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VF/IVP

프린세스 카수네 줄루, 희망을 피워낸 검은 꽃

전 존재로 의문에 뛰어들다 - 이진경  

   

 



프린세스 카수네 줄루, 희망을 피워낸 검은 꽃 

한 여인이 에이즈와 싸우며 이루어낸 사랑의 기적 

프린세스 카수네 줄루, 벨린다 콜린스 지음 | 최효은 옮김 | 140*210 384면 | 18,000 원 


 2014년 4월 16일. 아이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대한민국의 총체적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수면 아래 가라앉은 아이들의 생명의 무게만큼 수면 위에 떠오른 문제들의 무게는 거대했다. 세월호 참사는 총체적 부패, 무능, 인간 경시의 소산이었기에 우리에겐 공분, 슬픔, 애도가 창궐했다. 한 배의 지도자인 선장부터 한 국가의 지도자인 대통령까지 결국엔 불신의 정점을 찍었다. 이제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희망을 논할 수 있는가. 


 ‘희망’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이 책을, 현 시점에서 어떤 관점으로 읽으면 좋을까 고심이 되었다. 책은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른 초점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나는 이 책에 관한 관점을, 의문을‘가진다’그리고 의문에‘뛰어든다’의 두 동사로 요약하고자 한다. 이 책의 주인공 프린세스 카수네 줄루의 개인사와 잠비아라는 사회 문화적 환경, 이렇게 두 가지 바퀴를 함께 굴리면 이러한 관점이 납득될 것이다. 한 인생에는 그 주변 환경의 역사적·문화적·경제적·정치적 내력이 고스란히 유전자처럼 새겨지기 때문이다. 


부모님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죽음과 프린세스의 소명 

 프린세스의 어린 시절 잠비아는 가난했고 일부다처제의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했으며 그리고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사회였다. 아프리카 지역과 마찬가지로 잠비아 소년 소녀들은 딱히 성교육을 받지 못한 채 일찍부터 성행위에 노출되었고 일찍 여읜 부모와 가난 때문에 소녀의 매춘 행위가 일반화되어 있었다. 자연히 정규교육도 받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불행한 삶을 영위하는것이 그네들의 삶의 굴레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프린세스는 상대적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다섯 아내 중 한 아내의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가 자신의 삶의 굴레에 의문을 갖게 된 건 바로 자기 자신에게 다른 이들과 비슷한 문제가 닥친 순간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시름시름 앓고 급격히 야위어 가는 부모를 바라보며 근심 했으나 딱히 병명을 알 수 없었다. 급기야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병원은 수돗물도 나오지 않고 환자들을 위한 식사도 제공할 수 없는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인 데다 제대로 된 약도 없었다. 의사들의 소개로 어머니를 살릴지도 모를 약을 찾아 먼 곳까지 발품을 팔지만, 그녀가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이미 숨을 거두어 버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증세로 아버지까지 저 세상으로 떠났다. 




 십수 명의 동생들을 부양할 책임을 지게 된 십대 소녀는 그때부터 자신과 자신의 동생들을 책임져 줄 돈 많고 나이 많은 남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서 용돈 및 생활비를 제공받는 대가로 잠자리를 함께한다. 그중 한 남성과 관계를 하다 임신을 한 프린세스는 낙태하기 위해 또래 친구들이 시키는 대로 기이한 약초로 만든 액체를 마시지만 결국 실패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한 주인공은 그 남성과 결혼하였고, 이후 한동안 그들은 안온한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신앙을 갖기 시작하고 함께 하나님을 알아 갔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신앙 공동체의 자매와 자원봉사를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그녀는 자신의 부모와 매우 비슷한 증세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본다. 그 환자들은 다른 환자들에게서 멸시를 받으며 죽어갔다. (이 병의 감염 경로로 보아) 남편에게서 얻은 병 때문에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한 여성 환자는 명백히 이중의 상처를 입고 있었다. 

이 대목은 무라카미 하루키의「언더그라운드」를 연상시킨다. 하루키는 한 잡지에서, 수년 전 옴진리교에의한 도쿄 지하철 살인 사건 피해자의 아내가 보낸 사연에 주목한다. 피해자는 사고로 후유증을 겪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상사나 동료들에게 질책을 받게 되어 직장까지 그만두는 처지가 되었다. 사건 자체에 의한 1차 피해에 더하여“우리 주위의 일상사회에서 생산하는 폭력”을 당하는 2차 피해까지, 이중의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하루키는 지하철 사린 사건 피해자들의 증언을 인터뷰한 책「언더그라운드」를 펴낸다.) 


 프린세스는 이와 똑같은 고통을 자기 가족의 체험과 병원 환자들의 경우를 통해 경험한다. 처녀였던 한 여성은 결혼 후 남편에게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에이즈에 걸렸는데도(1차 피해), 이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남편과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았다(2차 피해). 바로 이 지점에서 프린세스는‘문제’에 눈을 뜨게 된다.‘각성’이다.“ 이병에걸린사람들은왜이유도모른채고통당하고죽어가야하며, 사회는왜이들을소외시키고 교회는 왜 이들을 방관하기만 하는가?”자신의 생과 직접적으로 연루된, 결코 흘려보낼 수 없는‘문제의식’을 자신의 몸에 아로새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의식에서 끝없는 열정을 느낀다. 프레드릭 뷰크너의 표현대로“당신의 기쁨과 세상의 배고픔이 만나는 장소가 소명”이라면, 주인공은 이 지점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명을 발견하게 된 셈이다. 





