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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F/IVP

[시심 11월호 영혼의 창] 진정과 형식 속에서 진정성 찾기 - 한병선

정성과 형식 속에서  진정성 찾기




나 는 어릴 때 할머니와 같은 방에서 지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와 관련된 기억들이 가끔씩 떠오른다. 그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할머니는 얼마의 돈을 깨끗한 신권으로 바꾸는 일을 하셨다. 그리고 그 바꾼 돈으로 헌금을 하셨다. 아주 빳빳해서 베일 것 같은 새 돈을 봉투에 넣어서 귀하게 보관하다 주일헌금, 감사헌금, 월정헌금 등 헌금을 하셨다. 할머니는 늘 예배 시간 전에 교회에 일찍 도착해 주보를 보고 성경 구절이며 찬송을 미리 찾아두시며 예배를 준비하셨다. 그래서 내게는 어린 날 할머니를 따라 일찍 교회에 가서 할머니와 함께 성경을 찾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조용한 예배당에 앉아서 예배를 준비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장중하던지, 내가 느낀 예배란 약간의 두려움과 경외감이 있는 것이었다. 또 할머니는 교회에 관련된 것을 귀하게 여기셨다. 주보는 그냥 버리면 안 되는 것으로 소중히 모으시다가, 1년에 한 번씩 태워버리셨다. 매일 성경을 읽고 찬양을 하면서 혼자 예배를 드리셨다. 그분은 그렇게 자신의 신앙을 누구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신앙을 지키다 가셨다.




어느 주일날 예배를 드리다가 내가 너무 허접하게 예배를 드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받는 분이시고 어떤 형식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헌금을 하려고 지갑을 열 때마다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신권은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려는 마음이 있는가? 하나님께 내가 받은 물질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드리는 것인가? 내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헌금을 할 때마다 죄스런 마음이 든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어떻게 헌금을 주었던가? 지갑에서 그냥 꺼내 주었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맞지만, 아이들에게 헌금과 다른 돈이 어떻게 다른지는 가르쳐주지 못한 것 같다.



또 부담을 느끼는 것 하나는, 주일날 늦는 것이다. 어느 때부터 습관처럼 늦는 일이 생겼다. 주일에 좀 더 자고 싶고 쉬고 싶은 유혹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일찍 시작하는 예배를 드리거나 멀리서 교회를 갈 때면 늦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서 힘들었다. 그래서 조금씩 늦는 것이 습관이 되었나 보다. 미리 와서 주보도 보고 기도도 하시고 성경도 찾았던 할머니처럼 살기가 어려웠다. 물론 할 말은 많다. 지금 시대가 엄청나게 바쁘고 복잡하고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고, 우리에게 여유가 없고 휴식이 없는 것도 맞다. 그런데도 뭔가 그것 가지고는 풀리지 않는 마음의 짐이 있다.




나는 나와 할머니가 다른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하나님을 절대시하셨다. 하나님을 경배의 대상으로 보셨고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변명도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신이었기에 늘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며 살아오셨다. 그게 할머니의 하나님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나는 말이 통하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힘들 때 아뢰기도 하고, 어려울 때 타협하기도 하며 나를 이해해주시는 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잘못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나의 이기심이 하나님마저도 상대화시켜서 나를 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지금 나에게 정성이 없다면 진정성은 있는가? 그것마저 없으면 나는 하나님을 잘못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