로 있는 것일까. 내 귀에 듣기 좋은 설교를 원하는 기부자들에게 하나님의 귀에 듣기 좋다고 생각하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목회자는 기득권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하나 보다.


교회의 잘못과 사회 구조적인 악에 대한 고민, 내 개인적인 고민들을 거치며 여러 교회를 경험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은 내게 교회는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아픔의 대상이라는 마음을 주셨다. 그런 마음을 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무교회주의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교회, 진정한 교회의 유산을 선물로 남기고 싶다. 













소리 no.212=2014. 02+03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