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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Sori/[사람] 소리이음

일상에서의 공공성 회복을 바라며_조제호

[소리가 만난 사람]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가는 학사와의 인터뷰


일상에서의 공공성 회복을 바라며




조제호 학사(아신대94)

IVF는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나라 운동을 강조해왔습니다. 복음전도뿐 아니라 세상의 변혁을 위한 사회 참여를 꾸준히 강조해서인지, 많은 학사들이 시민사회운동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독시민사회운동의 맏형이라 할 수 있는 ‘기독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에서 오랫동안 사역해 온 조제호 학사(아신대94)를 만났습니다. 다양한 활동가들을 만나며 그 사이의 다리 역할을 감당했던 그와 기독시민운동의 흐름 그리고 그 속에서 운동가로 살아가는 애환과 소망을 나눴습니다. 또한 학사들과 한국교회가 공공영역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진행 이시종 / 정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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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기윤실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반갑습니다. 현재 기윤실 사무처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다섯 명의 간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작은 규모의 단체이다 보니 A부터 Z까지, 대부분의 일을 하고 있어요. (웃음) 


가족으로는 아내와 10살, 7살 두 아들과 3살 딸, 세 아이가 있습니다. 아내와 저의 러브스토리가 재미있다고 지인들이 말씀하시던데요. (웃음) 아내와는 여행하다 만났습니다. 유럽 여행을 하던 중 프라하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죠. 한국에 돌아와 다시 만났고 결혼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기윤실을 알게 된 건 대학 1학년 때입니다. 교양 수업시간에 손봉호 교수님의 《나는 누구인가》를 읽는데, 저자 분이 아주 독특하더라고요. 그분에 대해 알아보다가 기윤실이란 단체를 알게 되었고 회원가입을 했죠. 군대 다녀오고 복학해서는 IVF 활동을 하면서 기윤실에서 1년 동안 격주로 모이던 ‘대학생위원회’ 5기에도 참석하며 이래저래 인연을 쌓아갔습니다. 선교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에 갔고 일반대학원에 진학하려고 공부했으나 잘 안됐어요.(웃음) 때마침 기윤실에서 간사를 뽑는다는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제가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신학대 재학 시절, 채플시간에 교수님이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감동적으로 설교하셨어요. 그런데 그 교수님이 뒤에서는 동료 교수를 쫓아내기 위해 음해하는 행동을 했죠.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른 거예요. 왜 이럴까, 신앙이란 무엇일까, 실천이란 무엇일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실천한다는 기윤실에 끌렸던 것 같아요. 당시 기독시민단체가 기윤실 밖에 없기도 했고요. 그렇게 2003년부터 전임 간사로 일하기 시작해 올해 13년차가 되었습니다. 

  


 


* 기윤실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더불어 기독시민운동의 모태가 되었다고 볼 수 있죠. 초기에 비해 사역의 폭이 넓어지고, 개인윤리를 넘어서 사회정의에 대해서도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한다는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기윤실의 정책 변화과정을 알고 싶습니다.

  

만약 누군가 “개인윤리와 사회정의, 둘 중 어떤 게 먼저냐”는 질문을 한다면, 그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라는 싸움과 같을 겁니다. (웃음) 기윤실은 80년대에 “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사회 참여를 하면 안 되는가?”하는 의문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기윤실 내부적으로 한쪽을 강조했던 때는 없다고 봅니다. 개인윤리를 기반으로 사회정의까지 간다가 기본적인 틀이었죠. 개인윤리만 강조하면 무기력하고, 사회정의만 강조하면 공허하니까요. 그때그때마다 중요한 이슈에 대응했습니다. 초기에는 횡단보도 지키기와 같은 개인의 도덕성을 강조하고 세계관 공부를 하는 등, 계몽적인 역할을 많이 했죠. 그래서 개인윤리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였고 그렇게 인식이 굳어진 것 같습니다. 

  

사실 사단법인이나 시민사회와 같은 개념은 90년대에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하는 단체들도 이때에 만들어졌죠. 이때 기윤실이 큰 역할을 했고, 공명선거 운동 등 제도개선과 같은 부분에서 열심히 해왔다고 자평합니다. 

  

그런데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했던 음란물감시 운동이 너무 도드라졌습니다. 이것에만 주력했던 건 아니었는데요. 90년대에는 사회참여에 관심이 있는 기독인이 기윤실 밖에 갈 곳이 없었죠. 그래서 다 같이 모이다가 이후 ‘기독법률가회’, ‘좋은교사운동’ 등 직종별로 모임이 분립했습니다. 2000년대에는 의도적으로 건강교회운동본부, 사회정의운동본부, 건강가정운동본부, 문화소비자운동본부 등을 내부에 두었다가 점진적으로 독립시키는 걸 목표로 삼았습니다. 자체적으로 단체를 돌아보니 너무 많은 운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모두 다 할 순 없다는 비판도 나왔고요. 앞으로는 네트워킹과 전문화의 시대니 내부의 운동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분리, 독립을 통해 더 전문적인 운동을 펼치자는 것이었죠.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다 보니 정작 기윤실 내부에서는 어떤 운동에 집중할지 논의도 부족하고 역량도 따라주지 않아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기도 했죠. 


