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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기독교>기획 - "왜 오늘날 일/직업이 더 중요한가"


왜 오늘날 일/직업이 더 중요한가


 송인규 <주간 기독교>『2006호』




일 혹은 직업은 인간이 외부적으로 행하는 바이지만 

워낙 둘 사이의 관계가 긴밀해서 이제는 아예 인간의 일부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일/직업의 중요성을 논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오늘날 일/직업의 중요성이 더욱 크게 부각되고 있다. 왜 그런가. 



첫째, 절박해진 경제 관념 때문에 일/직업에 더 집착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의 가까운 뿌리는 1997년의 IMF 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IMF 사태는 개인들의 의식뿐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집단 의식도 큰 충격을 끼쳤다. 

이 이후로 ‘돈,’ ‘부자,’ ‘재테크’ 등의 단어들은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직장인들의 때 이른 명퇴와 퇴직이 일상 다반사가 되었고, 

청년 세대의 구직난 또한 과도기적 현상이 아니라 현 사회의 항구적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이런 일들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 경쟁 시대에 돌입한 징표임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미국을 뒤흔든 2008년의 금융 위기, 

경제 성장의 둔화 및 전망이 불확실한 미래는 사람들을 집단적 공황 사태로 몰아갔고, 

돈과 재물에 대한 강박적 소유욕을 부추겼다. 






둘째, 근자의 개인주의적 경향이 일/직업에 더 관심을 쏟게 만들었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는 공동주의적이었다. 

공동주의란 개인보다 가정, 학교, 직장, 민족 등 공동체에 우선권을 두고 

가치관 형성, 결정권의 행사, 생활 방식의 확립을 꾀하는 정신 자세를 뜻한다. 


한국 사회는 88 올림픽을 전후하여 급격히 개인주의화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판단, 의식, 결정의 중심부에 개인이 주권자로 우뚝 서 있고, 

그 개인 당사자의 주체적 의향과 방침에 따라 삶의 모든 것을 꾸려 나간다. 


그런데 이것은 일/직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공동주의적 관점이 풍미하던 시절에는 

일/직업의 의미가 가정 및 회사라는 공동체의 시각에서 규정되었다. 


가정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부모 봉양, 동기간 도움, 

식구들의 생계)을 떠나서 일/직업의 의미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또 회사나 일터는 가능한 한 ‘평생 직장’이 될 때 이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런 가치관이 전제된 가운데 일/직업의 의미를 논하곤 했었다. 


급작스레 들이닥친 개인주의 풍조와 경향은 이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았다. 

이제 사람들은 일/직업의 의미를 공동주의적 접근에 의해 풀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개인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새로운 탐구가 시작된 것이다. 


일/직업이 무엇인가? 왜 일해야 하는가? 일을 하지 않고서는 자아가 실현될 수 없는가? 

어떤 일/직업이 더 가치 있는가? 등등 많은 의문과 궁금증 때문에 

사람들은 일/직업에 대해 이전보다 갑절의 관심을 쏟게 되었다. 





셋째, 평신도 신학의 강조로 인해 일/직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교회에는 

폴 스티븐스(Paul Stevens) 같은 이의 수고에 힘입어 평신도 신학이 다시금 유행하게 되었다. 


주창자마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평신도 신학은 대체로 두 가지 사항

(i) 평신도의 위상, (ii) 평신도의 사명-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두 번째 사항인 ‘평신도의 사명’은 주로 ‘세상 속에서 살며 행하는 바’와 연관이 된다. 

이런 사명은 목회자와 달리 평신도들에게 맡겨진 고유의 사명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평신도들은 세상의 곳곳에 침투해 들어가서 

직업의 현장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귀한 존재라는 것이다. 


일단 이런 방향으로 물꼬가 트이자 많은 신학적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직업은 하나님의 나라와 어떻게 연관이 되는가? 

일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 앞에 가치를 지니는가? (아니면 도구적 가치뿐인가?) 

만일 일이 하나님 앞에서 본유적 가치를 갖는다면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기독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직장인은 어떤 사명자인가? 

직업의 현장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문제점들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것들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겠는가? 

소위 말하는 직장 내의 구조악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응수를 시도하려다 보니 자연히 일/직업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넷째, 이원론적 신앙에 대한 비판이 일/직업의 영역을 심각히 고려하게 해 주었다. 


한국 교회가 비신자들의 끊임 없는 비난 및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어 왔음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그런 비난의 주요 항목 가운데 하나가 ‘이원론적 신앙’이다. 


이원론적 신앙이란 결국 신앙과 생활의 괴리가 그 핵심인데, 

보통 “교회 신앙에는 열심인데 세상 생활은 엉망이다.”라는 비아냥거림에 반영되어 있다. 


이원론적 신앙을 탈피하려면,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비그리스도인과 함께 지낼 때 견지하는 삶의 태도와 생활 모습이 

비그리스도인들 보기에도 바람직하고 기릴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벧전 2:12). 

이렇게 되려면 그리스도인들은 가정·학교·직장·사회 영역에서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살듯이 영위해야 한다(골 3:22∼24). 


그런데 이런 영역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등한시되어 왔던 영역이 ‘직장’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여러 단체들의 ‘직장 사역’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일/직업의 문제를 특정 선교 단체의 사역과만 연관 짓지 말고 

모든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 각자의 과제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출처: <주간 기독교> 기획 - 그리스도인의 일과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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