HIV를 몸에 품고 전사가 된 프린세스 

 간호사로부터 얻은 핑크색 작은 책 한 권이 삽시간에 주인공을 사로잡는다. 먹어 치우다시피 읽어 버린 그 책에서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부모와 갓난아기 동생을 앗아가 버린 괴물의 정체를 알아 버린다. 바로 HIV였다.(HIV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이고, HIV에 감염된 환자가 발병하면 나타나는 증상들이 후천성 면역결핍증후군인 AIDS다.) 또한 검진 끝에 자신과 남편 역시 HIV에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된다. 괴물의 정체를 알아 버린 순간부터 프린세스는 이 책의 원제 그대로 전사(Warrior)가 된다. 그때부터 남편에게서 버림받는 것이 여자로서 최대의 수모인 잠비아 문화에서 프린세스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편이 끔찍해할 만한 일들을 골라서 하기 시작한다. 목표는 불행과 빈곤의 악순환을 낳는 HIV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고, 방법은 교육이었다. 

고아들을 위한 학교를 여는 것까지는 충분히 남편이 용납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장거리 운전사들에게 HIV 교육을 하기 위해 매춘부로 가장하여 이른바‘히치하이킹 사역’을 하기 시작한다. 또한 각 기업을 다니며 자신이 HIV 감염자인 것을 밝히고 그것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를 알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에이즈 퇴치 운동가인 유명 방송인을 만나 방송에 초대된다.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모를 방송에서 자신이 HIV 감염자인 것을 대대적으로 공개할 생각을 한 것이다. 이에 남편은 집에서 쫓아내겠다는 최대의 위협안을 내건다. 그녀가 다니는 교회 목사는 한술 더 떠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는 그녀를 교회에서 파문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녀의 머리와 가슴엔 커다란 물음표가 나뒹굴기 시작한다.‘왜 교회는 이 나라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병을 막기 위해 돕지 않는가? 이 일은 나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이 아니었던가?’열정적이고 순수한 그녀는 구약성경의 사람들처럼 베옷 대신 부대자루를 입고 옥수수가루를 재처럼 뒤집어쓰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기도 끝에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는 확신을 얻은 그녀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방송을 결행한다. 그렇게 시작된 방송은, 잠비아를 넘어 다른 아프리카 지역의 사람들에게까지 열광적인 반응을 얻는다. 그녀의 방송은 이 병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에 도화선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방송 진행자가 되고, 월드비전에서 일하게 되었으며,또한 당시 에이즈와 싸우기 위해 대규모 지원을 검토 중이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초대로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다. 그녀의 메시지는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물론, 초대된 연설 기회마다 수많은 사람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렇게하여 그녀는 HIV를 몸에 품고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프리카의 에이즈 및 빈곤 퇴치, 여성과 아동보호에 앞장서는 운동가가 되었다. 




 한 사람의 문제의식과 각성, 소명을 받아들이고 침묵하지 않으며 온 존재를 투신하는 믿음을 보여 준 프린세스는 믿음은 곧 행동, 즉 삶으로 발현되는 것임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바라고 행하는 것으로 수렴되는 이‘믿음’은 결코 생각과 관념에 머물지 않는다. 사랑과 기침을 감출 수 없듯이 믿음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미로슬라브볼프는「광장에선기독교」에서이렇게말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그들의 전존재를 통해 세상에 참여한다.…한 사람의 삶 전체가 인간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고 공익을 위해 섬기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물론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그리고 개인적인 것과 공동체적인 것의 구분이 중요하겠지만, 이러한 부분은 불가분하게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분리할 수 없는 통합을 이룬다.”

 주인공 프린세스는 바로 자신의 전 존재를 통해 세상에 참여하여 인간의 번영과 공익을 위해 섬기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삶을보여준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침묵하는거라면, 그저사람들이죽어가든 말든 지켜보기만 하는 거라면, 그게 천국 가는 길이라면, 차라리 지옥에 가겠어요.” (프린세스, 207쪽) 


 침몰과 변혁의 갈림길에 선 오늘 대한민국에서 나의 전 존재를 통해 세상에 참여할 길은 무엇인지, 나의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이 어떻게 통합되어 소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한 사람의 인생을 거울삼아 진지하게 고민케 할 책임이 분명하다. 




이진경 IVP에서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했으며 현재는 일반과 기독교 출판을 넘나들며 작가·프리랜서 출판기획편집자로 활약하고 있다. 



프린세스 카수네 줄루 희망을 피워낸 검은 꽃

저자
프린세스 카수네 줄루, 벨린다 콜린스 지음
출판사
IVP | 2014-03-21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프린세스 카수네 줄루, 희망을 피워낸 검은 꽃』은 HIV 감염...
가격비교



원문보기

IVP BOOK NEWS 5/6월호