과도기를 겪으며 기윤실이 한두 명의 리더십에 좌지우지 되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역사가 짧지 않은 단체의 체계를 생각했을 때나 장기적인 비전을 고려했을 때도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기윤실 운동에 대해 여러 논의를 거쳐 정직윤리운동, 교회신뢰운동, 사회정치윤리운동, 이렇게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여기에 맞춰 사업을 조직하고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 최근에는 어떤 운동에 주력하시나요?

  

2015 교회의 사회적책임 심포지엄 "한국교회 부교역자를 생각하다" (기윤실 홈페이지 cemk.org)

최근에는 자발적불편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불편을 감수했을 때 생기는 무언가로 인해 이웃을 섬길 수 있다는 게 자발적불편운동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책자를 배포하고 IVF 캠퍼스와 연계해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교회신뢰운동은, 교회가 욕먹지 않도록 방어적으로 대응하거나 사회를 쫓아가는 걸 넘어서 선도적인 모습을 보이자는 개념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요즘 갑을논쟁이 뜨거운데요. 이와 관련해서 부교역자 인권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대해서는 안 된다고요. 사회법을 똑같이 적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신경 쓰지 않았던 영역에서 공적기관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이죠. 이처럼 교회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외면해서는 안 되는 문제를 발견하고 제안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환경이슈를 적용해 보려고 여러 시도를 하고 있고요. 예를 들어, 2011년에 동일본지진이 일어나며 원자력 발전이 이슈화되었습니다. 전에는 핵과 관련해서는 진보 쪽의 이슈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에너지 절약을 넘어 근본적인 에너지 정책을 돌아보자는 인식이 생겼죠. 교회가 이 주제를 심화할 수 있도록 심포지엄을 열어 자료집을 보급하는 일 등을 했습니다. 

  

올해는 운동의 전환이 일어나리라 예상합니다. 2017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이자 기윤실 창립 3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이때까지 제한된 역량으로 어떻게 의미 있는 운동을 할지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개최한 총회에서 잡은 주제가 ‘양극화 해소’입니다. 자발적불편운동 또한 양극화의 관점에서 재편할 수 있겠죠. 가령 작은 교회와의 상생을 위해 대형교회가 버스운행을 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겠습니다. 또 임직헌금하지 말자고 제안할 수 있겠죠. 이 헌금 때문에 보이지 않는 문턱이 생기고 있으니까요. 부교역자 인권운동도 여기에 연결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운동을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다방면의 전문 포럼을 개최하고 거기서 쌓인 데이터로 앞으로 붙잡을 아젠다를 발견할 예정이고요. 포럼은 아직 기획 중인데, 연속으로 개최하여 우리 사회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줄 내용을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일반시민이든 교회이든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려고 합니다. 



* 많은 시민운동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특히 기독시민운동을 이끄시는 데 어떤 고민이 있나요? 

  

활동할 시민이 없다는 것은 시민운동의 지속적인 고민입니다. 시민운동의 주체를 상근활동가, 자원활동가, 후원자(회원)로 나누는데, 전체적으로 각 주체의 수가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던 2003년에 기윤실의 전임간사만 20명이었습니다. 지금은 여러 단체로 분화되어 새로운 단체가 설립되었죠. 상근간사만 20명 정도일 때는 굳이 연대를 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단체와 협력할 필요가 생기면 거기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는 몇 명을 배정하면 됐고요. 그런데 지금은 다들 여력이 되지 않는 상황이고 전반적으로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죠. 현재의 구조가 가지는 한계가 분명해서 영향력을 기를 수 있는 방안을 단체들이 함께 궁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내에서 시민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한정적입니다. 그런 면에서의 감소도 있고요. 또 하나는 교회의 보수화를 들 수 있겠습니다. 기독시민운동의 젖줄은 교회일 수밖에 없는데, 교세가 줄어들다 보니 외부활동 자체에 무관심하거나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죠. 

  

일반 시민운동의 경우 재정 후원자가 절반이고 나머지는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후원자입니다. 그런데 기독시민운동의 후원자는 교회에 헌금하는 마음으로 후원하고 어떻게 쓰이는지 신경 쓰지 않아요.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전화하면 화를 내는 분도 있고요. 이처럼 기독시민운동은 회원의 위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회원이 재정 후원도 하고 당사자로서 활동하는 당사자운동과 간사들이 열심히 활동하도록 후원하는 대리인운동 사이의 긴장이 있는데, 이 둘을 적절하게 배합할 수 있는 이슈가 무엇인지 발견해 내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근본적으로는 21세기의 다원화된 시기에 기독시민운동이 어떻게 기능해야 하느냐는 연구와 논쟁이 필요하고 당면한 주요과제인 것 같아요.

  


* 지난해 학사사역부에서 시작한 시민사회운동 기획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같이 논의하면서 어떤 가능성을 봅니까?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 일하는 IVF 학사들과의 교제와 동역은 활발한가요? 

  

기획모임을 하며 IVF 학사 활동가의 수치를 확인하고 놀랐습니다. 파악된 수만 150명 정도더라고요. 아직 교제나 동역은 못 하고 그저 시도만 한 정도입니다. 활동가의 삶 자체가 아주 빡빡하거든요. 게다가 활동가라는 특성상 각자가 주도적인 사람들이죠. 목적의식이 뚜렷하고요.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집합을 만들고 서로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다 보니 쉽진 않아요. 다만 활동가는 쉽게 지치고 고갈될 수 있어요. 여기에 틈새가 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저를 돌아봤을 때도 그런 필요가 있어요. 이걸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그 기획모임에서 IVF 학사 출신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1차로 기초적인 정보를 설문조사했고, 곧 이들의 필요를 파악하기 위한 2차 조사를 진행할 것입니다. 조사를 토대로 모임의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으면 최소한 이들만이라도 정기적으로 만나려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의 필요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고민할 거고요. 우선 이렇게 되어야 다른 학사들의 참여도 독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쉽지 않은 여건에서 사역하고 있는데, 운동가로서 살아가는데 느끼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10년 후 어떤 일이 일어나길 꿈꾸나요?


말씀드렸듯이 올해로 기윤실에서 일한 지 13년차입니다. 기윤실의 정신에 동의해서 들어왔기에 여기서 계속 일할지 말지 고민한 적은 거의 없었어요. 13년 동안 실무책임자가 바뀌며 여러 가지 구조의 변화가 있었으나 그다지 스트레스는 아니었고요. 

  

일반적으로 시민운동단체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장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10년 후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여기 계속 남아있을까, 보통의 시민단체에서는 예상하기 어려워요. 90년대에 시민단체들이 시작되었기에 대학 졸업 직후부터 일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직 정년을 맞은 사람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장기적으로 일한 모델이 저희 내부적으로 없습니다. 더욱이 기독시민단체에는 40세가 넘어서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없고요. 저도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 월급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이 됐으나 지금까지 왔습니다. (웃음) 

  

10년 후에는 기독시민활동가로 정년을 맞는 사람이 생기길 소망합니다. 실무자로 시작해 정년까지 가는 케이스가 나와야 지속가능한 운동으로서 기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단순히 철밥통이 되는 거 아니냐, 그러면 운동성이 있겠냐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시민 없는 시민운동 이야기도 하셨지만,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 때 시민운동이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생길 거예요. 평범한 사람이 직업 중의 하나로 선택했으나 은사와 역량이 있어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요. 그래야 문턱이 좀 더 낮아지고 실생활과 밀접한, 우리 모두가 하는,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리라 기대합니다.



* 기독교가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 더 많은 기독인들과 교회가 시민사회 운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보는데, IVF학사들이 너무 거창하지 않게라도 시민사회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어떤 이슈에 마음을 모은다고 했을 때 힘을 실어주는 게 운동의 시작이겠습니다. 세월호와 관련된 집회가 있으면 내가 혼자 가는 게 뭔 의미가 있겠냐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집회 장소는 어딘지 찾아보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기본적인 시작이겠죠. 그리고 마음이 가는 단체에 후원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MS를 괜히 하는 게 아니죠. (웃음) 아무래도 마음을 한 번 더 쓰게 되니까요. 세 번째로는 주변의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작게라도 스스로 뭔가를 해보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IVF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가면 꼭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학교 건물 중 휠체어를 타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 있는지 묻죠.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어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강의실에 갈 수 없다거나 그 강의실에서 하는 강의는 신청조차 할 수 없는 경우는 없는지 물어봅니다. 학사님들의 사무실이나 교회도 마찬가지로 돌아볼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발견하는 게 많을 거예요. 제가 아이를 기르며 유모차를 끌어보니 생각보다 못 가는 데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휠체어는 어떡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일상에서의 문제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시민운동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면 뜬구름만 잡게 되겠죠. 우리가 앞으로 무엇인가를 바꾸고 싶다면 당장 주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주변에서 찾아가는 경험을 쌓아가지 않는다면 나와는 딴 세상의 이야기가 되어버릴 거예요. 시민운동이 특수하지 않다는 관점으로 전환되어야 기독인으로서의 공공성이든 공동체로성의 운동성이든 총체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한된 지면에서 못 다한 이야기는 직접 만나 나누면 좋겠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한 기독시민운동에 관심 있는 학사님은 언제든 연락주세요.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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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운동이 몇 사람의 특별한 사역이 아닌 우리 모두가 참여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우리 학사들에게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의 공공성의 회복을 위해 기윤실과 학사님이 낼 목소리와 운동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